배우 장서희(45)가 오는 24일 개봉하는 가족영화 ‘중2라도 괜찮아’(감독 박수영)에서 두 아들의 엄마 보미로 스크린 복귀한다. 영화는 전도유망했던 태권도 선수 출신 엄마 보미와 기타에 꽂힌 사춘기 아들 한철(윤찬영)의 갈등과 화해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16일 오후 강남 압구정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 허당기 많은 엄마 역에 매료...액션신 많은 가족영화

“따뜻한 작품인데다 보미가 푼수 같고 허당기가 있어서 좋았어요. 나이가 있으니 엄마 역할은 이제 자연스럽죠. 다만 미혼이라 어떻게 하면 몰입할 수 있을까 싶어 조카를 두고 상상도 해보고 주변의 아들 키우는 엄마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대체적으로 절로 드세질 수밖에 없대요. 말도 다다다다...말투도 ‘밥 먹어 이 자식아!’ 식으로 좋게 나오질 않는다고 해서 리얼하게 가져왔죠.”

극중 보미는 공부보다 한국의 지미 헨드릭스를 꿈꾸는 노답 아들 한철을 걱정하고, 500만원짜리 기타를 사달라는 요청에 매섭게 야단을 친다.

“저라면 당연히 시킬 거예요. 요즘은 재능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먼저 권유한다잖아요. 자기 재능을 특화시키는 게 중요한 시대로 바뀐 거죠. 공부를 못해도 사회성 있고, 친구 많고, 기술이 있다면 그쪽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만 보미 입장에선 음악에 빠져서 탈선할까봐 걱정하지 않았을까요.”

영화 속에는 태권도 시합 장면부터 불량 청소년들과의 격투 신 등 액션 비중이 만만치 않다. 2차례에 걸친 막춤 장면도 등장한다. 태권도 선수 출신 배우인 태미가 출연했고, 장서희 역시 맨몸 투혼을 불살랐다.

“무용(경희대 무용과 졸업)을 해서 흉내는 냈어요. 공중 발차기 같은 고난도 동작은 대역분이 해주셨지만 그냥 돌려차기는 직접 해냈어요. 오히려 막춤이 어려웠죠. 못 추는 척 뻣뻣해 보이도록 일부러 웨이브를 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웠어요. 결과물이 완성도 높게 나와 만족스러워요.”

 

 

■ 임성한 김순옥 작가 뮤즈...동그란 눈 악역에 도움

중국 활동으로 인해 공백기가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지만 알게 모르게 매년 작품을 해왔다. ‘인어아가씨’ ‘아내의 유혹’ ‘뻐꾸기둥지’처럼 유독 히트한 드라마가 복수극이라 보통의 드라마에 출연하면 “왜 활동이 뜸하지?”란 오해를 산단다.

“예전에 진중권 평론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드라마와 센 막장의 선을 넘나드는 배우’ ‘서희씨 만큼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해주시니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엔 젊은 배우들이 복수의 화신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억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죠. 한 분야를 특화시킨 거니까요.”

이제는 한국 드라마의 한 장르로 여겨지는 막장드라마, 복수극에서 배우들의 역할은 그 어떤 작품보다 크다. 상식적이지 않은 소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성한 김순옥 작가의 뮤즈로 빈번하게 기용됐다. 장서희는 “한순간 시청자를 홀려서 채널을 고정시키려면 몰입도가 있어야 한다”며 “자연히 배우는 연기를 정말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임성한, 김순옥 작가님이 '너 같은 애가 악역해야 몰입이 강해진다'는 말을 하셨어요. 악하게 생긴 사람이 악역을 하면 재미 없잖아요. 나의 동그란 눈이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전 무조건적 악녀가 아니라 핍박 받은 뒤 응징을 가하는 악녀란 점도 달랐고요."

 

 

■ 81년 아역배우 데뷔...암흑과 같은 20대 보내고 재탄생

1981년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 진으로 뽑히며 모델과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아역배우부터 시작해 성인배우로 자리매김한 그가 촬영현장에서 아역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다.

“찬영이한테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라’란 말을 자주 했어요. 일찌감치 사회에 나오다보니 잘못하면 동심을 잃어버릴 수 있거든요. 슬픈 일이죠. 저도 소풍과 수학여행은 빠지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밀어붙이셨던 거죠.”

일찌감치 연예계에 발을 디딘 걸 후회하진 않는다. 연기를 해온 세월의 부피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경쟁사회에 뛰어들어 사춘기의 고민마저 일하면서 풀었다. 어른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순발력은 어릴 때 다 체득했다. 상처도 많았다.

“대중이 저의 어릴 때 모습을 기억해서 성인 캐릭터와 불협화음이 나는 게 20대 시절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어요. 암흑과 같은 터널의 연속이었죠. 어느 순간부터 ‘세월이 흐르면 얼굴에서 성숙미가 나올 테니 그때 성숙한 연기를 하면 되잖아’라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긴 시간 동안 쌓아왔던 걸 부정하기도 싫었기에 아역배우 출신이란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죠.”

상당수 아역 배우 출신들이 조급한 마음 때문에 어른스런 역할로 무리수를 두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대신 매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단역, 주인공의 친구 등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다가 31세에 이르러 처음 주인공(인어아가씨)을 꿰찼다. 노력과 기다림, 운이 맞물린 결과였다. 그는 “배우의 길이란 게 내가 설계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힘줘 말한다.

 

 

■ 일에 중독된 싱글라이프...크리스마스만 외로워

대한민국 독신 스타들 가운데 한 명이다. 아역 이후 무명의 세월이 길었고, 일 욕심 많은 것으로 유명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 돼버렸던 걸까. 장서희의 혼삶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항상 사랑보다 일이 우선이었어요. 일할 때는 일에 올인 하니까 기다려야 하는 상대방이 지쳤을 거예요. 일하는 여자의 슬픈 현실이지 싶어요. 또 제가 중국활동을 많이 하니까 몇 개월씩 못 보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연애하다 말고'의 연속이었죠. 분명한 건 연애 때문에 작품을 놓치진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일이 소중하거든요, 외로움을 느낄 때는 1년 에 딱 한번, 크리스마스예요. 그땐 솔로 친구들조차 뭉치지 않기에 매년 외로워요.”

그동안 살짝 살짝 연애를 했음에도 열애설이 나온 적이 없었던 이유는 일반인을 사귀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활동을 해왔음에도 중국 연예인으로부터 대시를 받은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일과 사생활이 철저히 구분돼 있긴 해요. 지인 소개로 일반 남자들을 만났어요.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내가 잘 모르는 일이나 직장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또 연예인끼리 만나면 소문이 백프로 나거든요. 20대 때는 불같은 사랑을 욕망했으나 이젠 현실적이 됐어요. 앞에 일이 있으면 일 욕심을 먼저 낼 것 같아요. 그래서 솔로인가봐요."

 

'중2라도 괜찮아' 스틸컷

 

■ 대중과 공감하는 배우되고파...최민식과 공연 소망

드라마에 출연하느라 영화 출연은 뜸했다. 2011년 독립영화 ‘사물의 비밀’ 이후 처음이다.

“작품의 크기를 따지지는 않아요. 요즘은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제의가 들어오지 않을까요. 변신에 대한 강박보다는 서서히 그동안 배우 장서희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전달하고 싶어요. 어설픈 변신은 매우 위험하거든요. 작품을 폭넓게 하다보면 또 기회가 오겠죠. 그런 점에서 엄마 역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든 게 너무 좋아요.”

작품, 배역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욕망하는 2가지는 있다. 관객이 절로 감정이입을 할 만큼 연기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더불어 국민배우 최민식과의 공연이다. 대상은 한 번도 바뀌질 않았다. 너무나 연기를 잘하는 그와 호흡을 맞춘다면 배울 게 많을 것 같다는 이유를 내민다. 큰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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