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코미디영화 ‘그래, 가족’(감독 마대윤·2월15일 개봉)에서 장남 성호 역을 맡은 배우 정만식(43). 전작 ‘아수라’에서 보여준 검찰 조사관의 살벌함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선 굵은 남성영화에서 악역 및 센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오면서도 순박하고 평범한 소시민 캐릭터를 놓치지 않았던 주인공이다.

 

 

남남처럼 지내는 오씨 3남매에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존재조차 몰랐던 막내 동생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 ‘그래, 가족’에서 성호는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기사로 일한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무능력한 가장이자 여동생들에게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민폐 오빠다. 유도선수 출신의 우락부락한 외양이지만 허술하고 한편으론 귀엽기까지 하다.

“극중 가족 구성원들이 다들 제 멋대로여서 짜증이 났다.(웃음) 성호가 짠하더라. 성격대로 살다보니 가족에게 폐를 끼쳤고 그로인해 가족이 해체되지 않았나. 자신의 책임을 모르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동생들이 쏴붙일 때 말대꾸도 못하지 않나. 촬영장에서 역시 최고참 선배라 뭐든 이끌어가야 하는데 만만치 않았다. 장남, 형, 선배라는 위치가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실제 4남매의 막내로 누나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성호와는 달리 계획을 세우며 살아간다. 적극적이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하면서 가족에게 미안했다. 경제적 도움을 줄 형편이 안됐고, 사고나 치고 그랬다. 그 와중에 두 누나가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형편이 나아지고, 2013년에는 연극배우 전린다와 결혼하게 돼 이제야 사람(?) 대접을 받는 중이다.

“오씨 가족의 사례는 흔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집안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모를 정도인 상황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물론 각자 바쁘게, 열심히 사느라 그런 측면도 있을 거다. 그래도 안부는 묻고 살 정도는 돼야 한다.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사회가 돼서,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신선했다. 이런 이야기는 해야 한다, 격한 표현법이 아니라 ‘그래, 가족’처럼 잔잔한 접근도 좋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연기패턴도 마음에 들었다.”

 

 

지난 2005년 ‘잠복근무’를 통해 스크린 데뷔했다. ‘부당거래’에선 검사(류승범)로부터 갈굼 당하는 공수사관 역을 맡아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군도’의 양집사, ‘대호’의 구경, ‘내부자들’의 부장검사, ‘아수라’의 도창학 등 센 캐릭터가 즐비하다.

“센 게 연기하기엔 편하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어떤 목적 때문에 누군가를 협박하고 억누르는 거라면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상 연기는 많은 관계가 살아나야 해서 어렵다. 아이들, 아내, 친구, 동생들과 나누는 말투와 시선이 다 다르지 않나. 또한 보는 사람들이 공감해야 한다. 어떤 배우들은 일상적 생활연기를 할 때 자기 치부가 드러나는 거 같아서 어렵다고도 한다.”

‘그래, 가족’에 캐스팅된 이유도 ‘부당거래’에서의 잔상과 “외모와 달리 순박하다”는 감독 주변 사람들 추천이 큰 역할을 했다.

“감독님이 날 만나서 얘기해보니 ‘딱’이었다고 하더라. 공수사관이나 성호 같은 캐릭터는 주변에 많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남들한테는 민폐고, 필요한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들...그래서 이번에도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내자, 각오를 다졌다. 개인적으로 난 모나게 사회생활 하는 거를 싫어한다. 자기 스타일은 있어야겠지만 굳이 보여주는 게 싫다.”

 

 

고교 졸업 후 1993년부터 수원에서 극단생활 하다가 대학로로 근거지를 옮겨 연극배우 활동을 이어갔다. 생활고에 시달려 98년 무렵 1년이 넘게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이 벌고, 펑펑 썼다. 하지만 마음이 허해지면서 주량만 늘어갔다. “돈 벌지 말고 연기해라”라는 어머니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단편·독립영화에 출연했다.

2003년엔 극단 ‘백수광부’에 입단, 무대에 땀방울을 뿌리다 영화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지금도 극단 소속이라 시간이 날 때마다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느라 바쁘다.

남부럽지 않게 악역을 소화해온 그가 꼽는 국내 최고의 악역 마스터는 누구일까. '타짜'의 김윤석, '아수라'의 황정민, '변호인'의 곽도원,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등 고수들의 얼굴이 맴돈다.

“곽도원 형이 독보적인 거 같다. 그 형이 악역 할 땐 빈틈이 없다. 자기 캐릭터에 대한 굉장한 정당성을 갖고 연기하는 게 느껴진다. 지금도 ‘변호인’을 보면 절로 화가 나고 미치겠더라. ‘저런 사람이 있었으니 그런 사회가 있었겠구나’란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만큼 흠잡을 데 없이 정확하게 연기해낸다. 캐릭터에서 보편타당성이 보일 때 내 연기든 남의 연기든 너무 좋다.”

‘아수라’ 촬영 당시 “도원이 형 눈 보고 있으면 정말 짜증난다. 괴물 같지 않냐”고 선배 정우성에게 말하자 웃으며 “너도 그래”란 말을 해 함께 포복절도했다. 특히 고문 장면에서 씩 웃으면서 “잘 생겼냐”고 비아냥거릴 때 정우성이 미치는 줄 알았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격한 장면을 연기할 때는 릴렉스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그래야 상대역이 뭔가를 던져졌을 때 확 반응하게 된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 쾌감이 생긴다. 늘 다음 작품에선 전작과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도록 각을 틀려고 한다. 여러 가지 색깔로 보이고 싶어서다. 한번 셌으면 한번 누그러뜨리고. 센 캐릭터라도 날카롭던지 더 뜨겁던지 차던지 식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게 재밌다. 내가 비슷한 여배의 맷 데이먼처럼 직접 제작을 한다면 ‘테이큰’의 폼 나고 정의로운 경호원이나 ‘굿 윌 헌팅’의 로빈 윌리엄스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향기 나는 인물을.”

올해 활약상도 만만치 않다. 영화 ‘대장 김창수’에선 강화도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마상구로 관객과 만난다. 김창수(조진웅)로 인해 변화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맨투맨’에선 블랙요원(박해진)과 함께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국정원 요원 출신 검사 이동현을 맡아 안방극장을 찾는다. 하반기에는 그에게 끊을 수 없는 밥과 같은 연극 ‘여행’으로 5년 만에 무대 복귀한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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