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펼쳐진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SNS에선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가 널리 퍼진 바 있다. 영화팬들이 할리우드에 만연한 인종차별적 행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가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이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극장가엔 흑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차별이란 보이지 않는 벽에 두툼한 돌팔매를 거세게 던진다.

  

‣ 문라이트

‘문라이트’는 한 흑인 아이 리틀(알렉스 히버트)이 소년 샤이론(애쉬튼 샌더스)으로, 또 어른 블랙(트레판테 로데즈)으로 아주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홀어머니와 사는 이 아이가 성장해 가는 동안, 마약거래상 후안(마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의 세상을 향한 가르침부터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 정체성에 관한 심도 깊은 메시지가 펼쳐진다.

흑인, 불우한 가정, 성소수자 등등 세상 모든 무거움을 이고진 인물의 인생사는 30대 천재 감독 배리 젠킨스의 손으로 완성된다. 그만의 마법과 같은 영상미학, 독창적 형식에 배우들의 균형 잡힌 연기가 얹혀 공감과 연민을 자아낸다. 마이애미 해변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어쩔 땐 눈물방울로 변할 것 같다”는 소년의 고백은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숱한 이들에게 묘한 떨림과 위안을 안겨준다. 러닝타임 1시간51분.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 국가의 탄생

1831년 미국 버지니아주,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사업가 사무엘 터너(아미 해머)는 통제되지 않는 노예를 순화시키기 위해 노예이자 전도사인 넷 터너(네이트 파커)의 설교를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흑인 노예의 참상을 알지 못했던 터너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잔혹행위를 목격하게 되고, 결국엔 자유를 위한 희망을 꿈꾸며 봉기를 일으키게 되는데...

‘국가의 탄생’은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있던 시기 넷 터너라는 흑인 노예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원래 배우로 알려진 네이트 파커는 이 작품 연출과 주연에 몰두하기 위해 2년 간 배우 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알려졌다. 실화의 치열함과 공감이 영화 서사 곳곳에 뿌리박혀 있어 약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차별에 대한 강한 비난을 날린다. 제32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러닝타임 2시간. 청소년 관람불가. 2월 개봉.

  

‣ 러빙

1958년 타 인종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미국 버지니아 주, 백인 남성 러빙(조엘 에저튼)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루스 네가)는 오직 사랑 하나로 결혼하지만 “동거하는 것이 연방의 평화와 존엄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하는 러빙 부부 ‘서로를 영원히 지켜주고, 언제든 함께하겠다’고 맹세한 이들의 혼인서약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러빙’(감독 제프 니콜스)은 노예제도 폐지 이후에도 꾸준히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1950년대를 조명한다. 당시에는 당연시 여겨졌던 ‘사랑’에 대한 불합리를 직시하며 열성적으로 투쟁했던 러빙 부부의 모습은 많은 깨달음을 전한다. 묵묵히 서로를 지키는 부부의 순애보로써 다른 피부 속에 간직한 '같은 마음'을 멋스럽게 빛내고,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진심’이라는 진리를 전달한다. 러닝타인 2시간3분. 12세 관람가. 3월1일 개봉.

  
 

‣ 히든 피겨스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이 펼쳐지던 시절, 천부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흑인여성 캐서린(타라지 P.헨슨),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메리(자넬 모네)가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이란 이유로 유색인종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등 따가운 시선에 지쳐간다. 과연 그들은 수학공식보다 더 어려운 이 차별 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히든 피겨스’(감독 데오도르 멜피)는 차별과 한계를 극복한 용기 있는 세 명의 흑인 천재들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지극히 무거운 주제에 대해 경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가슴 벅찬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미국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라’, 이것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라는 뜨거운 관람 소감을 전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러닝타임 2시간7분. 12세 관람가. 3월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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