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웰메이드 감성 영화 '싱글라이더'(이주영 감독·22일 개봉)가 따스한 햇살처럼 내려앉았다. 전작 '마스터'와 현저히 대조적인 캐릭터를 입은 이병헌은 호주 거리를 정처없이 거니는 비운의 가장 재훈 역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해줄 준비를 마쳤다. 영화 개봉을 앞둔 20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이병헌을 만났다. 누군가에겐 인생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거라며 '싱글라이더'를 소개하는 그의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싱글라이더'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재훈(이병헌)이 부실 채권사건 이후 아내 수진(공효진)과 어린 아들을 찾아 호주로 사라진 한 남자가 충격적인 비밀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 타협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던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 한 가장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이 세상에 만연한 공통의 애환을 어루만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예요 현실 때문에 작은 목표를 큰 목표보다 앞에 두고, 그 목표만 바라보며 현재를 즐기지 못한 채로 소소한 행복마저 미루는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 재훈은 물론 아내인 수진 역시 외로움 덩어리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호주로 왔지만, 다시 바이올리니스트의 인생을 시작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모습이… 정말 가장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재훈이 여행 중 만나게 되는 지나의 상처 또한 지금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같구요."

처음 읽어본 시나리오는 '달콤한 인생' '번지점프를 하다'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안겨줬다. 모든 게 다듬어진 완성본 같은 시나리오를 보며 무조건 이 영화에 가담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흥행 대작은 아니기에 관객수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이 영화 자체에 대한 욕심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컸다. 무엇보다도 이런 감성의 영화가 등장해야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물론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건 참 행복한 일인데, 이건 비리, 이건 검찰, 천편일률적인 비슷한 시나리오를 너무나도 많이 봐서 우리나라 영화가 한쪽으로 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어디 한군데 고칠 부분이 없는 문학작품 같더라구요. 막연하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관객들도 이젠 좀 목마르지 않을까? 아무리 특정 장르를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상황까지 왔으면 조금 더 이런 영화에 감사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가 들었죠."

 

'싱글라이더'와 같이 좋은 작품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만큼 감사한 일도 없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큰 와중에도 생각지 못한 부분은 존재했다.

"걱정이라기 보단, 어? 하고 생각 못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 촬영이 끝나고 러프하게 편집된 걸 봤는데, 이렇게까지 대사가 없는 영화인 줄은 몰랐거든요. 마치 프랑스 아트 영화를 보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때 당시에는 너무 러프하기도 했지만 음악도 안 들어간 상태였으니까요. 상업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때엔 대단한 실험, 혹은 모험일수도 있겠다 싶었죠"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명의 여성감독이 '싱글라이더'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친다.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이주영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대부분의 신인 감독이 그렇듯 이주영 감독에게도 촬영 현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슬며시 보이곤 했다.

"촬영할 때 커트를 좀 빨리 하셨어요. 배우들은 감정이 잔잔하게 이어지잖아요. 대사는 다 외웠고, 이제 뒷감정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컷! 소리를 외치시는 거예요. 이유를 여쭸더니, 감독님께선 어떤 부분을 쓸 지 알 뿐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광고 감독에 익숙해지셔서인지… 그래서 효진씨랑 제가 부탁을 따로 드렸죠. 아무튼 영화는 처음이라 배우와의 호흡이 익숙지 않은 부분이 조금 있었지만, 촬영하면서 점점 달라지시더라고요."

 

배우들이라면 단연 누구나 함께 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 공효진이 극중 재훈의 아내 수진 역으로 열연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연기하는 장면은 몇 없었지만, 평소 공효진의 연기를 좋아해왔기에 이번 영화에서의 호흡 역시 큰 기대를 모았다. 

"제가 효진씨 연기 정말 좋아하거든요. 촬영할 때 보면 마치 리허설하는 것처럼 해요. 일상 생활연기는 물론 오열하는 장면도 정말 사실적이더라구요. 효진씨랑은 그 얘기 많이 했어요. 이번 영화는 아무래도 우리의 워밍업 같다고. 과거 플래시백 장면에서 딱 한번 합을 맞출 뿐이지, 나머지 장면은 재훈이 홀로 수진을 지켜보는 장면만 있으니까 뭐 대사를 나눌 수도 없더라구요. 이후에 좋은 작품에서 또 만나보고 싶어요."

반면 안소희와는 공효진에 비해 함께하는 장면이 많았다. 기존 연기력 논란이 있던 배우이기도 했고, 인물이 몇 없다보니 배우 하나하나가 자기 할 몫을 톡톡히 해내야 하는 영화라 우려가 생겨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안소희의 열정만큼은 일종의 안도감을 안겨줬다.

"소희씨에 대해 기억에 남는 작품은 '뜨거운 것이 좋아'였어요. 그때 보면서, 이 친구 가수인데 연기를 제법 하네? 생각했었죠. 그렇게 큰 걱정은 안했어요. 이번에 촬영하는 걸 보니 모니터에 매달리며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 지나에 대한 생각을 전하거나 의견을 내기도 하는 등 틈만 나면 영화 이야기만 하더라구요. 의욕과 부담감이 대단하구나 싶다가도 안심이 됐죠."

 

사진 : NEW,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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