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안방극장에 새 형식의 스릴러물 감흥을 선사하고 종영한 OCN ‘왓쳐’ 비리수사팀에서 과거의 트라우마 속에 허우적대는 세 주인공(한석규 김현주 서강준)과 달리 평범하고 단순한 과학수사팀 출신 조수연 경위로 눈길을 붙든 배우가 있다.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조력자 캐릭터를 호흡 조절과 다소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살려낸 박주희가 그 주인공이다.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해낸 셈이다.

숱한 독립영화에서 어둡고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을 전매특허로 소화하다 상업영화와 드라마로 영역을 확장한 박주희를 9월의 어느 날, 싱글리스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 인물과 그냥 잘 어우러지기만 해도 성공이겠다, 여겼어요. 이 분들 사이에서 민폐만 끼치지 말자가 목표였죠.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경한 인물이 나오면 낯설어 할테고, 아무리 잘해도 예민하게 볼 거란 걸 너무 잘 아니까 초반엔 튀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는 걸로 방향을 정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한팀처럼 보이면 좋겠다가 희망사항이었죠.”

대본으로 접한 ‘왓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수사물이었다. 일단 조연 캐릭터들까지 다 살려주는데다 노림수가 많지 않아서 담백하게 다가왔다. 안길호 PD는 “(비리수사팀 구성원들과) 가족같은 케미는 있어야 한다”고 주문해 이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했다.

“처음엔 조수연의 진지하고 어두운 면을 많이 봤고, 그런 톤의 연기를 많이 했기에 제게 그런걸 원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제 작가, 감독님은 ‘너를 내려놓고 해라’라며 재밌고 밝은 모습을 원하시더라고요. 다들 진지한데 나만 겉돌지 않을까 잔뜩 겁을 집어먹었죠. 한달쯤 지나고 나니 작가님이 재미나는 대사를 써주시고. 제가 엉뚱한 행동을 할 때마다 감독님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전에 걸 못버린 채 연기하고 있었구나를 깨닫고나니까 그 뒤부터는 쉬웠어요.”

한석규 김현주 서강준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복잡한데 수연은 단순했다. 매사에 열심이고, 살짝 눈치 없고 어리바리하기까지 하다. 자연스러움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대선배 한석규의 연기는 ‘지독한’ 자극이었다.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프로들의 세계는 이런 거구나를 처음 공연한 한석규 선배님을 통해 깨달았어요. 압도적인 도치광 연기로 인한 화면 장악력에 놀랐어요. 자신이, 인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잘 아셔서 신기하고 한편으론 영광이었죠. 김현주 선배님도 어려운 캐릭터였고, 반복적인 행동이 이어지는데도 밉지 않고 이해가 되도록 설득시키는 연기를 너무 잘 하셨고요. 두 분 모두 제가 어떻게 연기해도 잘 받아주시니까 편했죠. 모든 출연진이 대본보다 항상 입체적으로 연기하니 지루할 틈없이 진기한 경험이었죠.”

교훈이었다. 다른 연기자들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배우가 최고임을, 같이 갔을 때 빛나는 연기자가 좋은 배우임을 각성했다.

캐릭터 구축이 쉽지 않은 작품이었음에도 값진 성취를 이뤄서 모두들 즐거워한 한편 아쉬워했다. 시청자 사이에서 분출된 시즌2에 대한 욕망이 배우들 사이에서도 꿈틀댔음을 슬쩍 귀띔한다. “이렇게 좋은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까 해보고 싶다”고.

2009년 배창호 감독의 ‘여행’으로 스크린에 상륙한 박주희는 ‘어떤 시선’ ‘얼음강’ ‘우리 선희’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갔고 2014년 공포스릴러 ‘마녀’의 여주인공으로 섬뜩한 캐릭터 연기로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선연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서울연애’ ‘거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시선사이’ ‘선미’ ‘걷기왕’ ‘팡뜨’ 등에서 주조연으로 열일 했다.

2017년 ‘내일 그대와’로 드라마를 시작해 ‘황금빛 내 인생’ ‘오늘의 탐정’ ‘드라마 스테이지-밀어서 감옥해제’ 등에 출연해오고 있다.

“쉽지 않았어요. 현장이 달라져서라기보다는 독립영화 했을 때와 프로 세계는 많이 다름을 느꼈기 때문예요. 그동안 정말 노력을 안하고 연기했구나를 절감했어요. 첫 드라마를 끝내고나서 ‘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퍼뜩 들었죠.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했왔어요. 어떤 자리에서 ‘배우 지망생’이라고 말했던 것도 진심이었어요. 스무살 무렵으로 돌아가서 다시 배우는 느낌이에요.”

독립영화에 왕성하게 출연하던 시절, 연기력과 개성을 겸비한 배우로 소문난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지 궁금해졌다.

“독립영화 때는 나를 두고서 시나리오를 많이 써주셨어요. 그냥 내가 하던 연기를 주변에서 너무 잘 만들어주셨던 거죠. 반면 드라마는 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야 하는데 그걸 못한 거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어떻게 살아남아야하는 지를 몰라서 ‘왓쳐’까지 계속 도전해온 거죠. 나의 장점은 뭘까? ‘왓쳐’에서 선배님들이 하는 걸 직접 보면서 조금은 실마리를 찾게 돼 너무 다행이고 감사해요.”

‘왓쳐’ 직전까진 연기하는 게 괴로웠다. 독립영화를 하다가 상업영화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 또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차오르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밝고 건강한 조수연을 연기하면서 되게 재밌었어요. 본래 기운도 좋아지는 느낌이었고요. 원래 성격도 밝아서 이걸 좀 더 단단하게 구축해놓는 게 나쁘지 않겠다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마녀’톤 연기를 해와서 왔다갔다가 잘 안됐거든요.”

편안한 표정이다.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는 박주희는 당분간 작품 스케줄이 없기에 동네 피아노학원에 다니며 피아노를 배울까 생각 중이다. 최근에 본 산드라 오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링 이브’와 올리비아 콜맨 주연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보고 놀라운 연기의 자기장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라고 귀띔한다. 모두 여배우들이 극을 이끄는 작품이다.

“디테일을 살리는 연기를 봤을 때 ‘우와~’ 놀라게 돼요. 설정이라기 보다는 역할에 집중하고 빠져야만 나오는, 남녀노소 모두를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포인트를 잘 잡는다고 할까 캐릭터와 딱 붙어있는 느낌이죠. 평범한 또래의 이야기를 그런 디테일한 연기로 풀어가는 게 지금 당면한 제 목표예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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