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드라마에서 ‘러브라인’은 빼놓을 수 없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다. ‘의학드라마는 의사가 연애하는 드라마, 경찰드라마는 경찰이 연애하는 드라마’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드라마에서는 ‘러브라인’을 찾기 힘들다.

 

 

지난 10회 시청률 22.2%(닐슨 코리아 집계)를 기록한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사형수가 된 박정우(지성)의 복수극이다. 잘나가던 검사였던 정우는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지난 4개월 동안의 기억을 잃은 상태다.

이때 정우를 돕는 인물로 서은혜 변호사(유리)가 등장한다. 둘 사이에 뻔한 러브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뢰인인 정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음모술수에 능한 차민호(엄기준)의 악행을 밝히기 위해 서로 공조하는 관계로 그려질 뿐이다. 정우의 기구한 사연만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스토리에 남녀의 로맨스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지상파 방송3사 수목극을 평정하며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KBS2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러브라인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로맨스보다는 통쾌한 코미디에 초점을 맞춘다. 비상한 두뇌와 꾼 기질을 발휘해 ‘삥땅’을 일삼던 김성룡 과장(남궁민)이 우연히 사람을 구하면서 내면에 잠재돼 있던 의인 본능이 깨어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극이 진행될수록 TQ그룹 경리부 김과장과 윤하경 대리(남상미)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드러나고 있지만 ‘김과장’은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며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에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사이다 전개가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짖던 주말극에서도 로맨스 없는 드라마가 눈에 띈다. 케이블채널 OCN 토일드라마 ‘보이스’는 ‘제2의 시그널’로 불리며 장르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112 신고센터와 잔혹한 범죄 현장에서 사이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로 매회 화제를 낳고 있다.

3년 전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각각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강력계 형사 출신의 골든타임팀장 무진혁(장혁)과 112 신고센터장 강권주(이하나)가 공조체제를 이뤄 사건을 풀어가고 있다. 장혁과 이하나는 V라이브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동지애’로 선 그으며 러브라인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청자들은 더 이상 러브라인에 목메는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 드라마가 등장하고 시청자의 볼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억지춘향식 사랑 놀음 대신 장르적 특성 및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다 된 드라마에 러브라인 빠뜨리기’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이제 반환점을 돈 ‘피고인’ ‘김과장’ ‘보이스’가 앞으로 어떤 전개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해 본다.

사진= KBS, SBS, OCN 홈페이지,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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