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캐릭터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던 아역 배우 지우(20)가 가슴 아픈 청춘들의 영화 '눈발'(감독 조재민, 3월1일 개봉)로 변신을 꾀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로 온 소년이 한 시골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에서, 지우는 동급생들의 가혹한 폭력 앞에 당당히 맞서지만 가슴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소녀 예주를 열연한다.

지난달 27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지우를 만났다. 차가운 눈발과 대비되는 따뜻한 눈동자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Q. 1년 전 촬영한 '눈발'이 드디어 개봉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A.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촬영할 때까지도 제가 아직 어린 나머지 내용 전체를 이해하기 보다는 예주라는 인물을 제일 먼저 봤거든요. 이 아이의 환경이나 아이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폭력이 마냥 불쌍하고 마음 아팠어요. 현장에서는 촬영에 급급해 예주라는 인물에 집중했다면, 1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보니 전체적인 스토리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민식이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민식이와 지우의 관계성도 짚어보게 되고, 이제야 전체가 보이는 것 같아요.

Q. 예주는 살인자 오명을 쓴 아버지를 뒀다. 마을 사람들에게 눈총 받고 동급생들의 구타도 감내하는 역할이라 피폐해졌을 만도 하다.

A. 감정적으로 정말 힘든 역할이었어요. 어두운 캐릭터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이 따랐어요. 아직까지는 제가 밝은 모습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와서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셨거든요. 저는 최대한 어두운 내면을 가져가기 위해, 촬영할 때부터 주변 사람들도 잘 안 만나려고 했어요. 감독님께서 추천해주신 '타인의 고통' '도희야'를 보기도 했구요.

 

Q. 직접 연기해본 예주는 어떤 캐릭터인가?

A. 영화 안에서 예주는 강한 아이는 아니지만 소극적이기보다는 당차고 씩씩하다고 생각해요. 급식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수정이에게 침을 뱉기도 하고, 모두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살인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교회를 나가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보니 똑 부러지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연기를 하는 입장에선 그런 예주의 면면에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Q. 얼굴을 비롯해 맞는 장면이 많았다. 아무리 촬영이라지만 서럽진 않았나?

A.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사실 현장에선 짧은 일정 안에 많은 장면을 찍어야 하느라 촬영이 굉장히 스피드하게 이뤄졌어요. 그래서 많이 맞지는 않았어요.(웃음) 아프긴 했지만 감독님이 바로 "컷!" 해주셔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구요. 또 같이 촬영한 언니 오빠들이 너무 좋으셨거든요. 워낙 친하게 지내서 맞아도 서운하지는 않았어요. 개인적인 서러운 감정이 앞서기 전에, 예주에겐 이런 일들이 늘상 있어왔겠구나란 생각을 하니 오히려 덤덤해지더라구요. 

Q. 영화가 열린 결말인데, 불만을 갖는 관객도 있겠다.

A. 저는 오히려 열린 결말이어서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명확한 해답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감독님께선 제한된 환경에서 가해자를 향한 처벌이 모호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제서야 저도 이해가 됐고요. 오히려 이런 열린 결말이 관객으로 하여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요.

 

Q. 보이그룹 '갓세븐'으로 활약 중인 박진영과 공연했다. 상대가 아이돌이라 촬영 전부터 부담이 상당했겠다.

A. 많이 됐죠.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에너지를 발휘하는 분이잖아요.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이었죠.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구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너무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시더라구요. 저는 촬영 현장 하나 준비하기에도 벅찬데, 진영씨는 공연 일정도 많았고 그 와중에 부상도 입었는데 내색 한번 안 하는 걸 보며 정말 대단하다 싶었죠. 오히려 더 파이팅 하는 걸 보면서 많은 자극이 됐어요.

 

Q. 박진영과의 호흡은 어땠나? 

A. 호흡도 좋았고,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촬영 전에 리딩을 자주 했는데 조율을 충분히 해 촬영이 순조롭게 이뤄졌죠. 제가 사투리 연기를 해야해서 강박을 느꼈는데, 진영씨가 경남 진해 출신이라 사투리도 많이 가르쳐줬어요. 또 현장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많이 풀어주기도 했구요. 장난기가 진짜 많으세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들한테도 많이 장난을 치고요. 촬영하면서는 늘 감정선을 유지하겠다며 절 "예주씨"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호칭만 그렇게 불러주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Q. 영화 속 어두침침한 고성의 분위기가 인상 깊다.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A. 겨울의 고성은 굉장히 따뜻하더라구요. "겨울에 찍어서 고생했겠다"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사실 굉장히 따뜻했어요. 숙소를 나가면 바로 바다가 보였고,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죠. 또래 배우들이랑 촬영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즐거웠어요. 학교에서 촬영할 때는 정말 학교 같이 느껴져서, 너무 놀면 안되니까 '이러면 안돼!'라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작업했고요. 언니 오빠들이랑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하고, 쉬는 날 통영을 걷기도 했죠.

Q. 최근 김소현, 김유정, 김새론 등 아역 배우들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친분 있는 아역 출신 배우가 있나?

A. 김소현이랑 굉장히 친해요.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친구인데, 힘든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소현이가 저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촬영 경험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 일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거나 힘들 때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곤 해요. 소현이의 말 한마디가 굉장히 힘을 줘요. 둘 다 집순이라 TV도 자주 같이 봐요. 영화도 보구요. 영화 취향도 같거든요. 둘 다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요. 

 

Q.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댔는데, 연애 경험은 있는지?

A. 로맨스 영화는 대리만족도 할 겸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제가 연애 경험이 아예 없다보니까 연애를 했을 때의 행복감을 모르잖아요. 전 오히려 언니들과 있을 때 즐겁거든요. 아직은 그런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하고요. 혼밥도 많이 하고, 영화도 혼자 보는게 더 편해요. 그래도 꼭 연애를 해보고 싶긴 해요. 제가 연애 경험이 없어서인지 연기를 할 때마다 부딪히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Q. 연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사실 국악을 전공하려고 했어요. 판소리와 가야금요. 어느날 판소리 대회를 나갔는데 연기학원 상품권을 주시더라구요. 호기심에 학원애 등록했더니 그냥 재밌게 노는 거였어요. 마피아 게임 같은 거 열심히 하고. 그때 감사하게도 오디션 연결을 해주셔서 운 좋게 한석규, 김헤수 선배님이 출연하신 영화 '2층의 악당'에 합류하게 됐어요. 너무 하고 싶어서 준비를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나요. 제 나름의 캐릭터 분석을 10장씩 써갔는데 굉장히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Q. 데뷔 7년차, 그동안 만나본 선배들 중에서 본보기로 삼는 배우가 있을 듯하다.

A. 저는 '2층의 악당'에서 뵀던 김혜수 선배님이 멘토예요. 지금도 선배님과 연락하며 지내거든요. 늘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어렸을 때는 키 크라며 건강 정보도 주시고(웃음).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죠. 같은 소속사인 한예리 언니도 정말 좋아해요. 항상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데 정말 든든하고 감사하죠. 우리 회사에 여배우가 별로 없어서 절 어렸을 때부터 많이 챙겨주셨어요.

 

Q. 2017년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배우라는 직업이 작품이 있을 때 하고, 쉴 때 푹 쉬니까 일이 없으면 좀 공허해지더라구요. 좀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최근에는 여행을 다녀왔어요. 예전에는 여행의 즐거움을 많이 못 느꼈는데 일본 도쿄를 갔다오고서 굉장히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죠. '눈발' 촬영할 때는 통영을 혼자 다녀왔는데, 벽화마을처럼 예쁜 곳이 많더라구요. 한국엔 좋은 곳들이 많잖아요. 기차 여행도 좋고, 나홀로 여행도 하고 싶어요. 언니랑 둘이 해외를 한번 다녀오니까 혼자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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