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일대는 촛불을 든 인파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서초역을 중심으로 한 반포대로와 서초대로 등 서울중앙지검 주변 1.6㎞ 구간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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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를 주최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는 이날 집회에 연인원 200만~250만명이 참가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날 집회는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촉구 집회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보여 향후 조 장관 일가 수사를 둘러싼 정국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주최측 예산 10만명을 20배 이상 뛰어넘은 인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날 오후 5시30분, 2호선 서초역사 안에서부터 인파물결이 형성됐다. 몇 십분은 기다려야 간신히 지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역사 때와 똑같은 광경이 연출됐다.

화장실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 중장년 남성들은 “어떻게 검찰이 대통령 말도 대놓고 무시하느냐” “사채업자처럼 애들까지 볼모삼아 협박하느냐”고, 중장년 여성들은 “엄청난 범죄집단도 아닌데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의 안하무인 태도에 대한 분노, 조국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의 법리적용과 일반 국민 법감정의 괴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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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가 넘어서면서 서초역 사거리가 인파물결로 메워지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교대역 사거리까지 서울중앙지검을 둘러싸고 인간장벽이 겹겹이 형성됐다. 주최측은 10만을 예상해 이곳까진 스피커와 대형 전광판 설치를 하지 못해 행사 진행과 관련한 아무런 소리나 영상도 접할 수 없었지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검찰개혁’ ‘조국수호’ ‘공수처를 설치하라’ 등을 일사불란하게 외치고, 주변에서 나눠준 손팻말을 높이 치켜올리고 있었다. 지난 탄핵 촛불집회의 학습효과로 보였다.

도로에 앉고, 인도에 서서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참가자들은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인파 대열에 놀라움을 드러내는 한편 연대의식 확인에 뿌듯해 했다. 당시 ‘적폐청산’ ‘박근혜 구속’을 목놓아 부르짖은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예했던 ‘검찰개혁’이 이번 조국 파동을 거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뼈 때리게 확인한 모습이다.

조 장관 가족을 둘러싼 검찰의 먼지털이식 전방위 수사, 피의사실공표 통한 모욕주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정경심 교수에 대한 기소와 대정부 질문 당일 감행한 자택 압수수색 등을 검찰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발버둥, 국정 인사권자에 대한 항명으로 여기고 지난 2개월간 내연했던 분노를 광장에서 토해낸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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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장관 가족을 둘러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적폐'로 규정하며 이를 청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큰 목표는 동일했지만 참가자들 내부의 결은 조금씩 달랐다.

현 정부 핵심 지지층은 검찰과 언론, 보수야당의 조직적인 공격으로 조국 법무장관이 사퇴하는 순간, 촛불 민심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동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는 위기감, 절박함이 동인이었다. '조국 사수'를 외쳤다. 반면 지난 23일 무려 11시간에 이르는 자택 압수수색 등을 계기로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에 분노한 시민은 조국 장관 사퇴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덧대지며 검찰개혁 촉구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검찰개혁을 시도하다 좌절됐고,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은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현장에는 ‘이제는 울지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란 노란색 손팻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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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서 구호가 아니라 가장 많이 들려온 독백 혹은 대화는 “내가 또 이리 나올줄 몰랐네”였다. 추운 겨울, 광화문 네거리를 밝혔던 춧불시민들의 목소리였다. 국정농단을 일삼던 대통령마저 퇴진시킨 정치적 경험을 소유한 이들은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이날은 1차적 ‘경고’ 수준으로 수위를 조정했으나 다음번에는 강도를 높여 ‘검찰해체’ ‘윤석열 퇴진’ ‘언론개혁’으로 공세의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점쳐진다.

오후 9시가 넘은 시각, 반포대로를 걸어내려가는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이 촛불시민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여기는 중이다. 막장드라마를 써내려가던 ‘여왕’도 끌어내렸는데 분노유발 범죄드라마를 집필하는 ‘검찰총수’라고 못할쏘냐 분위기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에 귀에 꽂히는 군중 무리의 대화. "이런다고 검찰이 바뀌겠어?" "안바뀔 걸. 대신 민심에 민감한 정치권, 여론에 민감한 언론이 움찔하겠지. 예전처럼 막가파식으로 절대 못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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