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수(안재홍)의 대사처럼 “요즘 누가 가구시청률을 봐요”하는 세상이다. 유의미한 1%대 시청률로 종영을 맞이한 JTBC ‘멜로가 체질’(연출 이병헌, 김혜영/극본 이병헌, 김영영).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두의 로맨스를 볼륨감 있게 그려낸 작품에서 가장 아픈 성장통을 겪어낸 건 전여빈을 만났다.
지난해 ‘죄 많은 소녀’를 통해 평단과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전여빈이 첫 드라마 주연에 도전했다. 남자친구의 죽음 후 환영을 보는 은정의 감정 폭은 그 어떤 캐릭터보다 진폭이 컸다. 하지만 전여빈은 무던하고 치밀하게 ‘은정’을 그려나가며 뭉클한 성장기를 그려냈다.
“9월 1일에 마지막 촬영을 했어요. 함께하는 카톡 채팅방이 언제나 수다스러워서 끝난게 실감이 잘 안나요. 16화를 다같이 만나서 보기로 했거든요. 그때 만나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지금까지의 소회를 나눌 거잖아요. 극중에서도 16화때 같이 살던 친구들이 자기의 삶에서 한발짝 걸어나가고 성장을 하게 되거든요. 그때가 되면 정말 ‘안녕’하는 기분 아닐까요”
드라마 주연작을 꿰찰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건 역시나 ‘죄 많은 소녀’였다. 이병헌 감독이 전여빈 주연작인 ‘죄 많은 소녀’, 그리고 출연작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고 그녀의 캐스팅을 적극적으로 제작사에 어필했다고.
“‘극한직업’ 개봉 전에 ‘멜로가 체질’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이랑 미팅을 가졌어요.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칭찬받으면 받을수록 잘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싶어서 작품에 대한 호감이 컸었고, 진주 역에 천우희 언니가 캐스팅된 상황이어서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읽었을때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여서 떠드는 모습이 연상이 됐어요. 사실 시놉시스만 보고 은정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홍대와의 관계를 다 알기는 어려웠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이 글에서 재밌게 놀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던 거 같아요”
죽은 전 남자친구 홍대(한준우)의 환영을 보는 설정은 단연 배우에게 있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극 초반에는 홍대의 정체를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일부 시청자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은정으로 몇달을 살았
“환영을 본다는 캐릭터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근데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거 같은데 어디서 친구들이 글을 읽었나봐요. 저더러 ‘귀신 본다며?’라고 물어보더라고요. 홍대를 귀신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지 못해서 곁에 두는 건데…. 어렵게 느끼시는 분도 있겠다는 생각을 촬영 시작하고 한참 후에야 했어요.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커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인물이 되고자 했고, 그 안의 진심들은 변하지 않으니까. 시청자분들이 이 진심을 만나주실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던 거에요”
홍대가 환영이라는 걸 인지하는데 까지가 ‘멜로가 체질’ 전반부 은정의 주요 스토리였다면, 그녀가 전재산을 기부하고 다시 카메라를 들면서 만난 상수(손석구)는 후반부 성장기를 함께 가꿔간 좋은 파트너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신에서 주고받은 욕배틀은 단연 ‘멜로가 체질’의 명장면 중 하나.
“석구오빠가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병삼(이하늬)이랑 소민(윤주빈)이를 대하는걸 보고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고요. 욕밍아웃을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거 같아요. 만나자마자 욕배틀 장면을 촬영하는데 그런 표정으로 ‘유 윈’이라는 대사를 할 지 몰랐어요. 상수랑 붙는 장면은 다 많이 웃었던 거 같아요. 처음부터 석구오빠가 상수 역에 내정되어 있지는 않았던 걸로 알아요. FD님한테 누가 상수 역에 캐스팅 됐냐고 물으니까 아직 안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상수 등장이 임박했는데 손석구 배우라는 말을 듣게 돼서 좀 반가웠어요. 사실 시나리오로만 봤을때 상수는 굉장히 튀는 인물이었거든요. 그 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톤과 상수가 함쳐지면서 흥미로운 캐릭터가 완성되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상수와 만나 은정이 웃는 날들이 많아질 수록 배우 전여빈의 마음 한편에는 홍대에 대한 미안함이 싹트기도 했다. 어느덧 은정이 된 듯 홍대와 점점 멀어지는데 아쉬움이 생겼다고
“홍대랑 은정이 케미가 좋다고 내부적으로 많이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홍대랑 안녕을 고하니까 한편으로 홍대가 안쓰럽기도 했어요. 상수 대사는 감독님이 점까지 다 찍어주셨어요. 그 호흡을 살려주기를 원하셨던 거 같아요. 은정이가 그걸 듣고 있다가 숨이 찼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걸 석구오빠가 아주 찰떡같이 잘하셔서 병헌 감독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웃음)”
지독하게 아픈 은정을 그리며 유독 꽁냥거리는 ‘멜로가 체질’ 속 다른 커플들이 부러울 법도 했겠다는 말에 전여빈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저는 재훈(공명)이랑 하윤(미란)이가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재훈과 하윤은 오랜 연인관계이자 서로의 틀에 갇혀 힘겨워하는 커플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힘든 커플이기도 하잖아요. 그 감정선이 되게 어렵고, 때로는 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외면하고 싶은 연애인데 보내온 시간이 너무 깊다보니 서로를 버리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 커플이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요. 특히 집에서 파스타를 먹는 신이 있잖아요. 그 공기가 너무 무거웠어요. 영화 ‘연애의 온도’를 굉장히 재밌게 봐서 그게 떠오르기도 했구요”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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