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세상을 뒤흔든 한 여성가수가 있었다. 그는 바로 ‘I Am Woman’이란 곡으로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사랑을 받은 헬렌 레디다. 그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세상을 향해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였지만 제목처럼 ‘여성’이었다. 호주계 한국인 감독 문은주는 ‘아이 엠 우먼’을 통해 헬렌 레디의 20~40대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여성, 현재의 여성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던진다.

‘아이 엠 우먼’은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영화다. 문은주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인 ‘아이 엠 우먼’은 ‘라비앙 로즈’ ‘광부의 딸’ 그리고 곧 미국에서 개봉할 르네 젤위거 주연의 ‘주디’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들 모두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인생을 들려준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기 때문에 많은 관객이 부산에서 보길 원해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아이 엠 우먼’이 프레젠테이션 개막작으로 선정돼 기립박수를 받았죠. 팬클럽도 결성됐더라고요. 토론토를 거쳐 부산에 초청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오고 싶었어요. 부산은 고향이고 이곳에서 유치원을 1년 다녀서 더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한국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연관있는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이 공감할 영화라고 생각해요. 헬렌 레디는 꿈이 있는 여성이자 어머니였죠. 현재 많은 여성이 충분히 공감할 거라고 믿고 그들의 삶에 이 이야기가 투영됐으면 좋겠어요. 제 어머님이 한국분이셨는데 저한테 ‘뭐든 할 수 있다’ ‘여성, 한국인이어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셨죠. 이 영화도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시작됐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함께 부산을 찾게 돼 기뻐요. 아버지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걸었죠. 제 덕분에 아버지가 오스카는 물론 부산영화제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문은주 감독이 ‘아이 엠 우먼’으로 말하고 싶은 건 헬렌 레디의 인생뿐만은 아니다. 7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통, 그리고 노래를 통해 보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에도 포커스를 뒀다. 그렇기 때문에 문은주 감독은 헬렌 레디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캐릭터가 큰 영향력을 가져야 관객이 이야기에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헬렌 레디 이야기를 듣고 ‘그래 이거다’라고 생각했죠. 왜 이 스토리가 영화로 안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아이 엠 우먼’은 제 나이대의 여성뿐만 아니라 차세대를 이끌어갈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미국부터 호주까지 정말 글로벌한 캐스팅 작업을 시도했죠. 결국 호주에서 헬렌 레디 역에 맞는 배우를 찾았어요. 틸다 코브햄-허비는 영화 출연 당시 22세였어요. 영화에서 헬렌 레디는 25세부터 45세까지 그려지죠. 그래서 어린 틸다가 잘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헬렌과 많은 부분이 닮았어요. 헬렌 부모님처럼 틸다 부모님도 발레리나 출신, 연극 배우 등 예술계에 종사하셨죠.“

틸다 코브햄-허비와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에서 퀵 실버 역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에반 피터스는 각각 헬렌 레디, 남편 제프 월드 역을 맡아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서로 눈빛만으로 교감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단지 여성, 음악영화를 넘어 로맨스의 분위기도 연출한다.

”헬렌을 아는 사람들은 분명히 틸다의 연기를 지켜볼 거예요. 노래뿐만 아니라 공연도 보여줘야했기 때문에 틸다가 많은 노력을 했죠. 5주 동안 리허설을 준비했고 촬영 시작 1년 전에 캐스팅해 헬렌을 비롯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틸다는 매일 2시간씩 노래 연습을 했어요. 무대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가르쳐주는 코치도 있었죠. 제가 원했던 건 목소리를 통해 헬렌과 틸다의 모습이 비슷해보이는 게 아니라 틸다가 헬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었어요.“

”헬렌의 남편 제프 월드 역을 맡은 에반 피터스는 정말 훌륭한 연기자예요. 그순간의 감정을 잘 잡아내고 관객들에게 현실감을 선사하죠. 그의 연기는 모든 신이 살아있게 만들어요. 그만큼 생동감 넘쳤죠. 저는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를 독려하는 편이에요. 에반은 대사뿐만 아니라 많은 행동을 애드리브로 소화했죠. 헬렌의 노래, 공연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 감정을 통해 관객분들이 공감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문은주 감독의 남편은 ‘게이샤의 추억’으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한 디온 비브 촬영감독이다. 두 사람은 20년 넘는 세월동안 함께하며 서로의 작업을 돕고 공유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문은주 감독은 디온 비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로 인해 ‘아이 엠 우먼’에서 공연 실황같은 무대 연출이 가능했다.

”정말 운이 좋죠. 매우 훌륭한 촬영감독 남편이 있어서 촬영이 쉬웠어요. 어렸을 때 영화학교에서 만나 오랜 시간 함께했죠. 서로 잘 알아서 24시간 붙어있었고 짧은 일정 속에서도 명확하게 소통했어요. 모든 독립영화가 일정이 빠듯하지만 충분히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시간이 비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배우 리허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죠. 그래서 저희 둘의 합이 중요했어요. 현장에서 저희 둘은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 작업했어요.(웃음)“

”이번 부산영화제 레드카펫 참석자 중 70%가 여성 영화인 아니었던가요? 관객분들이 어머니, 아내였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변화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꿈이 있다면 꿈을 가졌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요. 70년대 헤어, 패션 스타일, 음악을 즐길 수도 있고요.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잖아요.“

최근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셸 윌리엄스가 수상 소감으로 남녀 임금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줄리 델피가 ‘비포’ 시리즈에 같이 출연한 에단 호크와의 임금 차별도 폭로했다. 그만큼 할리우드에서는 남녀에 대한 인식 차이가 화제다. 문은주 감독도 한국계 호주인, 여성 감독으로서 이에 대해 느끼는 바가 컸다. 그리고 ‘아이 엠 우먼’을 통해 차별에 맞서 싸웠던 한 여성을 보며 관객들이 공감을 느끼길 바랐다.

”미셸과 줄리가 그런 목소리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줄리는 토론토에서 만나 같이 저녁을 먹기도 했죠. 그는 자기가 느끼는 바를 거리낌없이 표현해요. 그런 부분이 존경스럽죠. 아시아 영화감독으로서 차별받는 것보다 ‘여성’이어서 차별받은 적이 많아요. ‘아이 엠 우먼’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결정권자를 가진 남자분들이 ‘이걸 왜 만들어’라고 많이 질문했죠.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여성 결정권자가 필요해요 임금 차별만 문제가 아니죠. 영화관에서 (남성 중심의 영화가 많아) 제가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라고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여성 결정권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헬렌 레디한테 이 영화를 보여줬더니 울었어요. 헬렌에게 늘 얘기했던 게 ‘이건 다큐 촬영이 아니다. 너의 모든 것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네 삶의 영혼은 바꾸지 않을 것이고 음악이 얼마나 세상에 큰 영향을 줬는지 영화로 말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많은 관객이 헬렌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삶의 변화를 느끼길 바라요. 헬렌은 유명한 가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차별에 맞서 싸웠지만 중요한 건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노래로 진실된 감동을 줬냐예요“

# ‘아이 엠 우먼’이 보고 싶다면?

10월 6일 오후 7시 30분 메가박스 해운대(장산) 6관

10월 9일 오후 4시 메가박스 해운대(장산) 4관

사진=박경희, 싱글리스트DB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