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아이가 보았네’의 태항호와 김수인이 그려낸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을밤을 훈훈하게 물들였다.

4일 방송된 KBS 드라마스페셜 2019 ‘웬 아이가 보았네’(연출 나수지 극본 김예나)는 들켜선 안 되는 꿈을 꾸는 남자 순호(태항호)와 열두 살짜리 외로운 산골소녀 동자(김수인)의 특별한 공생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선사했다. 성별과 나이, 다름을 넘어선 사람의 이야기, 진솔한 가족애가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를 살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집 나간 엄마 대신 술주정뱅이 할아버지 인복(김기천)과 둘이 사는 동자는 “엄마 아빠도 없다”는 놀림에 주먹을 휘두르는 선머슴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소녀다. 할아버지의 주정을 피해 버려진 외딴집에서 하염없이 라디오를 듣는 이유도 라디오가 들려주는 목소리가 엄마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아지트 삼았던 외딴집을 차지한 순호는 눈엣가시였다. 그런데 순호의 집을 맴돌던 동자는 여자가 되길 꿈꾸는 순호의 비밀을 알게 됐다. 온통 핑크색인 집안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예쁜 옷과 발끝에 곱게 바른 페디큐어, 여장을 하고 찍은 사진까지. 숨겨왔던 비밀을 들키고 “내 얘기, 여기서 본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라는 순호에게 동자는 당돌하게도 “비밀 지켜주는 대신 소원 세 개 들어줘”라고 요구했다.

“이집 나랑 같이 써”라는 동자의 첫 번째 소원으로 두 사람의 특별한 공생이 시작된다. 꽃으로 화장품 만드는 일을 하는 순호에게 산골소녀답게 이것저것을 알려주는 동자, 완성된 크림에 ‘동자 크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순호 그리고 함께 라디오를 듣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했을 두 외톨이는 그렇게 가까워졌다.

순호는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첫 생리를 시작한 동자를 엄마 대신 챙겼고, 동자의 두 번째 소원인 동자의 엄마 원미(진경)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동자는 동요대회에 나가며 세 번째 소원을 말했다. 엄마가 동요대회 와주면 좋겠노라고. 그러나 동요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는 소문이 퍼졌다. 그럼에도 동요대회에서 동자가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본 순호는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로 시작하는 ‘들장미’를 끝까지 부르며 활짝 웃는 동자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그때 경찰이 등장해 순호를 체포했다.

순호의 집이 엉망이 되고, 누군가 던진 동자의 라디오에 맞은 순호가 피를 흘린 순간 동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외쳤다. “꼭 지키겠다” 약속했던 순호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순호는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이에 “잘못했어, 나 두고 가지 마”라고 외치는 동자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사무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순호가 떠나버린 후 빈집에서 울며 하염없이 “엄마”를 부르짖는 동자의 귓가에 “동자야, 엄마 왔어”라고 말하는 원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빚 갚으면 찾아가려고 했다는 원미를 만난 순호가 여자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모아왔을 수술비를 건네며 원미를 돌려보낸 것. 도대체 누구시기에 이런 호의를 베푸느냐는 원미의 질문에 순호는 “나도 우리 동자 엄마예요”라고 답했다. 드디어 재회한 동자 모녀와 같은 밤하늘 아래 트럭을 타고 달리는 순호의 엔딩은 먹먹함으로 안방극장을 가득 채웠다.

사진= KBS 2TV ‘웬 아이가 보았네’ 방송캡처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