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에 또 한 명의 배우 출신 연출가가 탄생했다. 5일 막을 내린 뮤지컬 ‘넌센스 2’의 주연 배우 겸 연출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박해미(53)를 만났다. 강행군에도 화수분 같은 열정을 토해내는 에너자이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달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지방공연에 나선다.

 

 

■ ‘넌센스2’ 16일 공연에 1만5천 동원...흥행 성공

지난달 1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넌센스 2’는 단 16일, 총 24회의 짧은 기간에도 1만5000명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은 인터미션 없는 120분간의 상연 시간 내내 웃음을 쏟아냈다. 30년 넘게 관객과 호흡해온 배우의 내공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연출만 했다면 너무 재밌고 성취감을 느꼈을 거예요.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때 윤석화 선배가 연출 겸 출연하는 걸 보고 괜찮을까 걱정했었거든요. 지난해 ‘넌센스 2’ 섭외가 들어왔을 때 연출만 하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출연까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엮인 거죠.(웃음) 원래는 소극장에서 올리려고 했다가 반응이 좋으니 1000석짜리 대극장으로 바뀌었고요,”

지난해 7개월간 소극장 뮤지컬 ‘넌센스 2’에 원장수녀 레지나로 출연해 6개 도시 지방투어까지 진행했기에 애착이 남달랐다. 작품의 구석구석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 연출을 맡으며 원작을 대폭 수정했던 것도 그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아쉬움도 크다.

 

■ 공연 첫날 부족한 완성도에 대성통곡

“생각했던 그림대로는 잘 나왔는데 제작비 탓에 연습기간이 짧아서 손발이 안 맞은 게 문제였죠. 첫 공연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죠. 음향을 충분히 맞추질 못해서 대사가 제대로 안 들리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거든요. 그날은 너무 창피하고 관객에게 미안해서 ‘무대에서 이대로 죽자’란 생각이 솟구치더라고요. 그날처럼 펑펑 운 적이 없어요. 헤어진 큰아들 때문에 아파서 운 이후 20년 만에 시원하게 울어봤어요.”

 

 

프로로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특히 전체 그림을 보면서 연출을 해야 하는데 무대 위 배우로서 손발이 묶이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생겼다. 그래서 ‘넌센스 2’ 시즌2에선 무조건 연출만 할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다가 사족을 단다. “배우를 하더라도 더블 캐스팅으로...”. 으이구, 천상 배우다.

 

■ 뮤지컬 배우하며 연출가 꿈 키워

해미뮤지컬컴퍼니 대표이기도 한 박해미는 극단 운영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보다 이전에 연출가의 ‘끼’를 발휘했다. 초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희곡을 낭독할 때 친구들을 진두지휘했다. 중학교 때는 합창을 지휘했다. 그게 다 연출이었다.

“뮤지컬 배우를 할 때 연출자들은 대부분 연극하던 분들이었어요. 음악을 아셨으면 손색이 없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맘마미아’ 등 작품들을 해나가면서, 연출가의 롤을 보고 접하면서 뮤지컬은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확신을 굳혔고요. 언젠가는 하겠단 생각은 갖고 있었고 작곡에도 관심이 많아서 ‘내가 직접 음악을 만들어서 연출을 해야지’ 하던 차에 ‘넌센스 2’를 만나게 된 거예요. 오리지널을 전혀 다른 작품으로 뒤집었어요.”

 

■ 무대 떠난 시절 ‘넌센스 잼보리’로 복귀

‘넌센스’와는 인연이 깊다. 2002년 ‘넌센스 잼보리’가 국내 초연됐을 때 출연했다. 당시 사람에 대한 상처로 인해 진저리가 쳐지던 무대를 떠나 경기도 양평에 은둔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다시 그를 공연계로 불러 들였고 직후 ‘맘마미아’의 여주인공 도나에 캐스팅되며 ‘박해미 전성시대’를 열게 해준 운명과 같은 작품이다.

 

 

“가장 허접한 역할이 남아 있었어요. 누구나 맡기 싫어하던 원장수녀였죠. 솔직히 배우로서 큰 매력을 못 느꼈어요. 수녀복을 뒤집어쓰고 하는 것 자체가 싫었고요. 그런데 ‘오케이~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나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싸이의 ‘챔피언’을 집어넣고 분위기를 확 올렸어요. 그러면서 ‘저 배우 누구야?’란 소리를 들을 만큼 존재감을 부각시켰죠.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죠. 그런데 이번에도 ‘넌센스’가 질기게 나를 불러들였네요.(웃음)”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넌센스 2’ 제의가 들어왔을 때 원작을 다시 봤다. 너무나도 재미가 없었다. 너무 올드해서 망하기 십상이란 ‘촉’이 대뜸 왔다.

 

■ 원작 대폭 수정...뮤지컬은 무조건 Fun 해야

“이걸 어떻게 하지? 싶더라고요. 일본풍 배경이 많았고 색감, 기모노 의상 심지어 대사에서조차 일본을 홍보하고 있더라고요. 관객이 뭘 좋아하는지를 아니 고집스레 바꿔버렸어요. 그동안 창작뮤지컬을 많이 했고, 창작 과정에서 프로듀싱 역할을 일부 했는데 그때마다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동물적 감각을 얻게 된 거죠.”

재탄생한 ‘넌센스 2’에는 개그우먼 조혜련, 방송인 박슬기가 출연해 폭소를 펑펑 터뜨렸다. 아이돌 가수 예원 앨리스 희도가 출연하고 신예 디바 이미쉘이 캐스팅됐다. 이러한 캐스팅을 비롯해 영상 활용, 록음악과 랩 및 코믹요소 강화 등을 두고 일부 평단에선 작품의 오락성과 가벼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뮤지컬이 뭐죠? 관객들이 따로 있나요? 뮤지컬은 21세기 쇼이고, 쇼는 즐거움을 주는 거예요. 예술성, 문학성을 얻으려면 순수예술로 가야죠. 뮤지컬은 대중예술이고요. 새롭게 자꾸 우리 색깔에 맞춰서 재창작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서 나의 철학을 넣고 싶은 거죠. 특히 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넣고 싶어요. 누가 뭐라 해도 두렵지 않아요. 관객들이 좋아하면 되죠. 박수 받지 못하면 공연은 접어야 하는 거죠. 쇼는 무조건 펀(fun)해야 해요. 거기에 감동까지 있으면 최고죠.”

 

■ 에디트 피아프 샹송 엮은 뮤지컬 구상

화법이 늘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슬쩍 ‘제작’에 대해 묻자 승천하던 눈꼬리를 내린다. “제작은 너무 상처가 많아서...빚은 다 갚았다”고 소심한 대답을 내놓는다.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구상하는 작품이 있어요. 전설적인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모티프 삼아 뜨거운 여자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그녀의 노래를 가지고 완전히 한국버전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의 박해미란 배우에게 가장 걸맞은 역할이 될 거고요. 내가 여자니까 가장 밀도 있게 접근할 수 있겠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무대를 겨냥하는 작품이에요.”

다시 눈에 불꽃이 인다. 영화 ‘아저씨’의 대사처럼 내일이 아닌 오늘만 사는 여자, 그것도 목숨 걸고 오늘을 살아내는 무대쟁이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다.

 

사진= 로네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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