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이야기’로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이성강 감독이 자신의 4번째 장편연출작 ‘프린세스 아야’로 부산을 찾았다. 눈을 사로잡는 작화, 짙은 감성을 담은 스토리, 황홀한 판타지 비주얼까지 이성강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며 ‘프린세스 아야’를 통해 또 하나의 새 바람을 일으키려고 한다.

‘프린세스 아야’는 이전의 이성강 감독 작품과 비교하면 대중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 권선징악 등 어린 관객들이 재미있어할 부분이 많다. 또한 가수 백아연, 갓세븐 진영의 목소리 연기로 어린 관객뿐만 아니라 2030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부산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1996년 1회 영화제때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부산을 방문한 뒤 자주 오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프린세스 아야’는 저의 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뮤지컬 영화죠. ‘천년여우 여우비’도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있지만 완벽하게 뮤지컬 시퀀스가 있는 작품은 ‘프린세스 아야’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관객분들이 극장에 앉아있는 시간 동안 행복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프린세스 아야’ 초기 기획 단계부터 뮤지컬 장르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었죠.”

“솔직히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항상 어렵습니다. 일을 하면서 스스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그 외로움을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마치 관객이 된 듯한 기분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행복함은 자기를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위로해줄 때 생긴다고 믿습니다. ‘프린세스 아야’가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에선 몽골로 떠나더니 ‘프린세스 아야’에서는 고대 아시아, 그것도 아시아 서쪽 분위기를 담아냈다. 이성강 감독은 언제부터인가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배경 삼아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의 오픈 마인드, 호기심,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해보려는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은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베이스로 기획된 작품이었죠. 제가 그 당시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몽골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카이’를 중앙아시아 배경으로 만들게 됐죠. ‘프린세스 아야’도 마찬가지였어요. 유럽 애니메이션을 보면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이야기를 다루는 등 배경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잖아요. 한국 애니메이션도 배경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카이’는 몽골, ‘프린세스 아야’는 고대 아시아, 마치 실크로드처럼 점점 아시아 서쪽으로 향하죠. 제 마음의 동경이 유럽을 향해 있어요. 한국이라는 틀에만 갇혀 이야기를 만들긴 싫죠.”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저는 작화를 다르게 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진 않았어요. ‘마리 이야기’부터 ‘프린세스 아야’까지 조금씩 작화가 달라 보이는 건 애니메이터의 스타일 때문이죠. 저는 애초에 만화가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에요. 작품에 참여하는 애니메이터들의 성향에 따라 작화 스타일이 좌지우지돼죠. ‘마리 이야기’는 제가 거의 캐릭터 디자인을 했고 ‘여우비’는 경력이 오래된 애니메이터, ‘카이’는 젊은 애니메이터들, ‘프린세스 아야’는 3D 애니메이터들의 결과물이에요. 제가 작화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그분들의 경력을 무시할 순 없어요. 그림도 그릴 줄 아는 분들이 해야 제대로된 작품이 나오니까요.”

‘프린세스 아야’의 가장 큰 기대포인트는 바로 백아연과 진영의 목소리 연기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에서 두 배우는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며 한편의 ‘라라랜드’를 연출했다. 첫 목소리 연기에도 불구하고 백아연과 진영은 캐릭터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며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냈다. 이성강 감독도 그런 배우들의 능력에 감탄하게 됐다.

“주변으로부터 많은 추천을 받았어요. 그중 백아연, 갓세븐 진영씨가 있었죠. 저희가 제안을 해도 거절할 확률이 높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선뜻 같이 하겠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어요. ‘프린세스 아야’의 아야공주(백아연), 바리왕자(진영)는 노래 실력과 캐릭터 싱크로율이 중요했죠. 두 분은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졌고 주인공들과 이미지가 비슷했어요. 애니메이션 더빙 경력이 전무한데도 백아연, 진영씨는 굉장히 잘하셨죠.”

“‘프린세스 아야’에서 연기할 때 중요한 건 노래였어요. 영화 속 노래들이 장면마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타고 가거든요. 노래 톤과 연기 톤이 어긋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이게 전문 성우들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백아연, 진영씨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죠. 정말 고마웠어요. 처음엔 제가 녹음실에 들어가서 같이 캐릭터 흉내도 내고 디렉션을 줬는데 집에서 많이 연습을 하고 오셔서 나중에는 제 도움이 필요가 없어졌죠.(웃음)”

공주가 동물로 변하는 설정, 정략 결혼 같은 설정이 ‘프린세스 아야’에 등장한다. 로맨스부터 액션, 드라마, 판타지까지 모두 맛볼 수 있는 ‘프린세스 아야’는 이런 설정으로 다양한 관객층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이 작품성은 인정받지만 흥행적인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을 보면 ‘프린세스 아야’의 다양성이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받지 않을까 싶다. 이성강 감독은 20년 넘게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있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바를 가감없이 말했다.

“이번 영화에 공주가 동물로 변하는 설정, 정략 결혼 등 신선한 설정들이 있죠. 특히 정략 결혼 설정은 참 고민 많이 했어요. 특히 어린 관객들이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에는 정략 결혼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현재에도 이와같은 여성의 처지를 말해줄 유사한 프레임은 있다고 생각해요. 동물로 변하는 설정 등 판타지적 요소들은 영화에 필요한 부분이었어요. 굳이 애니메이션이 현실적으로 그려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도 있고 극영화도 있으니까요.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들의 환상을 스크린에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판타지적 요소들을 제 모든 작품에 집어넣게 됐죠.”

“최근에 ‘언더독’ ‘레드슈즈’ 등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선방하고 있다고 보여져요. 다만 과거보다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드는 창작가, 감독들이 위축돼 있는 느낌을 받죠. 예전에는 제작사, 투자사 쫓아다니며 기획서를 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저도 버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 시대에 젊은 감독들이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경제적 요건을 마련하기 어렵잖아요. 젊은 감독들의 아이디어, 만듦새는 좋은데 흥행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워요.”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어려운 시기를 뚫고 나올 인물이 나타날 거라고 믿으니까요. 저도 처음에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지 몰랐어요.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었고 해외 단편 애니를 보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꿈을 꿨죠. 요즘 단편 애니 세계에서도 훌륭한 한국 감독들이 많고 특히 TV 시리즈는 성공한 작품이 많잖아요. 앞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장편, 단편, TV 시리즈 가릴 것 없이 사람들에게 큰 사랑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진=김수(라운드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