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국제영화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첫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장편연출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단 하나의 상도 가져가지 못했다. 시상식 당시 모든 이의 박수를 받으며 눈길을 끈건 래쥬 리 감독의 ‘레미제라블’이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제목을 가져와 과거 격동의 프랑스가 아닌 현재의 프랑스 문제들을 꼬집는다. 첫 장편연출작 ‘레미제라블’을 들고 래쥬 리 감독과 주연배우 다미엥 보나르가 부산을 찾았다.

다미엥 보나르, 래쥬 리 감독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청작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수많은 사람들. 그 외곽엔 경찰의 외압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레미제라블’은 경찰과 아이들의 대립 관계를 통해 프랑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래쥬 리: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저는 18세였습니다. 그 당시 백인, 흑인, 아랍인 등 모든 인종이 하나로 뭉쳤고 결국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했죠. 20년 전엔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20년 후 현재 과거는 잊혀졌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가 지금 프랑스에서 사라졌죠. 경찰들이 폭력에 의해서 주민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고 ‘노란 조끼’ 운동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건 정부의 무책임이 원인이었죠.”

최근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캐리 람 국방장관은 영국 식민 통치 시절의 유산인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을 근거로 시위대가 얼굴을 못 가리게 하는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또 한번 홍콩이 시위대와 정부의 폭력으로 물들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이 ‘레미제라블’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레미제라블’은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둘 파헤친다.

래쥬 리: “저는 홍콩 시위대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데모하는 게 당연하죠. 저는 시위대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사실 ‘레미제라블’은 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우리는 폭력적인 시스템에 살고 있고 프랑스 외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방법으로 폭력을 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폭력 그 자체를 지지하지 않지만 정의를 위해서 폭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이 있어야 그때서야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이죠.”

다미엥 보나르: “예전에는 경찰이 마을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며 제 역할을 다 했습니다. 최근엔 상황이 악화돼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죠. 프랑스에서는 경찰을 ‘평화지킴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제 경찰은 정부가 만든 규율, 정책을 주민들이 지키게 만들려고 강압적인 행동을 취하죠. 평화를 수호하는 그들이 어느 순간 국민들을 억압하는 세력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봐도 경찰의 직업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경찰들도 혼란스러워 합니다. 국민을 지켜야하는 자신들의 본래 역할에 갈등을 겪고 있으니까요.”

‘레미제라블’은 래쥬 리 감독의 단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편영화다. 실제로 래쥬 리 감독이 10년 전 경찰의 활동을 촬영하면서 겪었던 폭력적인 문제들을 영화에 담았다. 한 아이가 검거돼 수갑을 찼는데도 경찰의 폭력이 이어져 래쥬 리 감독은 이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그만큼 래쥬 리 감독에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래쥬 리: “이 영화는 제가 정부에게 보내는 ‘경보 발령’ 같은 작품입니다. 얼마 전에 마크롱 대통령에게 영화를 보여주려고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레미제라블’ 자체가 일종의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죠. 프랑스 같은 강대국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경찰의 폭력, 국민이 받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어떤 정책이든 국민을 위한 교육, 문화에 초점을 두면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미엥 보나르: “제 가족은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성인이 되면서 정치에 신경쓰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배우로서 어떻게 하면 현 사회의 문제점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래쥬 리 감독과 ‘레미제라블’ 단편을 만든 후 1년 동안 전세계의 문제점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보게 됐습니다. 영화에서 제가 연기한 스테판은 경찰이었기 때문에 정책, 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그 한계도 알 수 있었죠.”

래쥬 리 감독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레미제라블’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물론 홍콩,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세계는 계속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있다. 래쥬 리 감독의 바람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래쥬 리: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세계 사람들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억압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합니다. ‘레미제라블’은 정치, 사회적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해 대화하며 논쟁을 벌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싱글리스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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