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을 시작으로 거장 이준익 감독의 ‘동주’로 2016년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박정민이 오늘(9일) 개봉한 김경원 감독의 '아티스트'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인 봄, 삼청동의 카페에서 아직도 영화 촬영 현장이 신기하기만 하다며 웃음 짓는 박정민을 만났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진중한 대답으로 시종일관 성실한 자세를 유지한 그는 한편으론 젊은 배우다운 활기차고 거침없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박정민이 열연한 재범은 갤러리 대표이자 아티스트로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인물이다. 그는 재범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캐릭터와 자신간의 괴리를 좁히는 것에 중점을 뒀다. “갤러리 관장을 떠나 재범이 표현하는 방식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했어요. 재범의 고민과 갈등이 제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데 표현 방식이 달랐죠. 그래서 원래 혼자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감독님과 스텝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오랜만에 영화를 본 소감에 대해 “똑같이 마음이 아팠다”고 말문을 연 박정민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붙여놓은 걸 처음 봤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마음에 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장면에서 실제로 제가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알기 때문에 영화가 전체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제가 연기한 부분만 보게 되더라고요.”

 

재범의 감정이 클라이막스에 오르는 장면을 칭찬하자 “상황이 도와준 것”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쑥스러워했다. “상상력으로 해야 하는 장면이라 어떻게 하면 진짜처럼 보일지 고민했고, 감정연기에 어느 정도의 계산을 더했어요. 집중해서 호흡도 올리고, 뛰며 몰입하던 와중 고양이가 우연히 지나갔는데 그 놀람이 도움이 됐죠. (웃음) 당시 동료 배우들과 친하게 지낸 것 역시 상황 몰입을 도왔어요.”

극 중 ‘지젤’ 류현경과의 케미는 유독 관객의 눈길을 끈다. 지젤과 재범의 자연스러운 대화처리 역시 인상적인 대목이다. “해야 되는 대사는 하되, 나머지는 실제로 대화를 나눴어요. 그날따라 촬영이 잘 풀리지 않아 그냥 리얼하게 가보자며 해봤는데 괜찮은 장면을 건질 수 있었거든요. 저는 안 풀리는 장면의 경우에는 감독의 지시를 따라가는 스타일이예요.”

감독의 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연기하는 편이다. 영화 감독들에게만큼은 고마운 배우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전체를 생각하는 건 감독님이니까 감독님의 생각이 가장 맞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의 이야기를 잘 듣고 디렉션을 따르려고 노력하죠. 이런 거는 어떨까요, 하고 사소하게 의견을 묻고 소스를 드리는 건 있어요. 선택의 수를 넓혀드리려고 하죠. 편집실에서 체크할 때 이것보다 이게 더 나은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지젤과 재범의 애정라인에 대해서는 결코 사랑이 아닌 것 같다며 단호히 대답했다. 멜로적인 사랑, 로맨스는 영화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고 류현경과 사전에 대화를 나눴다. “한 예술가와 예술가로서 어떤 지점이 통했기 때문에 만난 거라고 생각해요. 멜로적인 게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랑은 있었을 것 같아요. 가령 애증이라던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한 만큼 기억에 남는 작품들도 많다. “모든 현장이 힘들고 재밌었지만 가장 임팩트가 크게 남은 것은 역시 ‘동주’예요. 좋아하는 감독님, 선배들과 함께 연기한 ‘더킹’도, ‘안투라지’도 신기했어요. 상상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을 맡게 되는 것이 즐거웠죠.”

 

부모님을 떠올리면 늘 애틋하다. 처음으로 배우가 되겠다고 용기 내서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신 게 놀라웠던 반면 복병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늘 저를 자유롭게 풀어준 편이었어요. 그래서 믿고 있다가 배신당한 느낌이 크셨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난리가 나셨죠. 하지만 부모님은 이제 제 1호 팬이 됐어요. 특히 어머니는 ‘동주’를 무척 좋아해서 상영 내내 영화를 보러 다니셨대요. 팬클럽 행사가 있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돈을 넣어주셔서 한 때는 말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놔두려고요.”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건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속 깊은 생각을 전했다. “그냥 나중에도 이 일을 계속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즐겁지 않으면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경우 특별히 아, 이걸 해보고 싶다는 건 없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 꼭 안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제가 대중들 앞에 덜 서서 그런지 아직은 고착된 이미지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여러 가지 역할을 해보고 싶죠. 제 노력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요인들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역할은 곧 '진심' 아닐까. 옛날에는 개념적으로만 생각했던 ‘배우의 진심’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표현해야 잘 전달될지 공부중이다. 연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화살로 확 꽂히는 순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 한다. “데뷔 때나 지금이나 힘들죠.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바깥의 시선이 무척 뿌듯해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좋아하면 너무 좋아요.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죠. 지금 당장은 차기작을 잘 해내는 게 목표에요. 이제 계속 촬영에 들어갈 것 같아요. 연극 같은 경우에는 연말에 해볼까, 어렴풋하게 계획하고 있어요.”

 

 

사진=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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