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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태어난 류현경, 화폭에 그려가는 일상성

배우 류현경(34)이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감독 김경원)로 돌아왔다. 개봉일인 9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혜성처럼 등장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버린 동양화가 지젤(오인숙)과는 닮은 듯 다른 모습이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예술가였다는 자부심 강하고 소신 투철한 지젤과 달리 자신을 낮추기에 부산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애달픔은 데일 듯 뜨겁다. 그런 그녀가 하얀 화폭에 보석처럼 빛나는 일상성의 붓질을 한다.

 

 

■ "아티스트 지젤 통해 꿈과 신념, 성공에의 갈등 표현하고 싶었다"

“미술계와 화가 소재라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새로웠고 위트 넘쳐서 찍으면 재밌을 수 있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영화에 집중하다보면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부딪힐 만한 일이구나 싶었고요. 누구나 꿈과 신념, 성공이라는 갈림길에서 갈등하잖아요.”

아예 미술엔 소질이 없다. 그런데 덴마크에서 10년 동안 유학한 뒤 귀국, 알바와 구직활동을 전전하던 와중에 오묘한 색채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일약 ‘젊은 천재화가’로 추앙받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다. 불안함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감독님께 ‘괜찮으시겠느냐’고 먼저 물어봤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 분 작업실에 갔어요. 한지에 물을 뿌린 뒤 말리고, 담채를 위해 안료를 아교와 함께 개는 등 그림을 그리기 직전까지 오랜 시간을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해나가는 걸 직접 봤죠. 순간 순간에 집중하는 이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더라고요. 이 과정이 쌓이면서 작품이 탄생하게 되고, 지젤은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란 생각이 확연히 들게 됐어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나, 연기를 하는 과정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소위 예술을 한다는 화가와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연기할 때도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공감하려고 노력해요. 연기자 생활하면서 갈등이나 부딪힘이 있으나 따지고 보면 이게 우리 직업군의 특수성이 아닌, 많은 이들이 살면서 겪는 일일 수 있겠다, 이번엔 그런 면에서 더 공감을 했던 듯해요.”

 

 

■ '파수꾼' 통해 인연 맺은 박정민, 소울메이트

예술혼을 꼿꼿이 지켜나가려는 지젤의 반대편엔 성공할 만한 작가(작품)에 대한 촉이 뛰어난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이 있다. 지젤은 재범과 우연히 만나면서부터 재범이 그리는 ‘큰 그림’에 운명처럼 휩쓸리게 된다. 네 살 아래인 박정민과는 후배가 아닌 절친처럼 지낸다.

“굉장히 친한데도 이번에 작업하면서 ‘놀랍다’란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살아난 지젤에게 와서 딜(deal)하는 장면에선 순간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놀라서 스크린 속 내 표정이 두려움으로 가득하더라고요. 상대 배우로 하여금 연기의 집중도를 높여주는 친구구나 싶어 고마웠죠. 재범의 손에 목을 짓눌리는 장면에선 목이 눌렸다기보다는 정민이의 마음, 순간 바뀌는 에너지에 눌려버렸어요. 후배지만 자극이 되고 존경하는 친구예요.”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영화 ‘파수꾼’(감독 윤성현) 속 박정민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윤 감독과 함께 영화제 사회를 보게 됐을 때 박정민과 처음 만나 연기 칭찬을 해주며 서서히 친해지게 됐다.

“정말 영화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평범해 보이는데 가슴에 에너지가 너무나 넘치는 사람이죠. 무표정함 속에 마음이 다 드러나는 배우고요. 그런 게 상황을 압도해버리는 친구고요. 의외로 여성스러운 면이 있어서 여자친구들과 할 만한 얘기를 정민이와 그동안 많이 나눠왔어요.”

 

 

■ 96년 '곰탕' 김혜수 아역으로 데뷔...재능 없기에 연습만이 살길

1996년 SBS 드라마 ‘곰탕’의 김혜수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했으니 경력 21년의 베테랑이다. 숱한 드라마와 단편·독립·상업영화,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했다. 한때 충무로에서 ‘여자 이경영’으로 다작배우 리스트에 오를 정도였다.

최근 몇 년 새 그녀의 필모그래피만 해도 ‘열정같은 소리 하고있네’ ‘오피스’ ‘쓰리 썸머 나잇’ ‘나의 절친 악당들’ ‘제보자’ ‘만신’ ‘두결한장’에서 계약결혼을 하는 레즈비언부터 만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에 쓱쓱 몸을 실었다.

“나의 다른 면모를 봐주시고 캐스팅을 해주시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죠. 내면의 다른 얼굴을 꺼내보면서 나를 잘 알 수 있는 시간들이 됐어요. 전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연습을 죽도록 해야만 현장에서 어떤 표현을 할 때 좀 더 유연해질 수 있고요. 좀 더 진실하게 표현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타이프인 듯해요. 그래서 늘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할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구나란 자극을 받아요.”

여배우 특유의 도도함이나 절로 상대를 위압해버리는 느낌이 없다. 순하고 겸손한, 사람 좋은 사람 느낌이다. 특히 아역배우 출신 성인배우들에게서 풍겨나는 ‘고수급’ 관록도 풍겨내질 않는다.

 

 

■ "내 연기 통해 위로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어릴 때는 마냥 현장이 재밌었고 사람들과 같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즐거웠어요. 스물다섯에 영화 ‘신기전’을 하면서 ‘내가 연기를 평생 할 수 있으면 그것만큼 복된 일이 없겠다’란 소망을 품게 됐어요. 그때부터 평생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왔죠. 결론은 ‘경계나 편견 없이 어느 작품, 캐릭터에 쓰여진다면, 그걸로 평생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겠다’였고요. 그래서 캐스팅이 되면 그거에 걸맞은 표현을 하려고 할뿐이에요.”

진짜 잘했다는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간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없다. 물론 고민과 고통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늘 행복한 일이라고 여겼다. 특별히 도전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갈무리한다.

“나하고 닮아있는 지점은 무엇일까를 늘 고민해요. 내가 캐릭터를 표현했을 때 실제인 것처럼 해냈으면 좋겠다, 공감을 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죠. 많은 분들은 아니라도 좋아요. 소수의 분들이 저를 보고 ‘너무 공감됐어요. 제 일 같아요’ ‘저희 언니랑 비슷해요’란 말이 제일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화답일 듯해요. 제 연기를 통해 스스로 위로 받고, 나도 같이 위로해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용원중 기자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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