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Cool)'은 '멋지다'란 의미로 통용되는 영어 단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중립성 관련, “MB 때 쿨했다”고 한 발언이 여전히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원들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받는 그의 태도는 냉정하고 위풍당당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를 두고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와 먼지털기식 수사 의혹, 대통령 인사권 침해 및 정치개입 등 과거부터 이어져온 ‘정치검찰’ 행태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과거에 대한 성찰이나 유감은커녕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 "결과로 말씀드리겠다" 등의 원론적 답변과 즉답을 피하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소신인지 고집과 오만인지 해석이 분분하나 겸손함은 별반 느껴지질 않았다.

과거 검찰이 정권과 결탁해 공권력 남용을 해왔던 사실, 검찰 안팎으로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정의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검찰총수로서 입장표명은 일체 없었다.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그가 국민이 아닌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보위만을 따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웠던 대목이다.

정무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 역사인식 부재의 검찰총장 국감 모습을 보며 답답함과 섬뜩함이 교차했다. 더욱 한심한 이들은 국회의원들이다. 과거 정부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한겨울 내내 광장을 촛불로 밝혔던 시민들의 힘으로 탄생한 정권의 검찰총장이 버젓이 MB 정부 때 “가장 쿨했다”고 대답하는데 이런 말을 이끌어낸 정치평론가 출신 이철희 의원을 비롯해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입바른 소리로 후보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검사 출신 금태섭 의원, ‘정치 9단’이라 자부하는 박지원 의원 누구 하나 반박이나 질타조차 하지 못했다.

존칭의 중복을 피하는 올바른 어법인 ‘총장’ 대신 ‘총장님’을 연발하며 너무나 예의 바르게 질문하는 걸 보면서 검찰의 위세도 재확인했다. 최근 들어 검찰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성역과 같던 '무서운' 집단을 일거에 저잣거리로 끌어내린 촛불시민들 밖에 없는 듯 싶다.

"쿨했다"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악의적인 피의사실 공표로 ‘논두렁 시계’ 오명을 뒤집어쓴 채 비극적 죽음을 선택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통일민주당 초선의원이었던 1989년이 포개진다. 5공비리·광주 청문회 마지막 날인 12월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진압을 '자위권 발동'이라고 발언했다. 이로 인해 여야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소동이 일자 전 전 대통령은 퇴장해버렸고, 노 전 대통령은 거세게 항의하며 연단을 향해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졌다. '청문회 스타' 탄생 순간이었다. 국민을 대신해 이런 열정과 용기를 발휘할 국회의원을 기대하는 건 이제 ‘리얼’이 아닌 ‘판타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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