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치유와 위로를 전하는 이상은이 새 앨범 ‘fLoW’를 내놨다. 1988년 ‘담다디’의 톰보이 아이돌은 ‘언젠가는’ ‘공무도하가’ ‘비밀의 화원’ ‘삶은 여행’ 등 인생곡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고 책, 그림, 방송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로 품을 넓혔다.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그의 아지트 홍대 인근에서 30년차 음악작가를 만났다.

2014년 발매한 15집 ‘lulu’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EP ‘fLoW’에는 흐르듯 살고, 노래하는 이상은의 시각이 관통하는 6곡이 담겼다. 이규호 이능룡 박성도 강이채 등 팔팔한 뮤지션들이 편곡에 참여해 모던록, 포크, 팝, 일렉트로니카 등 다채로운 색감으로 앨범을 채웠다. 무엇보다 한동안 무겁고 난해하게 다가왔던 이상은표 음악이 밝고 쉽게 변주돼 귓전을 살랑인다.

“현실 상황이 여러 모로 시끄러워서 앨범 내는 게 아닌거 같았어요. 아버님이 아프시면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길어진 거 같아요. 지난 앨범 때는 혼자서 편곡까지 다 했는데 이번엔 김기정 프로듀서에게 많이 기댔어요.”

‘감’이 안오는 당혹스러움을 경험했다. 작곡은 하겠는데 대중가요 신이 그 사이에 너무나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예전엔 음반작업 도중 오키나와에 2주가량 갔다와서 한달 쉬고난 뒤 작곡하는 등 여유롭게 진행했다면 지금은 신속하고 타이트하게, 얼굴 한번 못본 채 카톡으로 모든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빨리 캐치하고 묻어가야 했다.

“지독히도 빠른 템포를 따라가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음악을 이렇게 빨리 만들어도 될까 의문이 계속 들었고요. 하지만 젊은 피들에 질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해 홍삼을 먹어가면서까지 그들의 페이스에, 새롭게 바뀐 시스템에 맞췄어요. ‘적응’이 관건이었던 셈이죠.”

인기 절정의 시기에 돌연 활동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미국 뉴욕으로 ‘배가본드’처럼 살아갔던 자유로운 영혼이라 여길 법하지만 알고보면 꽤 빡빡한 음악활동을 해왔다. 30년 동안 16장의 앨범을 냈으니 2년에 한 번씩은 신보를 발표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 ‘5년’은 난생 처음 겪은 긴 쉼표다.

“과거엔 아무리 쉬어도 1년6개월 이상인 적은 없었어요. 이번에 5년 쉬면서 내 삶이 리셋된 느낌이에요. 기억상실증을 의심할 정도로 그 전의 고민이 생각나질 않고 과도한 책임감에서도 가벼워졌어요. 부모님이 계시는 충남 공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엄마를 도와 요리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렸어요. 여유가 생기면 다큐를 찍거나 여행하거나 가끔씩 공연하며 한가롭게 지냈죠. 사람이 지루함을 느낄 때 가장 창의적인 된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했어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만 했구나, 안식년이 이토록 중요한 거구나 새록새록 깨달았죠.”

데뷔 30주년이었던 지난해,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태국의 한 섬에 가서 재미나게 놀고 8월에는 제주에서 팬클럽이 꾸며준 기념행사에 참여해 소소한 기쁨을 만끽했다. 그의 팬들은 “우리도 팬질이 30년이다. 스스로를 기념하게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해 이상은은 ‘객’으로 한발을 걸쳤다.

신보에는 영화 ‘벌새’에 삽입된 ‘넌 아름다워’를 비롯해 ‘릴렉스’ ‘일상 노마드’ ‘우리동네 여행기’ ‘가을수채화’ ‘FLOW’가 흐른다.

“뭔가가 막힘없이 흐르는(FLOW) 건 좋은 거잖아요. 신앙과 자연의 혜택, 부모님의 사랑, 선배의 이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어요. 받는다는 의미에서 봤을 때 그 모든 것들이 흘러들어온다는 느낌이었고요. 이제는 주려고요. 이 세상은 내 노력만으로 살아가기엔 힘들잖아요. 모두가 연결돼 있는 거고. 내가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면서 순환하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사회에서 고립되고 차단되면 흐름이 막혀버리겠죠. 막히고 굳어져가는 걸 막을 수 있는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공들인 만큼 반응이 좋다. 1980~90년대 감성, 한 편의 서정시 혹은 한 권의 수필집 향이 나는 음반에 리스너들이 관심의 촉수를 뻗치는 중이다.

“지치고 힘들 때, 정신 없는 하루를 마치고 퇴근한 뒤 들으면 기운이 나고 행복해진다는 평을 접하면서 뿌듯해져요.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임을 곱씹게 되고요. 결국 내 음악을 통해 치유받고 행복하단 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세월 눈물 흘려가며 좌절하고 공부했구나 싶어요.”

지금의 이상은을 만든 8할은 호기심이다. 혼자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내성적인 성향이었다. 데뷔 이후 가요계 생리와 ‘빡센’ 일정에 적응하지 못해 건강마저 나빠져 ‘가수 포기’를 만지작거렸으나 궁금함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를 헤집었다. 일본으로 훌쩍 떠나 현지 프로듀서들에게서 작사·작곡을 배웠으며 뉴욕에서는 그림 공부를 했다. 2010년 14집을 준비할 때 편곡과 미디(컴퓨터 음악) 공부를 시작해 음악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일구기도 했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무조건 뛰어드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나이와 무관하게 아직도 모험심이 있는가, 새로운 거에 대한 열망이 있는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아갈 것인가가 제게는 중요해요. 팬들도 ‘언니가 겁 없이 사는 모습이 좋다’는 얘기를 해주고요. 지금도 여행이라든가 새로운 것에 대한 생각은 여전해요. 싸돌아다니면 건강해져요. 많이 걷고 그러니까(웃음)”

'아이돌로 출발했으나 자신의 작품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로 봐주는 세상이 시선이 고맙다. 오랜 시간을 자양분 삼아 자신을 찾은 것이다. 음악 만들 때의 쾌감은 여전히 크고도 깊다.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치유받고 기운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장르, 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좋은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지 않을까요? 맞는 사람, 안맞는 사람이 있는 듯해요. 전 고양이들과 자유롭게 살고, 부모님과 유대관계가 끈끈한 채 지내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걸 방해받지 않은 채 올곧게 지키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제겐 맞아요.”

사진= 아름다운 상상스튜디오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