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성악과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밟은 엘리트 뮤지컬 배우 카이. 때론 섬세하고 때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그는 올해만 뮤지컬 ‘벤허’ ‘엑스칼리버’ ‘팬텀’에 연이어 출연했고 오는 11월부턴 ’레베카‘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올해만 4개 뮤지컬 주인공으로 분했고 MBC '복면가왕’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동시에 지난 24일 열린 단독 콘서트, 곧 발매될 새 앨범, 관광공사 홍보대사로서 갖는 해외 순회공연까지. 본진인 공연뿐 아니라 방송, 음악을 종횡무진하며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지금의 행보는 경이롭다.
재능과 외모, 배경, 현 위치 무엇 하나 빠지는 거 없어 보이는 '엄친아' 캐릭터 카이는 데뷔 이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산을 오르는 여정”이라고 돌아봤다. 지금이야 정해진 성공을 향해 오르막길을 타온 것처럼 보이지만 카이에겐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차근차근 과정들을 밟고 제가 간절히 원하고 하고 싶었던 바들이 이뤄지는 시기가 오니까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이 노력을 끊을 수 없어요. 저는 노력 중독이에요.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성악계에는 선천적으로 소리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든지 대본을 잘 외우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해서 남들보다 열 배로 더 해야 했어요. 꾸역꾸역 올라왔어요.”
고비도 있었다. 카이는 작년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친구들에게 의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손길이 아니었다면 내리막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엎치락뒤치락 마음고생을 버텼고 실력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기에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진 지금이 소중하다.
취미가 ‘공상’이라고 밝힌 카이는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많은 일들을 하나씩 현실로 옮기고 있다. 지난 24일 성료한 단독 콘서트에서 펼친 테너 박인수와의 합동 무대도 공상 중 하나였다. 박인수는 가수 이동원과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로 잘 알려진 음악가다.
“제가 서울대 음대에서 박인수 교수님께 배우면서 물적,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아버지 같은 존재셨죠. IMF 때 경제적 어려움이 커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학교에 다녔어요. 그때 본인이 노래할 자리에 저를 대신 소개해주셔서 개런티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또 주점 웨이터로 일한 적도 있는데 새벽 늦게 찾아오셔서 ‘노래할 사람이니까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신 일도 있어요.”
카이는 늘 공상 속에서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부천에 정지용 시인 동상이 있어요. 기념식마다 노래를 부르는 자리가 있는데 쟁쟁한 선배들이 가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1학년 때 선배들이 다 외국 콩쿨에 나가서 늦은 밤에 저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밤 10시에 노래방에 뛰어가서 연습하고 잠도 설쳤어요. ‘박인수 선생님과 향수를 부르다니’ 싶었죠. 다음날 행사에 갔는데 리허설 시간에 박 선생님이 ‘이동원이 왔네’ 하는 거예요. 결국 전 ‘향수’를 못 불렀어요. 언젠가 좋은 가수가 되면 같이 부르고 싶었어요.”
콘서트를 마치고 카이는 오는 11월부턴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뮤지컬 ‘레베카’의 주인공 막심 드 윈터의 새 캐스트로 합류한다. 막심 드 윈터는 영국의 최상류층 귀족이자 전 부인 레베카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에겐 이 역할을 맡는다는 사실이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관계자 분한테 ‘레베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너무 멋지다고 말했는데 ‘나이가 더 들어야 (연기하기)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송창의, 엄기준 선배님이 막심 드 윈터를 시작한 나이가 지금의 저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연배였어요. 저를 동안으로 생각해준 걸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긴 하지만(웃음) 제 무대 위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으로 연상치 못하셨을 거 같더라고요.
지금은 계속 연습하고 대본을 분석하면서 이해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막심을 하면서 역할들끼리 경쟁적 구도가 생겨요. 역할 ‘나‘ ’댄버스 부인‘과 경쟁이 생겨나는데, 저는 이 사람들한테 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극을 더 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서 작품을 폭발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 멋진 모습으로 만들어줬던 선배들과는 다른 막심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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