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튀는 매력으로 음악방송 무대를 휘젓던 예원(28)이 뮤지컬 '넌센스2'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개성 강한 다섯 수녀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예원은 큰 십자가에 머리를 맞아 기억을 잃은 엠네지아 수녀로 열연했다. 성황리에 서울 공연을 마무리하고 다음달부터 시작될 지방 공연을 앞두고 있는 예원을 마주했다. 16일 오전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은은한 배우 분위기를 자아냈다.

 

 

1994년 미국 뉴욕 초연, 95년 국내 초연된 ‘넌센스2’는 호보켄 음악회 무대를 빌려 감사 콘서트를 하게 된 다섯 수녀 이야기를 그린다. 수녀들은 엠네지아를 다른 팀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컨추리음악 콘테스트에서 받은 상금을 대신 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절반도 남지 않은 상금을 다시 채워놓기 위한 수녀들의 유쾌한 소동극이 예원의 마음을 이끌었다.

"다른 뮤지컬에 비해 사람들에게 웃음 위주의 뮤지컬이기도 했고, 박해미 선배님께서 연출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서 참여하게 됐어요. 서울 공연에서 못 보신 관객분들은 정말 아쉽지만, 남아있는 지방 공연은 힘든 일이 있거나 딱히 웃을 일이 없으신 분들께서 꼭 다녀가셨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공연만 보는 게 아니라 같이 소통하면서 웃을 수 있는 무대거든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넌센스'는  미국 미시건주 알라 출신 가수 단 고긴의 작품으로 1986년 비평가 협회로부터 뮤지컬대상 각본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넌센스' 열풍을 일으켰다. 뮤지컬을 앞두고 배우들끼리 원작을 보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차별화를 꾀하려 노력했다.

"박해미 연출님께서 '넌센스2'를 재구성할 때 많이 바꾸셨다고 들었어요. 영상을 보면서도 '이건 참고만 하고 아예 우리 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원작은 굉장히 노련했고, 그들만의 일체성이 느껴졌다면 우리 공연은 개개인의 개성이 좀 더 통통 튀지 않았나 싶어요. 원작의 엠네지아 수녀는 나이가 많은 캐릭터인데, 저는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어필하려 했고요. 그래도 원작을 보면서 배우들 간의 호흡과 복화술 연기는 많이 참고했어요."

 

 

첫 뮤지컬, 연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너는 있는 그대로의 엠네지아 같다'는 말로 격려했다. 어리숙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엠네지아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앞서 고민과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 엠네지아의 트레이드마크인 복화술 연기를 위해 공연예술극단 안재우 소장을 찾아가 팁을 얻기도 했다.

"이상하지만 웃으면서 보게 되는 그런 캐릭터예요. 질문을 하면 엉뚱한 대답을 하고,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튀어나오는 말을 하는 모습이 그동안 보여드린 제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복화술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나중엔 그냥 술술 나오더라고요. 저도 욕심이 생겨서 나중엔 안재우 소장님을 찾아갔는데 소장님도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으시다며 팁을 많이 주셨어요. 이미 연습한 게 몸에 베어 있어서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난 5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서울 공연 일정을 모두 완수했다. 단 16일, 총 24회의 짧은 공연 기간이었지만 단기간 약 1만5000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관객들의 호응에 작품의 힘을 느끼는 동시에 아쉬움도 한가득이었다.

"매번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높질 않았어요. 더 욕심이 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잘 안됐던 것 같아요. 항상 이걸 더했어야 했는데, 저걸 더했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후회를 했거든요. 연습 기간이 다른 뮤지컬들에 비해 짧다 보니까 더 맞춰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죠. 사실 항상 전 스스로의 일들에 만족스럽지 않은 편이에요. 뮤지컬은 첫 도전이다 보니 더더욱 잘하고 싶었던 지라 아쉬움이 크네요."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아이돌 가수들이 으레 그렇듯 예원의 첫 공연 역시 정신없이 지나갔다. 대신 마지막 공연이 좀처럼 기억에서 떠나질 않는다. 서울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날,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해 곤욕을 치렀다. 

"마지막 공연 때 긴장도 많이 되고 잔뜩 굳어있었어요. 그때 사실 라미네이트가 갑자기 빠져 버렸거든요. 라미네이트가 공연 중에 튀어나올까 봐 그거 신경 쓰랴 대사 신경 쓰랴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라미네이트를 입안에 그냥 걸쳐놓은 상태에서 공연을 했거든요. 다행히 엠네지아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캐릭터라 '어버버' 해도 티가 날 것 같진 않았어요. 빠지면 빠진 대로 해버리자 싶었죠."

 

 

공연이 끝난 후 친구와 일본으로 훌쩍 여행을 다녀왔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도 올려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전부터 여행을 굉장히 가고는 싶었지만 심적으로 여유가 나지 않은 탓에 도통 기회를 갖질 못했다. 다행히 뮤지컬도 성황리에 끝나고, 드라마 촬영도 앞두게 되며 마음이 풍족해져 다녀올 수 있었다.

"그동안은 저를 채찍질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꼭 뭔가 하나라도 해놓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랑 다녀왔는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이제 좀 한 단계 올라왔으려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행을 간 것도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좀 들으려고 하는 편이라. 그동안은 이야기할 시간이 좀처럼 안 났는데, 지방 공연도 남아 있으니 뮤지컬에 대한 친구의 조언을 듣고 싶었어요."

친구는 물론 부모님도 공연에 초대하고 나니 보여드리기 부끄러운 한편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눈물이 날 만큼 재밌게 봤다며 좋아하셨다. 놀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했다.

지난 11월 서인국, 빅스, 구구단 등 화려한 소속 아티스트 라인업을 자랑하는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보도를 통해 소식이 전해지고난 후 쑥스럽지만 가장 먼저 인스타그램 소개 문구에 젤리피쉬 소속임을 적었다. 비로소 어딘가에 제대로 소속돼 있다는 그 뿌듯함이 곧 행복으로 번져 나갔다. 출발점을 바꿨으니 다시 새 출발이었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저한테 젤리피쉬는 너무 좋은 출발점이었어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내가 나중에 젤리피쉬 건물 하나 올렸으면 좋겠다…(웃음)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젤리피쉬 캐럴에 참여했거든요. 그 노래를 들을 때 다른 분들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도 제 목소리가 나오면 너무 행복했어요. 단체샷 찍을 때 분위기도 굉장히 따뜻했고, 아는 얼굴들도 있어서 편했던 것 같아요."

 

 

눈 감아도 넘버가 귓가를 맴돌고,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뮤지컬에 전념하며 더욱 단단해진 스스로를 느낀다. 새 발걸음과 함께 쓰린 과거를 딛고 보다 성장해나갈 참이다.  

"뭘 하게 되더라도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런 능력을 갖출 때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제 몫인 것 같고요. 제가 어떤 분야에서 도전을 하든 늘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지만, 제가 열심히 하는게 가장 먼저인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게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고 진실되게 가닿을 수 있을 그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사진 지선미 (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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