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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김나정, 유난스러운 일반화가 불편한 이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기형적인 사회 구조 속에 억압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첫 문학작품은 아니다. 한국문학은 한 개인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물결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꾸준히 이야기해왔고, 때문에 사회의 약자로 꼽히던 여성이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이 유독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정치권에 언급되면서부터였다.

사진=민음사

2016년 초판이 나온 당시만 하더라도 ‘82년생 김지영’은 월별 판매부수가 2000부 안팎에 그쳤다. 물론 이 판매부수도 ‘책 안 읽는’ 우리 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판매량이었다. 이후 2017년 3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결정적으로 그해 5월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월 판매부수가 3만부로 껑충 뛰어올랐다. 같은해 8월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 방영과 '오늘의 작가상' 수상으로 유명세가 더해지며 월 8만부까지 판매고를 올렸다.

문제는 당초 ‘82년생 김지영’을 해석하는 포커스가 성평등에서 페미니즘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했다. 젠더 이슈로 예민하던 시기와 맞물려 마치 여성의 피해온상을 고발하는 책으로 일부에서 편견을 덧씌웠고,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성 연예인들은 반(反)사회적인 사람 취급을 받았다. 뜨거운 논란 속에 영화화가 결정되고 정유미가 주연을 결정한 뒤에도 ‘한번 두고보자’ 식의 불편한 시선이 이어졌다. 마침내 개봉한 영화는 기대와 부정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사진=싱글리스트DB

이날은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올린 ‘82년생 김지영’ 개인 감상평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기다렸다는 듯 ‘82년생 김지영’을 힐난하는 진영에서는 김나정 아나운서를 ‘쉴드’치기 바빴고, 그녀의 글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개인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 김나정 아나운서의 글에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관심이 모아진 걸까. 영화를 본 개인의 감상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제는 김 아나운서가 장문의 글을 통해 기울어진 사회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다. 김 아나운서가 “페미니즘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감히 적는” 글처럼 영화는 그저 82년생에, 한국사회에서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서사적 인물’의 개인사를 따라간다. 그리고 화자인 김지영은 “이왕 여자로 태어나 살면서” “남자, 여자가 불평등하고 매사에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나정 아나운서는 글을 통해 “학교 다닐 때도 왜 예쁜 치마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라는 일반화, “직장생활 할 때도 남자직원들이 잘 대해주고, 해외 여행가서도 짐도 다 들어주고 문도 열어주고 맛있는 밥도 많이 사주고 선물도 많이 사주고 예쁜 데도 데려가 주고 예쁜 옷도 더 많이 입을 수 있고.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대접받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많은데”라는 개인의 로망을 마치 한국사회 여성의 전반적인 행복처럼 치환했다.

사진=민음사

“이화여대를 나온” 김나정 아나운서는 자신이 겪지 않아본, 혹은 체감하지 않은 “부정적인 것들에만 주목해 그려놓은 영화”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이상한 평등’을 외치며 유난스럽게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그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해석이지만 동시대를 사는 여성이 맞는지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건 그 다음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바로 “남녀관계에서 똑똑한 여자는 남자에게 화를 내거나 바가지를 긁는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걱정해주고 애교있게 안아주면 그게 관계에서 오히려 현명하게 남자를 다스리고 예쁨받고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자의 권력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라며 사회생활을 소꿉놀이 하듯 그리고 여성의 행복을 남성의 ‘예쁨’을 받는데 가둬버린다. 그런 그녀가 왜 아나운서를 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걸까.

물론 우리사회는 최근 몇 년간 성평등이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다퉈왔다. 과도기를 지나 사회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고,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돼야 한다. 여자로 태어나서 좋은 점만 보고 살고픈 김나정 아나운서의 시선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을 안고 있는 아나운서가 이 긴 글의 끝에 “그냥 개인적인 내 생각”이라는 한마디만 달면 그저 감상을 끄적거린 글이 될 수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강보라 기자  mist.diego@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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