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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 아련함에 빠지고 싶다면...'왕가위 필모그래피' 6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로 90년대 전 세계를 ‘왕가위 신드롬’에 빠뜨린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아비정전’이 오는 30일 재개봉 소식을 전했다. 아직도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좋은 봄날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완연한 봄, 극장가에 유다른 감각을 선사할 ‘아비정전’은 물론, 왕가위 감독의 ‘명작’을 찾아보며 특별함에 폭 빠져보는 건 어떨까.

  

‣ 아비정전(1990)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장국영)는 매일 오후 3시에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을 찾아가 사랑을 전한다. 그의 구애에 마음을 연 수리진은 아비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아비는 냉정히 그녀를 떠난다. 이후 다른 여자의 품을 전전하며 정착하지 못하는 아비는 결국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고, 그와의 기억을 가슴에 품은 수리진은 아비를 기다리는데...

1988년 장편데뷔작 ‘열혈남아’에서 피가 낭자한 액션영화를 선보이며 예술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잡았던 왕가위 감독.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 ‘아비정전’을 통해 ‘그리움’ ‘허무’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예술색을 확고히 다졌다. 극 중 아비의 “발 없는 새가 있지”로 시작하는 독백과 흰 속옷만 입고 맘보춤을 추는 명장면은 왕가위 감독은 물론, 배우 장국영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팬들 가슴에 콕 자리잡혀있다. 러닝타임 1시간40분. 15세 관람가. 30일 재개봉.

  

‣ 중경삼림(1994)

‘중경삼림’은 독특한 두 개의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사다 놓은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새 여자친구를 만들기로 결심한 경찰 223(금성무)이 술집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노라 마음을 먹고, 때마침 들어온 마약밀매 중계인(임청하)에게 사랑 감정을 느끼는 첫 번째 스토리. 그리고 음식점 점원 페이(왕페이)가 단골손님 경찰 663(양조위)을 짝사랑하고, 그의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집안을 꾸미는 두 번째 스토리를 축으로 구성된다.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제시하기보단 기묘한 구조로 독특함을 심은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만의 필름이미지 기교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어” “감정이 풍부한 수건” 등 통통 튀는 대사, 마마스 앤 파파스의 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의 활용은 세기말 신세대들의 감정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동사서독(1994)

한때 강호의 고수였던 구양봉(장국영), 사랑하는 여인(장만옥)이 형과 결혼하자 세상과 등지고 지금은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아픈 과거를 가진 이들이 찾아온다. 사랑에 대한 슬픈 상처를 지닌 황약사(양가휘),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 약속을 어긴 황약사를 죽여달라는 모룡언(임청하), 돈 한 푼 없이 살인청부를 부탁하는 완사녀(양채니), 시력을 잃어가는 검객(양조위)까지. 이들은 모두 아픔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동사서독’은 왕가위가 택동영화사를 설립하고 만든 첫 작품이다. 그만큼 그의 난해한 예술색이 많이 묻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행복과 사랑을 잃고, 흔들리거나 좌절을 경험하지만 사건과 관계 자체가 모호해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그의 필모를 관통하는 ‘고독감’을 더더욱 심화시키고, 여기에 왕가위 특유의 흐르는 듯한 색채와 소외되는 인물, 기묘한 카메라 각도 등의 시각적 스타일이 감정의 결을 적확히 표현한다.

  

‣ 해피 투게더(1997)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에서 살아가는 연인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 너무 다른 성격 탓에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어느 날 늘 먼저 “다시 시작하자”는 보영을 더는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아휘. 하지만 그가 일하는 클럽에서 보영이 다른 남자의 애인으로 나타나더니, 곧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아휘를 찾아온다. 또 한 번 그를 안아주는 아휘. 과연 이 둘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해피 투게더’엔 양조위와 장국영, 홍콩영화의 아이콘이 모두 출연하며 명품연기를 선보였다. 그들의 동성연애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서로 달랐기에 사랑했고 다름을 견딜 수 없어서 헤어지는 여느 연애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밝혔다. 이는 사랑의 속성인 그리움과 의지를 더욱 강조, 왕가위만의 독보적인 작가의식을 반짝반짝 빛낸다. 그 덕에 왕가위는 1997년 칸영화제 감독상의 영예를 얻었다.

  

‣ 화양연화(2000)

1962년 홍콩. 한 아파트에 두 가구가 새로 이사 온다. 신문사 기자 차우(양조위) 부부와 무역회사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장만옥) 부부다. 좁은 아파트에서 자주 부딪히며 얼굴을 익힌 차우와 수리첸. 하지만 곧 서로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차우와 수리첸은 외로움 때문인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윤리와 감정 사이에 혼란스러운 두 사람. 과연 이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될까.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뜻하는 말이다.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강렬한 사랑을 경험하는 남녀가 아이러니하게도 함께하지 못하며 절절함을 더한다. 또한 슬픔이 묻어있는 스토리와 다르게 영화의 비주얼은 스타일리시한 색감과 이미지, 사운드의 집합에 가깝다. 몽환적 분위기가 펼쳐지며 ‘아름다운 시절’에 겹친 ‘불행’의 역설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양조위는 이 작품으로 2000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일대종사(2013)

전설로 기억되는 영춘권 그랜드마스터 엽문(양조위), 어떤 고난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그의 아내 장영성(송혜교), 궁기 64수의 후계자로서 엽문과 무술로 교감했던 궁이(장쯔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이 몰락하고 제국열강이 중국을 노리고, 중국 내부에선 국공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혼란의 시기. 이를 살아가는 이들은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싸움을 시작하고, 방해하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몰아치는데...

‘일대종사’는 왕가위 감독이 6년간 기획하고 3년간 촬영한 대작이다. 단순히 시각적 자극을 건네던 기존 무협영화와 달리 철학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이치가 있는 무림을 섬세히 묘사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비주얼리스트’라는 칭호에 걸맞게 눈을 즐겁게 만드는 연출, 인생 성찰이 드러나는 드라마적 깊이, 더욱 넓어진 멜로 감성을 더해 왕가위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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