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만 타이페이에 살던 청춘들이 느끼던 불안은 2019년 대한민국 현재를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청춘의 불안과 혼란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 맞겠다.

1985년 작으로 34년 만에 국내서 첫 개봉하는 대만 뉴웨이브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스토리‘는 낯선 타이페이의 풍경 안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연인의 보편적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연인 아룽(허우 샤오시엔)과 수첸(채금)은 반대편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아룽은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방직 공장를 운영하며 머무르고자 하고 수첸은 다가오는 새 시대의 흐름을 타며 또다른 삶을 꿈꾼다.

영화는 아룽과 수첸이 집을 살펴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들겠다는 아룽의 말에 수첸은 곧 승진하며 오를 봉급을 기대하며 걱정을 던다. 그러나 수첸의 승진은 좌절되고 회사마저 떠나야 하는 위기가 닥친다. 수첸은 미국이라는 새 세상을 꿈꾼다. 수첸은 아룽에게 미국 이민을 제안하고 나서지만 아룽은 대만에 남고 싶어하며 고민에 빠진다.

현실안주파와 미래지향파, 보수와 진보적 사고의 차이지만 영화는 대립을 강조하기보다 두 사람이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아룽과 수첸은 뭐가 낫다고 말할 수 없는 80년대 대만의 2가지 청춘 군상이다.

사진='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아룽은 현실주의자면서 과거지향적이기도 하다. 아룽은 어릴 때 야구를 하다 그만뒀던 전사가 있다. 영화는 아룽이 초등학생들의 야구 경기를 지켜보는 장면과 텔레비전으로 야구 중계를 시청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아룽은 야구를 하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영화는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 지나간 시간은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을 짚는다.

술자리에서 방직을 하냐는 질문에 직물 일을 한다고 굳이 고쳐 말하고 다트게임을 하던 중 "야구를 했었지 않냐"는 말에 야구를 들먹이지 말라고 몸싸움을 벌이는 그의 내면엔 현재에 대한 불만, 과거를 향한 향수가 숨겨져 있다.

반면, 야망 있는 커리어우먼 수첸은 아룽에게 손을 벌리는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집안사정과 미국행을 주저하는 아룽 사이에서 현실을 감내하고 살게 된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정반대로 달랐지만 결국 타이페이 한 자리에 수렴하고 마는 청춘의 현실을 펼쳐 보이며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진='타이페이 스토리' 스틸컷

영화 속 타이페이는 흔히 요즘 봐왔던 대만 청춘영화에서 그리는 찬란한 젊음과 서정적 분위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주인공들이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잿빛 하늘, 비슷하게 생긴 건물 숲으로 상징되는 무미건조한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실은 그것이 청춘의 진짜 시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말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제작년 26년 만에 국내 개봉하며 호평을 받았다. 감독의 ‘타이베이 3부작’이라고 불리는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공포분자’(198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중 초기작인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알던 대만 청춘영화와는 다른 묵직한 울림과 공감을 선사한다.

아룽 역을 연기한 허우 샤오시엔도 눈길을 끈다. 허우 샤오시엔은 ‘자객 섭은낭’으로 2015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이지만 이 옛 영화에선 배우로서 호연을 펼치며 감독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러닝타임 119분. 15세 관람가. 11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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