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런 저런 막연한 불안감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안에 온전히 지쳐야만 잠에 들곤 했다. 강박적으로 내 이름을 검색했다. 수번을 클리어한 게임을 플레이했다. 봤던 만화를 다시 보았다.

 

또 밤이 되면 트위터에 글이 뜸해진다. 엄마가 잠에 든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도 하트를 눌러주는 사람이 적다. 고양이들도 잠에 든다. 페이스북은 원채 좋아하지 않는다. 티스도 잠에 든다. 밤이 되면 쓸쓸해지고, 창밖이 까매진다. 늦은 시간인 탓에 다른 누구에게 ‘쓸쓸하다 창밖이 까맣다’고 연락할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

밤마다 술에 취해서는 헤어진 애인의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사람 같은 그런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보내다가, 지치고 지쳐서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지난밤의 긴긴 무의미한 시간들을 후회하는 식이다.

그런, 많은 이들이 겪는 보편적인 우울장애 혹은 불안장애에서 비롯된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날의 나는 아마... 맥주를 마시고 만화를 밤새 보고서... 아니면 맥주를 안마시고 게임을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핸드폰을 만지며 한참을 수면을 유보하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떤 결단을 내렸다.

 

‘오늘의 생각을 내일로 미루자’

단순한 결단이었다. 어차피 밤중에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들과 했어야 하는 일들만이 떠오른다. 어두운 생각들이 계속계속 쌓였고, 그런 생각들에 잠몰되느니 차라리 잠들어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이었다. 아무것도 해낸 일이 없는 날에도 일단은 잠들고 다음날에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가끔 술의 힘을 빌어야 했고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내게서 잠들 수 없는 밤들을 내쫒았다.

 

 

잠들 수 없는 밤들을 쫒아낸 이후에도 늘 밤에 자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늦은 새벽이다. 어떤 밤에는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본다. 하지만 잠들 수 없는 밤은 아니다. 잠들 수 없는 그 강박의 끝에서 여러 밤들을 긍정할 수 있게 됐다.

여러 좋은 밤을 보내거나 편히 잠들 수 있다고 그다지 생산적인 일들이 늘지는 않는다. 사실은 오히려 약간 줄었는지도 모른다. 집안일을 미루고, 빌려온 책들을 읽지 않고, 에세이도 겨우겨우 써나가고 있다. 이래서야 제대로 사람 구실은 하고 살지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은 조금 편해졌으니 괜찮지 않으려나?

 

글, 그림 권기하= kiha_k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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