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캡처링 대디’로 영화 팬들의 가슴에 훈훈함을 콕 심었던 나카노 료타 감독이 신작 ‘행복 목욕탕’을 들고 또 한 번 극장을 찾았다. 미야자와 리에, 오다기리 죠, 스기사키 하나 등 일본 대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은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한국 관객들의 가슴에 자그마한 감동 씨앗을 폭 심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행복 목욕탕’ 안주인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는 1년 전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가 집을 나가자 목욕탕을 휴업하고서 홀로 사춘기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를 키우며 살아간다.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던 그녀는 어느 날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아즈미 곁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따스한 계획을 실행에 옮겨간다.

 

공허한 가슴을 가득 채우는 온기

‘행복 목욕탕’은 허름한 목욕탕의 풍경을 담담히 조명하며 오프닝을 연다. 입구에 걸려있는 “사장이 수증기처럼 사라졌습니다”란 문구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온기를 잃은 건물의 쓸쓸함을 정확히 대변한다. 바로 이어서 딸에게 잔소리하는 후타바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이 일상적 모습은 앞선 쓸쓸한 풍경 탓인지 괜스레 마이너한 감상을 남긴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힘겨운 모녀의 삶을 명확히 밝히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집-일터를 오가는 싱글맘의 고충,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춘기 소녀의 설움은 스크린 가득 연민을 흩뿌린다. 남편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 삶에서 모녀는 오직 서로에게 밖에 기댈 곳이 없다. 그래도 ‘웃자’며 의지를 다지지만, 아즈미를 향한 괴롭힘은 심해지고 엄마 후타바는 말기암 판정까지 받고 만다. 그래서 ‘웃자’는 의지 또한 연민으로 다가온다.

사실 ‘행복 목욕탕’의 이런 전개는 극단적이고 꽤나 억지스럽다. 하지만 이 가운데 홀로 남겨질 딸을 위해 무언가를 결심하는 엄마의 모습은 더더욱 짙은 응원을 이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극한의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미소 짓는 엄마의 ‘멋’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 후타바는 자신이 떠나도 딸 아즈미 곁에 온기를 남겨 주기 위한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 떠나간 남편을 되돌아오게 하고, 휴업 중인 목욕탕을 다시 개장한다. 비록 이 과정이 어떤 갈등도 없이 다소 쉽게 진행되는 건 아쉽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며 더욱 강렬해진 삶에의 의지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내어주는 엄마의 결심만큼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책임감 없는 철부지 남편, 아직 홀로서기엔 용기가 부족한 딸, 집나간 남편이 불쑥 데리고 들어온 의문의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까지 가족들은 모두 하나씩은 부족함을 안고서 엄마에게 잔뜩 의지하곤 한다. 하지만 남겨질 이들에게 따스한 ‘가족애’를 전하는 후타바의 행보는 “엄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아즈미), “내가 모두 다 받쳐줄테니 안심해”(가즈히로)라는 식의 성숙을 이끌어낸다. 의지하기만 했던 가족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모습은 시들어가는 후타바의 얼굴에도 미소를 피워낸다. 더불어 관객들의 마음에도 훈훈한 온기가 퍼진다.

  

‘행복 목욕탕’은 오프닝의 쓸쓸한 연민에서 출발, 목욕탕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희망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영화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차근히 이어지지만 그 가운데 논리적 접합성은 부족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의문을 환기한다. 하지만 감정적 흐름은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숭고함과 ‘엄마’라는 단어에 대한 애틋함을 영리하게 활용해 눈물을 쏙 빼놓는다.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샤브샤브 먹고 싶어"라며 괜한 떼를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러닝타임 2시간5분. 12세 관람가.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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