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상 서거 80주년, 시대를 앞서간 시인의 작품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스모크'가 더욱 강력해진 출연진과 업그레이드된 작품성으로 정식 공연된다. 23일 오후 대학로 유니플렉스관에서 뮤지컬 '스모크' 프레스콜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연출가 김수로를 대신해 참석한 김민종을 비롯해 연출가와 주연 배우들은 하나 같이 들뜬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작품은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와 순수하고 바다를 꿈 꾸는 '해', 그리고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의 이야기를 다룬다. 천재 시인 이상의 위대하고 불가해한 시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감각적인 음악과 결부시킨 '스모크'는 핵심 소재인 '오감도' 외에도 '건축무한유면각체' '회한의 장', 소설 '날개' '중갱기' 등 이상의 대표작을 대사와 노래 가사에 녹여냈다. 

한 예술가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과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겪어야 했던 불안, 고독,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고 싶었던 열망까지 두루 다뤘다. 추정아 연출가는 '스모크' 제작 의도에 대해 "'날개'라는 소설에서 '날자 날자 딱 한번만 날아보자'라는 구절이 너무 좋았다. 하고 싶은게 많아서 좌절도 많았던 나는 이 날개를 부여잡고 한번만 더 도전해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여기까 지왔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이상의 작품을 붙들고 꼭 한번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왜 이시점에, 이상의 작품인 걸까. 추정아 연출가는 이에 대해 "사람이 살다보면 행복에 겨운 순간만 살 순 없다. 사실 고통과 절망이라는 게 행복만큼이나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지 않나"라고 되묻고는 "이상은 미친놈의 헛소리라는 소리를 듣고난 뒤에도 타협할 수 없는 자신의 시를 전혀 바꿔쓰지 않았다. 이상의 글에서 모더니스트적인 면모와 위트를 즐겼고, 시대와 발이 맞지 않아 절름발이 같은 인생을 사는 고통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통과 절망은 시점을 떠나 언제나 존재한다. 벼랑 끝에 서계신 분들이 우리 뮤지컬 속 고통과 절망 속에도 포기않던 시인을 보며 약이 됐음 좋겠다. 마지막곡을 통해 가슴 속 고통의 한자락이 치유되길 바란다"라며 소망했다.

 

오랜 기획 과정과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치며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지난해 12월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작품 속 대사와 가사를 간결하게 압축하고 속도감을 더했다. 이에 대해 추정아 연출가는 "트라이아웃은 굉장한 비난 속에서 막을 내렸다. 난해하다, 어둡다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맞는 말이더라. 나 혼자만의 세상 속에 갇혀 이상의 시에 젖어있던 건 아닌가. 종이가 물에 흠뻑 젖어서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이어 "트라이아웃에서의 결은 살리되, 어떻게 하면 극으로서 좀 완성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번에 만난 배우님들이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이 배우들 덕에 굉장히 괴로웠고, 설득하기 힘들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극은 만들 수 없었을 거다. 특히 김재범 배우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 무대에서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배우와 새로운 배우의 합류도 큰 기대를 모은다. 시를 쓰는 남자 '초' 역에는 김재범, 김경수, 박은석이,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역은 정원영, 고은성, 윤소호가 함께 한다. 부서질 듯 아픈 고통을 가진 여인 '홍' 역은 정연, 김여진, 유주혜가 연기하며 완벽한 삼합을 이뤘다.

 

초 역으로 열연하는 배우 박은석은 트라이아웃과 본공연을 비교하며 "이번 뮤지컬은 참 다르다. 네러티브가 부족해서 많이 보완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부분들을 같이 공부하고, 이상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연출님에게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냈지만 또 그걸 굉장히 많이 거절당하면서 '이상이 이랬겠구나'를 간접적으로 느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해 역의 윤소호는 "세 명의 해 중에 유일하게 트라이아웃에 참여했었다. 이상은 굉장히 천재적이지만 그 시절 인정받지 못했던 시인으로 유명한데, 더 깊게 들어가면 어릴때 고아처럼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며 시인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 모든 얘기를 담기는 힘든데, 트라이아웃때는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 이번 본공연은 관객분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진 버전이 아닐까 싶다"며 관람을 권유했다. 

'팬텀싱어' 이후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방송 전후로 무대 서는 배우로서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단지 기존에 찾아주시던 관객분들에게 기존처럼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고, 방송을 보신 후 우리를 알게 돼서 '스모크'를 보러 오시는 관객분들에게는 또 다른 감동을 드리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 역을 맡은 고은성은 '팬텀싱어'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다시 한번 '스모크'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고은성은 "잘 해야하는데, 연습을 못해서 공연을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생겨났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더 많아졌다. 잘해야겠다는 욕심을 최대한 버리고 최대한 주어진 것 안에서, 당장 내일 있을 공연만큼은 잘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홍 역의 유주혜는 "홍이라는 역할은 이상 시인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담아낸다. 사실 그 인생을 우리가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을 많이 읽었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많이 보면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과 왜 그런 표현을 해야했는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고, 이어 "31년 살면서 있었던 힘들었던 상황을 대입하기도 했다"며 이상과의 공감을 위한 노력을 밝히기도 했다.

'스모크'는 5월 28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정식 공연 중이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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