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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에스트라 장한나 “한국음악계에 베를린필로 클 씨앗 뿌리고파”

장한나가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가 상임지휘자로 있는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오케스트라에겐 내한, 장한나에게 귀환 공연이다. 한국-노르웨이 수교 6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에 이뤄지는 문화교류인 동시에 장한나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주자 겸 지휘자의 귀환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 메이플홀에서 장한나의 노르웨이 트론헤임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엔 트론헤임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장한나와 오케스트라의 로아르 라이난 대표가 참석했다. 장한나 그리고 라이난 대표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먼저, 한국에 돌아오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고국에 계신 팬들과 음악을 나누게 돼 설렌다. 올해는 한국과 노르웨이가 수교 60주년인 동시에 제가 데뷔한 지 25년이 된 해다. 좋은 가을날에 한국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뜻 깊다. 생각도 못했는데 주최 측인 크레디아에서 초청해주셔서 고국 땅을 밟게 돼 기쁘다. 오래 준비하고 기대해왔다.

 

Q.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쿨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데뷔해 톱 첼리스트로 활동하다 지난 2007년부터 지휘자로 전향했다. 지휘자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동기는 무엇인가.

지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뚜렷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첼로를 연주했는데 첼로는 독주 레퍼토리가 적다. 같은 곡을 반복해 연주하다 보니 시야가 작아지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나는 망원경으로 보고 싶은데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래서 큰 음악세계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위대한 교향곡들의 악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가 사랑하는 말러, 부르크너, 베토벤 등 작곡가들의 교향곡 악보를 봤다.

작곡가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며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한다. 악보로 무한한 소리의 세계를 공부하다 보니 눈과 귀가 열리는 듯했다. 이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졌고 지휘 공부를 해야겠단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첼로도 세계 정상급 연주를 하려면 매일 6~7시간은 기본으로 연습해야 한다. 지금은 10시간씩 악보를 보고 공부한다. 첼로와 지휘,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올인을 해도 부족하다. 지금은 지휘에 몰두하고 있지만 첼로는 음악적 첫사랑이고 지휘자의 삶을 가능하게 해줬으니 또 언젠간 다시 연주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지 않나(웃음).

사진=장한나와 로아르 라이난

Q. 현재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인 트론헤임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트론헤임과는 2013년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연주했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오케스트라측에서 정기적으로 지휘하는 객원 지휘자가 돼달라고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했고 이후 2017년 9월에 정식 지휘자로 취임했다.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를 너무 사랑한다. 이유는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열정에 불타는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저와 비슷하다. 또, '열정' 하면 한국 아닌가. 이번 기회로 한국 청중과 오케스트라를 서로 소개할 수 있어 기대되고 기쁘다.

 

Q.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어릴 때부터 음악가의 삶을 살아왔다. 첼로 솔리스트로선 나 자신과 싸웠던 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선 우리의 음악, 나를 넘어 다른 100명 가까운 음악가와 비전을 향해 달려가고 에너지를 나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솔리스트로선 한 도시에 도착해 리허설하고 연주하고 떠나는 단기 체류를 해온 반면, 오케스트라는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집이나 마찬가지다. 계속 청중과 관계를 쌓아가며 한 예술단체에 기여하고 전통이 돼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Q. 노르웨이 생활은 어떤가.

집은 뉴욕에 있지만 1년의 일정 시간 트론헤임에 가 있다. 노르웨이는 큰 땅에 비해 인구가 작은 나라다. 아담한 곳인데 있을 건 다 있다. 오케스트라, 연극단 등 문화시설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여유 있는 곳이다. 제2의 집에 온 거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제1의 집은 한국이다. 노르웨이에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Q. 트론헤임에서 계획하는 바는?

장기적으로 기획한 레퍼토리는 말러(구스타프 말러)다. 말러가 남긴 교향곡으로 인해 21세기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론헤임과 말러의 2, 5, 6, 7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1, 3, 9번도 연주를 계획 중이다. 이번 시즌엔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한다. 말러를 정기적으로 연주할 뿐 아니라 청중분들도 말러의 세계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또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3주간 베토벤을 연주하는 마라톤 연주를 기획한다.

Q. 장한나가 지휘자로 취임한 후 오케스트라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로아르 라이난 : 장한나는 훌륭한 음악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노르웨이에도 상당한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특히 오케스트라에 대한 접근이 대단하다. 각각 악기를 어떻게 연주해야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이뤄질 수 있는지 잘 안다. 덧붙여, 장한나의 에너지가 도시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의 에너지, 기획력이 큰 변화와 성과다.

 

Q. 전세계를 통틀어 여성 지휘자는 극소수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활약하며 이목이 쏠린다.

요즘 여성 지휘자에 대한 조명이 많이 등장하는 건 큰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엔 성별, 나이, 인종 등 여러가지 차별이 존재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하려고 하다. (여성이라는 위치가)생소한 입장이지만 크게 고심하진 않는다.

 

Q. 2013년에 맡았던 카타르 필하모닉과 현재 맡은 트론헤임의 차이점은?

중동에 있는 카타르 필하모닉은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카타르 출신 단원이 아니라 유럽, 러시아에서 뽑은 단원들로 구성됐다. 현지인들도 종교적인 이유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즐기기 어렵다. 1년간 최선을 다했다.

트론헤임심포니를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단원들이 제가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두려움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픈 마인드로 도전에 대한 열정이 있어 잘 맞는다. 제가 추구하는 소리는 모든 단원이 하나의 표현을 하는 거다.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라 순간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맥시멈으로 표현하는 거다.

3층 객석의 관객도 소리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게 음악의 철학이라 생각한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고 소리가 무언가를 전달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오케스트라에선 모든 단원이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개개인의 소리와 역량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게 오케스트라의 기적이다.

점점 악보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만큼 악보와 보내는 시간과 시간의 밀도가 중요해진다. 자꾸 악보를 보다 보면 '작곡가의 의도는 이거구나' 확신이 드는 때가 있다. 다른 지휘자는 또 다른 확신을 품고 해석할 거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내 연주를 들었을 때 뽀록이 날 거다.

Q.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며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원동력이 뭔가.

항상 다음 연주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지휘자가 된 후로 개인적인 노력을 배로 한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에게는 더 열심히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예전처럼 막강한 지휘자의 시대는 갔다. 지휘자는 축구팀 코치처럼 오케스트라를 뛰게 만들 수 없다.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위대한 점을 공유하는데, 진심만이 길이다. '다음 연주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한다. 그렇지만 리허설할 때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어도 물 만난 물고기라고 느낄 만큼 행복하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하다.

 

Q. 음악가의 꿈을 품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전공도 음악을 택했는데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후배들이 많다. '용기를 잃지 말고 꾸준한 노력과 꿈을 놓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시작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건 스스로 음악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나만의 음악세계를 찾고 노력한다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가도 다시 문이 열리고 성공하는 분들도 많다. 다 자기만의 어려움이 있다. 그 시간을 견뎠다는 건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는 증거 같다. 큰 파이팅을 외친다. 포기하지 말았으면.

Q. 신동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후배 신동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

후배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자랑스럽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20대만 푸릇푸릇고 너무 좋다(웃음). 연주자의 삶은 고단하다. 시작 지점까지 가기도 힘들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저도 연주자로 시작했고 지금은 지휘를 한다. 음악이 삶에 어떤 의미인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게 큰 힘이 된다. 내가 원하는 걸 뚜렷히 알았기 때문에 첼로에서 지휘로 전향한 데 대해 두려움도 의문도 없었다.

후배 분들도 '콩쿨에서 입상해야 한다'라는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왜 음악을 했지, 연주하고픈 음악이 뭐지, 어떻게 음악을 하고 싶은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음악의 길은 많다. 외부에서 보이는 강요가 아니라 내가 음악을 알아가고 탐험가와 개척가가 되는 꿈을 가지면 너무 좋겠다. 그러면 너무 자랑스러울 거 같다. 인생은 한 번이고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만족하는 인생이 100점짜리 인생이다.

어릴 때 나는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로스트로비치에게 사사받았다. 그때 로스트로비치는 '한 달에 4번 연주하지 말기, 음악 안 하는 친구들이랑 놀기, 초등학교 열심히 다니기' 같은 사항을 쪽지에 적어줬다. 보통 아이의 삶을 최대한 살고 최대한 어린 시절을 즐기라는 메시지였다.

덕분에 다른 신동 친구들이 1년에 연주를 100번씩 할 때 나는 40번을 넘기지 않았다. 스트레스도 덜 받았고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페이스를 유지한다. 무대에 안 선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고 다음을 위해 투자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좋은 무대를 보여주려면 준비하는 데는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 신동 후배들도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첼로를 연주할 때, 훌륭한 첼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지휘자가 되고도 꿈은 같다. 오케스트라가 인정하는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게 꿈이다. 한편, 내 앞에 있는 오케스트라가 필요로 하는 지휘를 하고 싶다. 저는 매번 같은 사람인데 맡는 오케스트라는 달라진다. 지난 주에 했던 지휘를 다른 오케스트라와 또 하면 안 된다. 내 앞에 있는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지휘를 하는 게 중요하다. 매일 최대의 고민이 그거다.

큰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하는 데 충실한 게 오늘의 목표다. 또, 음악가로서 한국 음악계에 욕심이 있다면 베를린필이 될 수 있는 씨앗을 뿌리고 싶다는 거다. 안정적으로 상주하는 홀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오로지 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좋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카라얀이 베를린에서 필하모닉을 꾸렸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Q. 이번 공연에 관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로아르 라이난 : 그리그의 작품을 연주한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이번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노르웨이적인 음악을 한국 연주자가 지휘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버전의 그리그를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노르웨이만이 가진 눈과 얼음, 음악의 에너지를 담은 프로그램을 보러 와서 즐겨주길 바란다.

장한나 : 오랜만에 한국에 계신 청중분들과 음악을 나눌 생각에 그저 기쁘다. 임동혁 씨와의 협연도 기대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프로그램이 밝지만은 않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 '피아노 협주곡',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연주한다. 그리그에도 죽음이 깃들어 있고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작곡하고 2주도 채 안 돼 본인이 죽었다. 열정과 슬픔이 깃들어 있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슬픔, 운명에 대한 반발, 힘과 열정, 나약함이 들어있는 음악을 들고 여러분과 진솔한 음악적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기대된다.

 

한편, 장한나와 트론헤임심포니의 공연은 오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이튿날 부산, 16일 대구, 17일 익산에서 펼쳐진다.

양수복 기자  gravity@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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