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이만큼 빠듯하게 보낸 배우가 있을까. 5월 백상예술대상에서 JTBC ‘눈이 부시게’로 TV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같은 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11월에는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 그리고 하반기 임상춘 작가의 ‘동백꽃 필 무렵’으로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다시 한번 대세 배우임을 입증했다.

“많은 배우들이 다 문광 역을 ‘나도 하고싶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게 수상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들도 워낙 좋았잖아요. 작품 속 배역이 주는 임팩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생각보다 빨리 잘 된 거 같아요. 60대나 되야 잘될 줄 알았거든요. 매체 연기로 넘어오면서 연극배우라는 자긍심을 버려야겠다, 하면서 단역부터 시작했는데 더 빨리 관심을 가져주신 거 아닌가 싶어요. 많은 분의 도움과 격려 그런 영향 덕분 아닐까요? 시대도 한 몫을 한 거 같아요. 이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역할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거죠. 그런 측면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사람운도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작업자가 좋지 않으면 계속 해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도 분명 도움을 계속 받고 있다고 봐요”

이정은은 지난해 tvN ‘아는 와이프’에서도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연기한 적이 있었다. 처음 ‘동백꽃 필 무렵’ 제안을 받았을 때 ‘정숙’이라는 캐릭터의 정보만 전달받아, 자칫 전작과 이미지가 겹칠까 걱정도 있었다고.

“처음에 전체 대본을 받은 게 아니라 정숙의 인물 정보만 받았어요.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해서 ‘아는 와이프’랑 이미지가 반복되는 거 같더라고요. 이른 나이에 치매 엄마 역할을 맡는거 같아서 고사를 했어요. 그런데 차영훈 감독님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 테니까 같이 하자고 말씀해주셨어요. ‘쌈 마이웨이’로 임상춘 작가님 작품을 이미 봤었기 때문에, 믿고 대본을 받았죠. 배우들도 양파 껍질을 까는 것 같은 재미로 대본을 소화하고, 복선을 깔면서 서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추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꼭 본인의 배역이 아니더라도 유독 ‘치매’라는 상황적인 설정이 등장하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아는 와이프’, ‘눈이 부시게’, ‘동백꽃 필 무렵’까지 그 결이 전혀 다르기는 했지만 이정은 스스로도 “작품을 선택할 때 묘한 원 안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했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거기에 꼬리가 물려지는 이야기가 뒤따라오는 거 같아요.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혜자)를 모시고 산 경험이 이 작품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지만 임상춘 작가님이 ‘정은 선배님이 치매를 하면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치매의 패턴대로 안 하실 거 같다’고 하셨다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게 다행스럽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연기를 하면서 그 점에 중점을 뒀어요. 실제 치매 환자들을 만나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정신이 각성되어 있을 때와, 깨어있지 않을때가 다른 겨우가 많아요. 연출팀 하고 어느 시점부터 정숙이 가짜 치매라는 걸 드러낼 것인가 의논하면서 찍었어요”

‘동백꽃 필 무렵’은 차영훈 감독의 말처럼 ‘넷 정도의 멜로, 넷 만큼의 휴먼, 둘 정도의 스릴러’가 조화를 이룬 작품. 이정은에게는 동백(공효진)의 엄마 정숙으로 모성이라는 롤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까물이의 정체에 대한 ‘히든카드’를 쥐고있을 것 같은 미스터리가 부여되기도 했다.

“‘기생충’의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작품에 영향을 미칠지 몰랐어요. ‘동백꽃 필 무렵’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날 딸을 버리고 갔던 엄마가 쓱 나타나서 옆에서 밥이나 해주나보다 했는데, 나중에는 소장님(전배수)이나 저나 까불이처럼 보여야 하는거 아니냐고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시청자 분들이 어느 순간 ‘타인은 지옥이다’ 고시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냐는 반응을 보여주셔서 전작이 영향을 미치는구나 깨달았어요. 이런 선입견, 되게 좋다고 느꼈어요. 카메라 각도도 보면 음산한 느낌으로 계속 찍어주세요. 모두가 합심해서 교란 작전을 했던 거 같아요”

②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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