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 공연장 단골 레퍼토리다. 동화 속으로 떠나는 낭만적인 판타지 여행이 송년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프티파-이바노프 콤비가 완성한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더불어 고전발레 3대 명작으로 불린다.

올해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호두까기 인형’(21~31일·유니버설아트센터)에는 총 일곱 커플이 주역 클라라와 왕자로 호흡을 맞춘다. 이 가운데 UBC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 임선우(20)-서혜원(25)을 성수동 싱글리스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임선우는 발레리노 이전에 아역 뮤지컬 배우로 친숙한 인물이다. 지난 2010년 8월 국내 초연한 웨스트엔드 히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1대 빌리로 뽑혀 무대를 누볐다. 발레에 미쳐 지내던 영국 탄광촌 소년이 훗날 유명한 발레리노가 돼 무대 위에서 도약하던 엔딩 장면처럼 임선우 역시 정변의 아이콘이 됐다.

선화예고 3학년 때 객원 무용수로 UBC ‘호두까기인형’에 첫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고교 졸업 후 지난해 5월 입단해 연말 공연에 참여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보다는 작품과 캐릭터를 많이 이해하게 돼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긴 한데 아직도 배워야할 게 많아요. 왕자 느낌을 내려고 걸어다니는 것부터 클라라의 소원을 들을 때의 마임 등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파드되(2인무)의 경우 발레단에 와서 배우기 시작해 미숙한 점이 많아요. 체계적인 레슨을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죠. 그래도 여자 파트너를 받쳐주기 위한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가 꼽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막 호두까기 인형이 왕자로 변해서 춤추는 스노우 파드되다. 호두까기 왕자가 처음 등장하는 신이기도 하고 2인무가 끝나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코르 드 발레가 등장해 눈송이처럼 군무를 추는 ‘눈의 왈츠’ 장관이 펼쳐진다. 관객뿐만 아니라 무용수인 자신조차 절로 기분이 벅차오른다. 2막에선 환상 속의 과자나라로 가서 클라라와 함께 추는 그랑 파드되다.

“추운 겨울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작품이에요. 그래서인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고요. 친구나 연인끼리 감상해도 좋고 가족 단위로 봐도 좋은 공연이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임선우는 6살 무렵 굽은 허리를 바르게 펴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해 2년간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연습하던 중 그날따라 너무 재미나서 어머니에게 계속 하고 싶다고 요청해 발레학원에서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학원 선생님이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 공고를 보고 추천을 해줬다. 3차 시험까지 통과해 2011년 2월까지 6개월간 1대 빌리로 활약했다. 탁월한 춤 실력과 연기로 한국뮤지컬대상·더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을 휩쓸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일 거예요. 이 작품을 통해 탭과 아크로바틱, 연기, 노래를 배웠고 어린 나이에 빌리를 맡아서 극을 주도하는 경험을 했던 게 훗날 발레 전막극 주역 무용수가 됐을 때 많은 도움이 됐죠.”

어린 나이임에도 성숙하고 판단이나 결정도 대담하다. 보통의 발레리노들이 대학 무용과 입학, 콩쿠르 참가, 졸업 후 발레단 입단 수순을 밟는 것과 달리 남들은 입시에 매달리던 고3 때 분주하게 객원 무용수 활동을 하면서 UBC와 인연을 맺게 됐고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단했다.

“무용수는 생명이 짧잖아요. 몸 관리를 잘한다 하더라도 30대 후반이 되면 기량이나 체력이 떨어지죠. 어차피 대학 졸업 이후에 들어올 곳은 발레단이니 일찍 입단해서 경력을 더 쌓고 춤추는 시간을 늘리자는 생각에 고2 때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부모님과 함께 상의를 했는데 적극 지지해주셨죠. 대학생인 친구들을 만나면 부럽기도 해서 ‘나도 대학 다녀보고 싶다’는 얘기도 하는데 친구들은 오히려 제 결정이 낫다고 말해주더라고요. 후회는 하지 않아요.”

스무살 청춘답게 이곳저곳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즐비하다. 중고교 시절 안무법, 창작법 시간에 큰 흥미를 느꼈던 그는 현대무용과 안무에도 관심이 많다. 무용수로서 뿐만 아니라 커리어가 쌓이고 나면 안무가로서도 역량을 펼쳐보고 싶단다.

낭만발레 대표작 ‘지젤’의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다. ‘지젤’을 볼 때마다 친한 선배 발레리노들이 춤추는 거를 보면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자신이 그 무대에 서면 어떤 느낌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점프와 회전, 날렵하고 깨끗한 춤 선과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표현력을 인정받고 있다. 배역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고 귀띔한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지도를 잘해주셨어요. 일정이 없어서 쉴 때는 집이 있는 5호선 아차산역에서 광화문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교보문고에서 맘껏 독서를 하곤 해요. 책은 여러 사람들이 쓴 거고, 그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거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게 많죠. 소설도 많이 읽는데 주인공이 닥친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나중에 무대에서 비슷한 감정을 표현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야구 마니아인 그는 기아 타이거즈 열성팬이라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전남 광주까지 내려가서 경기를 관람할 정도다. 꿈이 광주구장에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해맑은 미소를 내비친다.

보름 후면 소년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스물 한살 청년으로 도약할 발레리노 임선우의 새해가 문득 궁금해진다. 소년 빌리의 도발적인 성년 흑조처럼.

사진=허성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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