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라는 말은 짝이 되는 동반자라는 의미로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에게 사용된다. '반려견' 역시 평생을 함께하는 개라는 의미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관으로 마니아층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루시드폴이 10년지기 반려견 보현과 함께 앨범을 발매했다. 보현이 작곡에 이름을 올린만큼 파격적인 시도를 한 루시드폴의 새 앨범 베이스는 보현에 대한 '배려'다.

지난 16일 오후 6시 공개된 루시드 폴의 정규 9집이자 포토에세이인 '너와 나'가 발매됐다. '너와 나'는 그의 반려견 보현과의 콜라보로 완성된 전례없는 앨범으로, 표지 역시 책 너머 정면을 응시하는 보현의 얼굴을 전면에 실었다. 보현이 중심이라는 의미다.

무려 2년 2개월만에 새 앨범을 발매하는 루시드폴이 이 같은 파격시도를 한 이유가 뭘까. 작년 여름에 출판사에서 번역 제안을 받은 것이 시작이다. "'손으로 말해요'라는 책이었다. 번역 제안을 받고 그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저희 동네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불법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개인이 개를 좋아해서 시작하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근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알음알음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다. 그곳에 기부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출판사에서 알게 됐고 그런 일을 더 해보자고 했다."

처음 루시드폴이 제안받은 것은 보현의 사진집이었다. 하지만 '과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가진 그는 올해 마침 앨범을 낼 생각이었기에 음반과 함께할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작년 귤 농장에서 손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기타를 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기타를 멀리하면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 전자 음악이다.

"사운드 스케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인간이 만드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려면서 반려견과 앨범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했다. 그때부터 보현의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보현이 산책하는 곳에서 소리를 채집했고, 계절마다 다른 소리를 다 채집했다.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에 음반을 낼 계획이다. 작품집 하나를 만들 것이라고 알렸다."

컴퓨터 디지털 장비의 도움으로 평범한 '멍멍' 소리부터 보현의 몸짓, 목소리는 드럼 베이스, 키보드가 되고, 리듬과 멜로디로 재탄생했다. "일단 리듬을 다 보현의 소리로 만들었다. 멍멍 소리도 나지만 보현의 소리를 녹음, 변조시키고, 합성도 해서 북소리처럼도, 드럼 소리처럼도 만들었다. 짖는 소리,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밥그릇을 긁는 소리 등을 녹음했다. 신디 사이저 소리도 있다.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이 소리의 DNA로 뭔가 또 다른 음악을 만들었을 때 이 노래 안에서 보현이 영원히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3곡의 수록곡 중에는 보현이 작곡으로 이름을 올린 곡도 있다. 바로 '콜라비 콘체르토'다. 루시드폴은 "가요 역사상 최초로 강아지가 쓴 곡이 아닐까 싶다. 1분 30초 정도 되는 짧은 곡이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실제 '콜라비 콘체르토'를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루시드폴은 빗물 튀는 소리, 종이를 구기는 소리, 유리를 밟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야채를 튀기는 소리 같다고 느꼈단다. 실제 이 소리는 보현이 콜라비를 먹는 소리라고.

"보현이 콜라비나 사과 같은 것을 먹으면 사람의 구강구조로는 날 수 없는 상쾌한 소리가 난다. 간식처럼 하나씩 줬을 때는 그냥 넘겼었다. 음악적이라는 생각에서 콜라비 먹는 소리를 녹음했는데 기분이 너무 상쾌해지더라. 보현이 곡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를 몇 번을 채집을 해서 컴퓨터로 변주해서 여러 강아지가 각각 다른 속도와 높낮이로 합주하는 것처럼 곡을 하나 만들었다. 보현의 소리를 (콜라비 연주)라고 써놨다. 저작권 등록도 할 것이다. 보현이 적극적으로 소리를 냈고, 음악의 범주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데뷔를 하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귀여운 반려견 정도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만들었다. 저작권료는 보현에게 줄 것이다."

강아지가 저작권 등록이 가능한 걸까. 루시드폴은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아내에 도움을 얻었단다. "위탁 관리를 해야 한다. 보현의 이름을 아내가 저작권 협회에 아티스트로 등록을 했다. 그렇게 관리할 예정이다. 보현의 친구들(개)에게도 보현 이름으로 도와줄 예정이다. 절대 보현을 위해서만 쓸 예정이다. 사후 저작권은 변호사분께 전문 상담을 하고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웃음)."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보현. 자신이 작곡한 노래에 대한 반응도 궁금했다. "마스터링 전에 집에서 틀어줬다. 원래 개들은 TV에서 개소리가 나거나 음반에서 개소리가 나면 경계하느라 짖는다. 예전에 보현의 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듣고도 짖었다. 이번 앨범은 완전히 음악으로 바뀐 소리도 있지만 보현의 내추럴한 소리들이 노래에 섞여 나오니 짖지를 않더라. 편안하게 듣는 것을 보고 자기 소리를 인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쉽게도 보현의 마음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타이틀곡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굉장히 편안하게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타이틀곡 '읽을 수 없는 책'은 이런 루시드폴의 마음을 대변하는 곡이다. "'읽을 수 없는 책'은 저한테 위로가 되는 곡이다. 마치 내가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든 느낌이다. 30분 정도 걸렸다. 제가 느끼기엔 빨리 쓴 느낌이다. 보현에게 느끼는 내 마음을 막 써 내려간 심플한 곡이다. 이 곡은 432Hz로 낮춰서 튜닝한 곡이다. 절대 음감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할 수 있는 곡이지만, 곡의 온도를 사람의 체온에 가깝게 끌어내린 것이다. 온탕에 들어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느낌이다. 여기라면 1시간도 있을 수 있겠다 싶은 느낌. 그래서 계속 듣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도 함께 만들고, 보현의 (소리) DNA를 만들어 음악 안에서는 영원할 수 있도록 한 루시드폴. 인터뷰 내내 그는 보현의 입장을 고심하고, 배려했다. 보현은 루시드폴에 어떤 존재일까.

"보현은 사람 나이로 치면 만 10살이다. 이번 작업하면서 개에게도 시계, 달력, 개념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3년 전에 동네 백구한테 심하게 물려서 심하게 대수술을 했다. 아직 털이 자라지 않는 등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낮선 사람이 오고, 택배기사만 와도 경계하느라 많이 짓는다.

내가 보현에게. 보현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보현의 입장에서 보고 싶었다. 만약 나도 보현이 아닌 다른 강아지를 만났으면 지금처럼 그랬을까? 저는 똑같이 사랑했을 것 같다. 보현이 나를 사랑하는지에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원형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없으니까 아이에 대한 사랑을 잘 모른다. 뭔진 모르겠는데 누구나 사랑하고 싶고, 사랑 주고 싶어 반려동물과 사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나를 마음껏 사랑해줬으면 해서 함께 하는 것 같다. "

루시드폴은 오는 28일과 29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9집 발매 공연 '눈 오는 날의 동화'를 개최한다. 9집을 함께 만든 보현도 함께 할 수 있을까? 루시드폴은 "같이 있었으면 했다. 제주도에서 서울에 개랑 함께 올라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큰 사고 후 굉장히 성격이 닫혔고 많이 힘들어한다. 배를 탈까도 생각해봤는데 보현 입장에서는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보현의 데뷔 무대는 볼 수 없지만 공연 때는 아마 이번 앨범에 있는 전곡을 다 하지는 못하 것 같다. 제가 프로듀싱하지 않은 곡도 있고, 집에 있는 장비를 다 가지고 올라와야 구현되는 소리들도 있다. 전자음악에 가까운 콘서트를 뒤로 미루고. 이번에는 오랜만이니까 원래 공연하고 녹음했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보현과 친구들을 위한 공연을 구상 중이란다. "결정된 것은 없지만 강아지들을 위한 콘서트를 하게 될 것 같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사람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최대한 개의 시선으로 보자 생각했다. 콘서트는 저녁 6~7시쯤에 야광봉을 흔들지만, 개들한테는 아침 산책을 하고 공연을 보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다른 이벤트를 봤는데 개들을 마사지해주는 분들이 있다. 공연을 보고 마자시를 하면 '아침 스폿 콘서트 패키지' 아니냐. 개들은 사람보다 청각이 예민하다. 이런 바닥에 앉아서 최대한 확성을 적게 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볼륨으로 가장 자극이 덜한 어쿠스틱 기타나 건반 연주를 할 것이다. 출판사랑 상의 중이다."

사진=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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