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송계는 지금 거대한 아궁이다. 볶고 끓이고 삶느라 쿡방의 불이 꺼질 날이 없다. 하지만 오히려 ‘쿡(먹)방=오락’으로 규정되면서부터 음식 해 먹는 일이 홀대를 받는 느낌이다. 셰프는 넘쳐나는데 요리사는 없다. 

요리사는 누구인가. 가장 습하고 구석진 곳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화구마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좁고 젖은 바닥을 오가며 점심을 치르는 사이 셔츠는 땀범벅이 되고 저녁을 치르는 사이 몸은 음식냄새에 푹 절여진다. 베이고 데이고 다치기가 일상인 그곳에서 요리사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아침, 점심과 저녁 사이에 점심, 한밤중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는다. 요리사는 남을 위한 요리를 하느라 제 먹을 건 못 챙겨먹는 사람이다. 

물처럼

허영만 원작만화 ‘식객’의 주인공 성찬은 채소 트럭을 끌고 방방곡곡을 다니며 떠돈다. 최고의 요리사에서 우여곡절 끝에 장돌뱅이가 됐지만 재료를 보는 눈만큼은 속일 수가 없다. 요리의 시작은 재료라는 사실은 라면만 끓여본 초등학생도 안다. 

테이블 두 개짜리 분식집이건 미슐랭 가이드가 극찬한 레스토랑이건 요리사의 하루는 손을 물에 담그면서 시작한다. 하루 종일 손이 퉁퉁 붓도록 재료를 씻고 다듬는다. 젖은 손 말릴 새 없이 팬을 잡고 칼을 쥐느라 요리사의 손은 예쁠 수 없다. 하루종일 깨끗하건 오물이 가득하건 찬 물에 손을 담그는 동안 요리사의 시간이 무르익는다. 

불처럼 

지난주 방송된 tvN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4에서 한 참가자가 심사위원들에게 “내 ‘불 맛’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접시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는 바람에 평가는커녕 강퇴당했다. 

요리사는 뜨거운 화구 앞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무거운 팬을 든다. 이 과정이 매일, 매년 반복된다. 서서히 균일한 맛이 잡혀가고 불을 다루는 데에 자신이 붙는다. 

물 같은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야 요리사의 맛, 불 맛이 나온다. 토치로 표면을 익히고, 불에 그을린 재료를 볶아서 낸 맛이 불 맛이라면 누구나 한다. 땀이 비 오듯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시간. 요리사의 처절한 불 맛이다.   

칼처럼 

중식요리사 이연복의 칼은 유명하다. 여러 프로에서 애제자(성시경 신동엽 김풍)들에게 하사하며 친숙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칼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자 그는 “칼은 인터넷에서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오래 쌓은 경력”이라고 대답했다. 

요리사가 자신을 얼마나 연마했느냐는 칼을 얼마나 잘 쓰느냐로 판가름된다. 무, 양파, 오이 등을 썰어 태산처럼 쌓아야 작은 도마 하나를 겨우 차지할 수 있다. 한 자루의 칼에는 요리사의 역사가 스며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식당의 주방에 가면 손잡이를 헝겊으로 둘둘 만 낡은 칼들이 꼭 있다. 그런 칼은 훈장이다. 

지난한 시간(물), 자기와의 싸움(불), 성취의 과정(칼)을 두루 거치며 요리사가 된다. 젊고 재기발랄한 셰프는 흉내낼 수 없는 경지다. 

에디터 안은영 eve@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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