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별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진출해 성공하기란 밤하늘의 별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윤제문(47)은 바로 그 행운을 실력으로 낚아챈 사나이다.

연극배우로 성공한 뒤 '남극일기'의 김성훈, '너는 내 운명'의 재호, '비열한 거리'의 상철로 스크린에 소프트 랜딩했다. 2011년에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해 사랑 받으며 대학로부터 충무로, 안방까지 석권한 배우가 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전문 배우로 불리던 그가 이번에는 양 볼을 부풀리고 입술에 틴트를 바른 여고생으로 돌아왔다. 12일 개봉한 '아빠는 딸'(감독 김형협)은 하루아침에 아빠와 딸이 몸이 바뀌면서 사생활은 물론 마음까지 엿보게 되며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가족 코미디다. 윤제문은 여고생에 빙의한 듯한 연기를 펼친다. 

"도전이었다. 여고생이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역을 표현할 기회가 생기니 연기자로서 욕심이 생겼다. 언제 또 이런 작품이 나한테 주어지겠는가. 정소민 양한테 조언을 많이 구했다. 서로 대본을 바꿔 읽기도 했는데, 그때 소민양이 표현한 여고생의 감정을 많이 참고했다."

윤제문은 '마더'의 형사, '덕혜옹주'의 한택수, '뿌리 깊은 나무'의 가리온 등 악역으로 대중에게 강하게 인식되던 배우였다. 그에 반해 '아빠는 딸'의 원상태는 '딸 바보' 만년 과장이다. 데뷔 이후 맡은 역 중 가장 착하고 코믹한 캐릭터다.

"연기는 다 어렵다.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런데 해 보니까 코믹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더라. 개그맨들은 천재다. 똑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스위칭 무비는 그동안 수없이 많았다. '체인지'와 '너의 이름은'이 그랬고,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비슷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까지 웃음을 유발하며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두 주연 배우의 힘이었다.

"영화에 코믹한 부분이 많아서 걱정했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이건 재밌겠다' 싶었던 게 촬영 들어가니까 벽에 부딪히는 지점이 생기고 그랬다. 재밌게 하려고 하면 오버스러울 것 같았고, 절제하려 하면 재미가 없는 것 같더라. 그 균형을 잡는 게 초반에 좀 힘들었다."

윤제문은 씨스타의 '나혼자' 댄스를 손끝의 디테일까지 살리며 섹시하게 소화해 영화의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촬영 내내 부끄러웠다며 명장면 탄생 비화를 공개했다.

"2주 정도 연습했다. 아이돌 춤을 처음 춰봤다. 내가 왼쪽 무릎이 안 좋다. 도입부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 부끄럽기도 했다. 연습할 때는 안무 선생님이랑 운동 삼아서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하려니까 민망하더라. 스태프들 다 있는데 나 혼자서 생뚱맞게 추려니까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바로 촬영에 못 들어가고 혼자서 따로 연습하다가 찍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특히 '손끝'을 선생님이 많이 강조하셨다. 그게 가장 포인트라고.(웃음)"

 

 

윤제문은 감독에게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 '슛' 들어가면 보여주는 쪽이라며 베테랑 배우다운 노련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기자들은 다 튀고 싶어 한다. 그 욕심이 없으면 연기 못한다. 말을 먼저 하면 김이 새는 느낌이다.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그러면 감독님도 '어? 이렇게도 표현이 된단 말이야?' 하면서 놀란다. 이건 이렇게 해도 되겠다 싶으면 그렇게 해보는 거다. 대부분은 대본에 있는 그대로 간다. 다행히 김 감독님이 많이 받아주셔서 현장에서 참 편했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두 딸의 아빠인 그는 극중 딸 도연이 "내 고민도 같이 고민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딸들을 다시금 관찰하게 됐다는 그의 얼굴에서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몰랐는데 딸들이 집에서 사내 아이들처럼 되게 편하게 지내더라. 밖에서 남자친구 만나면 조신한 척할 텐데 집에서는...하하...가족들이 나를 많이 응원해준다. 우리 큰 애가 친구한테 '우리 아버지 멋있지 않냐, 난 우리 아버지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더라. 어릴 때는 축구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커 가면서 엄마하고는 가까워지는데 나와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더라. 이번 영화가 그런 면에서 내 얘기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원상태는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잔소리쟁이다. 현실의 윤제문은 어떤 아빠일까. 그는 딸들에게 집이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양육 철학을 밝혔다.

"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친구 데려오고 싶으면 다 데려와서 놀라고 그랬다. 아이들 엄마한테도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 아이들한테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공부하라는 말도 거의 안 한다.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성적에 대한 집착은 부모의 욕심이다."

진지하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 감각으로 인터뷰에 솔직하게 임했던 윤제문은 마지막으로 지난해 있었던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건이 마무리된 뒤 6개월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그는 "그런 실수를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다. 스태프들한테도 그렇고 제작사 측에도 미안한 마음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진= 영화사 김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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