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 공연장 단골 레퍼토리다. 동화 속으로 떠나는 낭만적인 판타지 여행이 송년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프티파-이바노프 콤비가 완성한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더불어 고전발레 3대 명작으로 불린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호두까기인형'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을 따른다. 차이콥스키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살려냈다는 평을 받는 바이노넨의 '호두까기인형'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무대, 원작의 스토리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연출과 안무, ‘눈의 왈츠’ ‘꽃의 왈츠’의 수준 높은 코르 드 발레(군무), 클라라와 호두까기왕자의 파드되(2인무), 러시아, 스페인, 아라비아, 중국의 캐릭터 댄스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올해 UBC의 ‘호두까기 인형’(21~31일·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주역 클라라와 왕자로 발탁된 차세대 스타 서혜원(25)-임선우(20)를 성수동 싱글리스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아이돌이나 배우를 연상케 하는 깜찍한 마스크의 서혜원은 지난 2017년 UBC에 입단, 새내기 코르 드 발레임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호두까기 인형’ 여주인공 클라라를 꿰차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작년에는 첫 출연이라 역할을 수행하기 바빴다면 올해는 관객과 주변을 볼 수 있는 데다 동료들의 춤도 즐길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제 춤도 보다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고요.”

원래 판타지 장르를 좋아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부터 대리만족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그런 그의 취향을 저격한 작품이다. 어린 소녀 클라라가 어른이 돼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환상의 나라에서 춤을 추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1막과 2막의 매력이 다 달라요. 환상의 나라로 들어가는 초입부에서 추는 눈송이 파드되(2인무)에 관객들 반응이 좋아요. 호두까기 인형과 어린 클라라가 불과 몇초 만에 성인으로 탈바꿈하는 워낙 드라마틱한 장면이라 우리도 하면서 두근거리고 신나죠.”

올해는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홍향기-이동탁, 최지원-마밍, 손유희-간토지 오콤비얀바, 김유진-필리포 안토니오 루사나, 베린 코카바소그루-임선우, 서혜원-이고르 콘타레프 등 총 일곱 커플이 번갈아가며 무대를 꾸민다. 서혜원은 러시아 출신 발레리노 이고르 콘타레프와 호흡을 맞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짝을 이루게 된 저희 조는 막 시작하는 풋풋함이 매력이에요. 이고르가 프로생활 경험이 풍부해서 잘 맞춰줘요. 절 많이 배려해줘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임)선우 조는 인형 같은 느낌이 특징이에요. 판타지 동화 분위기가 물씬 나죠. 작품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 같아요.”

유치원 때 처음 발레를 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발끝을 꼿꼿이 세우는 이 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무용학원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세종대 무용학과에서 기량을 연마했으며 신인무용콩쿠르 금상(2015), 서울발레협회콩쿠르 은상(2011),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3등(2009), 서울발레콩쿠르 금상(2006)의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UBC에 입단하게 됐다.

“아무래도 프로 무용수로서 제가 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하게 마련인데 UBC가 좀 더 소통이 잘 되고 열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외국인 단원들도 많고, 코르 드 발레라도 의욕과 기량만 좋으면 주역을 따낼 수 있는 등 기회가 많이 부여되는 곳이에요. 주위 시선을 보지 않은 채 소신껏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죠.”

서혜원은 아름다운 미소와 우아한 춤선으로 코르 드 발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온 무용수다. 특히 발등과 무릎이 예뻐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정확한 동작을 구사한다. 폴드브라(팔동작)를 활용한 고급스럽고 사랑스러운 연기에 뛰어나 ‘백조의 호수’ 파드 트루아, ‘호두까기 인형’ 클라라, ‘춘향’ 기생 역으로 팬덤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다.

UBC '호두까기인형' 주역을 맡은 차세대 발레스타 서혜원(왼쪽)과 임선우

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즐기는 전형적인 ‘홈족’이다. 음악을 듣고 반신욕을 즐기고, 집안일을 돕거나 든든한 후원군인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 해외 유명 발레 영상물과 자신의 연습 영상을 보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상상하고 감정 이입하는 걸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에 부끄러움이 없는 편이고요. 그래서인지 ‘오네긴’과 같은 드라마 발레를 해보고 싶어요. 춤을 추면서 감정을 다 쏟아내 보고 싶은 역할을 맡는 게 소망이에요. 클래식 발레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으나 몸을 쓰는 거에 있어서 제한이 많잖아요. 더더욱 감정을 깊이 있게 전달하게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올 수 있도록 평소 훈련을 많이 하는 펀이에요. 슬플 때, 기쁠 때, 고통스러울 때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일상에서 많이 느끼고 내 걸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서혜원은 본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 때 핀 라이트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비로소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진심을 다해 인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위해서 연습실과 무대에서 땀방울을 흘린다”고 뉴이어가 더욱 기다려지는 라이징 스타가 눈을 반짝였다.

사진= 하승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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