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꿈을 꾸었다. 그날은 몸이 너무 안 좋아 학생분들께 미안하게도 연기레슨을 하루 쉬었던 날인데, 갑작스레 대통령이 되었고 수행원도 없는 상태에서 15분 뒤 있을 기자회견을 가기 위해 자동차를 강탈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곧 있을 공연과 연기레슨, 에세이 연재에 대한 부담감들과 그걸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는 내 의지가 담겨있는 꿈이라 생각했지만, 트위터에 올렸더니 좋은 꿈이라고 복권을 사라고 지인이 말했다.

금요일에는 공연연습을 위해 동네의 피아노 학원을 빌렸다. 공연일까지 저녁이후에만 빌리기로 했다. 그 곳에서 공연의 연습과 회의가 있었고, 회의가 끝나고 양꼬치를 먹으며 신나 있다가 목요일 꾸었던 꿈이 생각나 로또와 연금복권을 샀다. 27년을 살면서 내겐 복권을 사본 경험이 없었다. 복권이라는 건 추첨일 전까지의 기대감과 설렘을 사는 거라 생각해왔었는데, 과연 그랬다. 내 눈엔 유독 내가 산 복권들이 뭔가 영험하게 보였다. 어쩌면 이 복권이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토요일 로또추첨일에 나는 칼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는 꿈을 꾸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재물과 성공에 관한 꿈이었고 나는 들떠 있었다. 아주 많이 들떠 있었다. 당첨이 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 이유 없는 확신들. 내가 당첨이 되리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추첨시간을 알아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지갑에 넣어둔 복권을 꺼내와 추첨방송 한참 전부터 TV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방송 시작이 다가올수록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20시 38분 방송이 시작됐다. 현재 시간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멘트, 복권기금이 어떤 사업에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짤막한 영상들-하지만 내겐 몹시 길게 느껴졌던-이 지난 후 추첨이 시작됐다. 둥근 통 안을 날아다니는 색색의 공들이 빠르게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1...2,15,19,24,36 그리고 보너스 번호 12까지 순식간에 추첨이 완료 되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내가 3일간 조금씩 더해온 확신이 무너졌다. 분명히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2등도 3등도 아닌 1등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꿈에서 대통령도 되었고 자동차도 훔쳤고 칼에 찔려 피까지 흘렸는데... 이상한 일이다. 꿈자리가 정말 좋았는데 로또가 안됐다. 25억원이 내 옆을 스쳐갔다. 방송이 끝나고 멍 하니 앉아 있다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안됐지?’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왜 안됐지?’ 하며 계속해 되뇌다가 조금 소강되고 나서 로또가 아니고 다른 일이 잘될 건가 보다 하고 생각 했지만 아무래도 속이 쓰려 누워 있다가 금방 잠들었다.

나는 애초에 꿈자리 같은 걸 믿는 사람도 복권이나 운, 도박에 목숨 거는 사람도 아닌데 정말이지 이번일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은 속이 쓰리다. 3일 동안 기대하며 행복했던 것보다 안 되고 나서의 데미지가 더 크달까. 뭐 지금은 좋은 일이랄 게 로또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 본업에서 혹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운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좋은 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내게는 아직 연금복권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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