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마지막회가 17.3%(전국 시청률, 닐슨)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막을 내렸다. 배우 유아인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방원 역을 맡아 냉혹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를 지닌 ‘새로운 이방원’을 빚어냈다. 23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가 5개월의 대장정을 마친 소회를 털어놨다.

    

 

 

1. 육룡이 나르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해보진 않았지만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면 이런 기분일 듯하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긴 했지만 그간 해왔던 작품 중에 가장 기간이 길었다보니 그만큼 허전함이 크다. 그래도 역시 섭섭함과 시원함을 따지자면 2대 98정도 될 것 같다.(웃음)

 

2. 이방원

 

이방원은 강인함, 철의 군주, 강직함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캐릭터다. 나 또한 처음엔 이방원에 대해 그런 이미지랄까 선입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도 하나가 아닐진대 캐릭터에 대한 한 가지 해석만 허용된다고 보긴 힘들다. 난 정치인으로서 이방원이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힘의 투쟁’ 속에서 선악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당시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기로에 있었을까, 어떤 심경이었을까 등에 대해 시청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까진 사도세자가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였는데 이방원으로 바뀌었다.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3. 성장

 

이방원의 성장을 표현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었다. 표면적으론 목소리나 움직임, 톤, 표정의 변화도 나이대별로 차이를 두려고 했다. 그간 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었는데,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인간으로서 고결함에 점점 때가 묻어가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단순히 성장이라기보다는 순수함에 때가 묻고 찌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4. 김명민

 

김명민 선배(정도전 역)와는 호흡이 잘 맞았다. 사실 감독님께서 한번 문자로 “기죽지 마”라고 보내셨는데 원래 저는 기 안죽는다.(웃음) 그간 ‘완득이’(김윤석), ‘베테랑’(황정민), ‘사도’(송강호), ‘밀회’(김희애) 등 많은 대선배님들과 연기해오면서 단련돼온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초반엔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눌려 있고 그를 우상처럼 바라보고 따르다보니 아무래도 뒤를 좇는 느낌인데 자기가 어른이 되고 나선 관계가 달라진다. 힘 있게 부딪혀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김명민 선배와 편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5. 밀회

 

재작년과 올해에 걸쳐 ‘사도’ ‘베테랑’ ‘좋아해줘’ ‘육룡’ 등 동시에 많은 작품들로 팬들을 만나게 돼서 좋았고, 많은 사랑 받으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큰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던 한해다. 그런데 배역들이 다 선 굵은 캐릭터다보니 유아인이 너무 ‘센 캐릭터’만 좋아하는 건 아니냐는 오해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 인물들은 나의 번외편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밀회’의 선재같다.

    

 

 

6. 정체성

 

난 내가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한다. 한명의 배우로서 작중 인물을 창조하고 한 작품을 만드는데 이바지하는 사람이고, 혹은 옷이나 그림, 프로젝트같은 것을 통해 제가 직접 포착, 해석한 사람들을 제 방식으로 재창조 표현해내기도 한다. 다양한 수단, 과정 통해서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배우는 그중 하나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연기에 대해 그렇게 접근해야 더 본질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7. 태양의 후예

 

어제(22일) 아시아필름어워드 기자회견을 하는데 질문의 80%가 ‘태양의 후예’ 관련이었다.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다.(웃음) ‘태후’가 대세긴 대세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일단 송중기 송혜교씨 둘다 너무 좋아하는 형 누나 작품이라 성공해서 좋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시청률 17%만드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저긴 그냥 한번에 30% 찍어버리는구나 싶어서 부럽기도 했다. 우정을 나눴던 동료의 성취와 성장을 보는 게 진심으로 기분 좋았다.

 

8. 정치참여

 

그동안 끊임없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사회가 개인화돼가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지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정치가 아니겠나.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아갈지를 정하는 게 바로 정치니까.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이분법적 선악구도를 벗어나 젊은 세대들이 유연하고 열린 사고로 정치를 바라보고 투표 등을 통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당장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내가 어떤 대학 가야지’ ‘어떤 직업 가져야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사진출처=뉴스엔, 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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