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 없는 야구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열기가 뜨겁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연출 정동윤/제작 길픽쳐스)가 방송 4회 만에 순간 최고 시청률 13.8%, 첫 회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닐슨코리아 기준) 이는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추이로, 아직 극초반부라는 점을 고려했을때 더 높은 시청률 기록에 기대가 모아진다.

야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적인 스포츠지만, 복잡한 규칙과 셈법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기도 하다. 때문에 프로야구를 배경으로 한 ‘스토브리그’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청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스토브리그’는 지금까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반복해온 클리셰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선수나 팀의 단합을 내세운 작품들과 달리 프런트(구단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 ‘꼴찌구단’의 드라마틱한 서사나,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감동 스토리가 아닌 내부의 문제점들을 짚어낸다는 점도 신선하다. 또 구단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이던 사람들의 말간 얼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질적 병폐가 ‘스토브리그’의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다.

 

♦︎ 남궁민-박은빈-조병규, 매력적인 캐릭터 열전

남궁민은 ‘스토브리그’로 작품 선택의 선구안을 입증했다.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의 경우 업무의 영역에 철저하게 사적인 감정을 배제시킨다. 때문에 구단은 물론 팀원들과 선수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높은 이세영(박은빈)에게 백승수는 ‘참 정이 안가는’ 상사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을 뿐, 누구보다 사태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고 해결 방법 역시 합리적이다.

모두가 가까이 하기 꺼려하는 백승수에게 편견없이 다가선 건 드림즈의 ‘낙하산’ 한재희(조병규). 스스로를 낙하산이라고 말하지만 한재희는 매일 가장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운영팀 직원이다. 이런 한재희를 올곧게 바라봐준 사람은 백승수가 처음이였다. 그간 이세영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을 보여온 한재희가 백승수에 대한 신뢰를 쌓아올리기 시작하며 두 사람의 특급 브로맨스에도 기대가 모아진다.

이세영은 패배의식이 깊숙이 자리잡은 드림즈에서 팀원들과 선수들을 격려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여성 팀장. 특히 ‘남초’ 직장에서도 기죽지 않는 ‘파이팅’으로 버텨온 당찬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자기 일처럼 구단을 돌봐온 이세영에게 칼같은 백승수는 다소 불편한 감정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임동규(조한선) 트레이드, 고세혁(이준혁) 스카우트 비리 사태를 겪으며 백승수의 직관적인 업무 능력과 방식을 수긍하게 됐다.

 

♦︎ 오정세-조한선-이준혁, 스릴러 못지 않은 ‘반전의 반전’

‘스토브리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배우들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매회 강렬한 반전을 선사하고 있다. 임동규의 경우 드림즈의 4번 타자이자, 인격적으로도 높게 평가를 받던 선수. 하지만 뒤로는 드림즈의 실권을 장악하고, 자기 입맛에 따라 선수들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었다. 급기야 백승수가 자신의 트레이드를 시도하려고 하자 사람을 시켜 협박을 일삼으며 ‘스토브리그’ 초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허허실실 사람 좋아보이던 고세혁 스카우트 팀장의 민낯은 지난회 방송에 드러났다. 감독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드림즈 내부의 신망이 두텁고, 한때 드림즈의 올드스타이기도 했던 그가 스카우트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 팀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던 고세혁이 뒷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건 이세영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이런 비리를 야구계의 관행으로 여기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권경민(오정세)은 신사적인 매너 속에 상대를 대하는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가 불쾌감을 수반하고 있다. 실질적 드림즈 구단주로 백승수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려고 데려왔다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아직 권경민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고세혁의 징계를 두고 백승수와 본격적인 갈등을 시작하며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 정치공학적인 프런트의 세계

정동윤 PD가 제작발표회에서 이야기했듯 ‘스토브리그’는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총체적으로 담겨있는” 드라마다. 드림즈라는 구단으로 배경이 특정되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성적 지표 뿐 아니라 처세술과 임기응변으로 굴러가는 사회의 단면이 그려진다.

고세혁이 법적인 처벌도 가능한 스카우트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구단이 나서서 이를 묻고 가려는 모습이나, 의기투합해도 모자랄 꼴찌팀 코치들이 편을 나뉘어 알력 다툼을 하는 장면 등으로 ‘스토브리그’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지형도를 만들고 있다.

이미 여러 구단을 거쳐오며 백승수는 이런 기형적인 시스템에 대해 누구보다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 임동규 트레이드에 대한 저항을 강두기(하도권)로 한번에 종식시키며, 업무적 능력은 물론이고 정치공학적인 치밀함까지 보여줬다. 프런트와 감독, 코치진, 선수단 여러가지 채색을 가진 인물들이 어떤 수싸움을 펼쳐보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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