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 최고의 디바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배우 정선아가 ‘아이다’로 돌아왔다. 정선아는 올해 마지막 시즌의 막을 올린 '아이다'에서 이집트 고대 왕국의 여왕으로 철부지 공주에서 여왕으로 성장하는 암네리스로 다시 한 번 분했다. 

암네리스는 곧 정선아의 또 다른 분신이기도 하다. 정선아는 '아이다' 재연(2010년)과 삼연(2012년)을 연이어 꿰찼고 제7회 더뮤지컬어워즈,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그녀의 4번째 암네리스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올해 초 정선아는 '웃는 남자'를 마치고 언어 공부를 위해 중국 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중 '아이다'의 원저작권자 디즈니의 레플리카 공연이 종료되며 마지막 시즌이란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귀국했다.

"중국엔 8~9개월 있었네요. 언어를 공부하긴 짧은 시간이었고 1~2년은 더 공부하려고 했는데 '아이다'가 마지막 시즌이라는 거예요. 저한텐 너무 고마운 작품이고 배우로서, 사람 정선아로서도 많은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관객분들께 사랑받아서 소중하기도 하고 이 작품으로 제가 코미디가 되는구나, 관객들을 웃길 수 있구나, 알게 됐어요. 그래서 특별해요. '아이다' 전엔 거친 느낌의 캐릭터를 맡아왔어요, 관객들에 사랑받는 암네리스로 말미암아 '위키드' '킹키부츠' 등 이어서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죠. 그래서 이번 공연을 놓칠 수 없었어요."

사진=신시컴퍼니

재밌게도 정선아가 '인생캐' 암네리스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초연(2005년) 때 배혜선 언니가 암네리스를 맡았을 때죠. 저는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그땐 태닝도 진하게 했고 '노틀담의 곱추'의 에스메랄다처럼 센 역할을 많이 했어요. 화려하고 거칠고 보이시한 이미지였죠. 그런데 '아이다' 연출가 키스 배튼이 '너는 아이다가 아니라 다음 시즌에 암네리스로 오디션을 보라'고 했어요. 이해가 안 됐죠. 공연을 보고 나서야 암네리스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암네리스가 너무 불쌍한 거예요. 1막에선 관객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다가 2막에선 상처받은 여인이 되잖아요. 찌릿하더라고요."

"배우들은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역할을 내가 할 때 가장 떨리는 거 같아요. 2010년 2번째 시즌 때 암네리스에 붙어서 원캐스트로 3개월 동안 120회를 공연했는데 하루는 혜선 언니가 온 거예요. 보러온단 얘기를 안 했는데 공연하다가 중간에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덜덜 떨었잖아요. 나중에 언니가 '너무 잘 표현했다. 최고야'라고 해줬고 큰 힘이 됐어요. 왕관을 물려준 거죠. 참 고마웠어요.”

사진=윤공주, 아이비, 전나영/신시컴퍼니

올 시즌 캐스트가 공개되자 이전 시즌을 함께했던 배우들과 새 얼굴들이 마지막 공연을 위해 뭉쳤다는 사실도 화제를 모았다. 암네리스의 연적인 아이다 역은 윤공주와 전나영이, 정선아의 암네리스 더블 캐스팅으론 아이비가 무대에 오른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초연 때 정선아가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듯 윤공주는 암네리스 역 오디션을 봤다는 것. 정선아는 윤공주와 알고 지낸 지는 가장 오래됐지만 같은 작품에 서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14년 만에 각자 꼭 맞는 옷을 입고 만나게 됐다.

“언니는 제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언닌 챙겨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여배우는 여배우잖아요. 거리낌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싶어요. 그런데 언니랑 전 늦게 만났지만 서로 너무 좋아해요. 팽팽한 관계를 연기하지만 무대 위에서도 잠깐씩 나타나는 거 같아요.”

신예 전나영은 ‘보석’ 같다고 했다.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내려만 오면 “언니”라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통에 ‘우쭈쭈 네 맘대로 하렴’이란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고. 방만 있으면 노래를 하는 ‘연습벌레’라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노력하니까 무대 위에서 당당한 거겠죠. 딱 맞는 캐릭터를 입었어요. 정말 아이다 같아요.”

함께 암네리스를 번갈아 올리게 된 아이비는 이전 그녀의 공연을 보고 “넌 암네리스를 하려고 태어났어”라는 찬사를 건넸다. 아이비가 뮤지컬을 시작하기 전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위키드’의 글린다도, ‘아이다’의 암네리스도 함께하며 돈독한 동료가 됐다.

사진=정선아의 공연 모습/신시컴퍼니

‘아이다’는 제목 그대로 아이다를 중심에 두고 그녀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슬픈 사랑을 그리는 뮤지컬이지만 약혼자 라다메스를 뺏기는 암네리스의 심정에 이입하는 관객들도 많다. 때문에 암네리스를 호소력 있게 연기한 정선아도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되지 않나요.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만 바라보는 모습이 안타깝잖아요. 그래서 2막에선 많은 분들이 저에게 손을 들어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암네리스의 매력은 에너지가 상당히 좋고 유쾌한 데 있어요.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도 무대 위에서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표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유쾌함부터 슬픔까지 감정의 깊은 낙차를 겪는 암네리스만큼이나 정선아는 실제 성격도 캐릭터를 닮은 듯했다.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설명하며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지나간 일은 잘 잊는다”고 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또 앞을 바라보며 가는 성격이라 배우 자신이 건강해야 무대 위에서 좋은 에너지를 낼 수 있고, 관객에게 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19세의 나이에 '렌트'로 데뷔해 어느덧 17년차 배우가 된 정선아. 아직도 자신을 신인 같다고 느끼지만 어느 덧 시간이 흘러 까마득한 후배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생경하단다. 그를 롤모델로 여기는 후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뮤지컬만 계속 해왔어요. 제가 꿈꿔왔던 무대, 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힘을 많이 받아요. 예전엔 뮤지컬 자체를 안 보는 분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여러 차례 계속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무대에서 난다 긴다 해도 관객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나요. 많은 분들이 뮤지컬 배우를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이 한 길을 걸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시즌 ‘아이다’라는 배에 올라탄 정선아는 또 한 번 씩씩하게 나아가려 한다. 누구보다 가장 암네리스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자신을 믿어가면서.

“마지막 시즌인데 전 마지막 같지 않아요. 다음에도 또 불러줄 것만 같은데...피날레란 걸 알기에 요즘은 공연마다 마지막 공연처럼 서고 있어요. 배우가 같은 작품을 4번 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에요. ‘했던 거니까 편하게 가자’가 아니라 처음 하는 느낌으로 새로움을 느낀다는 거, 또 다른 느낌으로 관객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이죠. 말이 7년이지 그동안 정말 많은 작품을 했거든요. 왠지 친정 같아서 마음이 편하기도 해요. 딱 지금이 암네리스에 집중할 수 있을 때라고 봐요. 저를 믿고 책임감을 업고서요. 연기나 노래를 잘하는 거보다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서 그것만 보여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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