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이 새 도전을 시작했다. 텔레비전과 영화를 넘나드는 20년 배우 커리어에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또 하나 추가한 것이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배우 이동건과 만났다. 그는 지난 1990년대 흥행한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를 각색한 동명의 뮤지컬에서 팝스타 레이첼 마론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전직 대통령 경호원 프랭크 파머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첫 공연하고 다음 날 바로 2회를 공연했어요. 3회 동안 실수가 없어서 마음을 놨더니 자잘한 실수를 하게 됐어요. 너무 긴장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역할 특성상 노래하고 춤을 추진 않는데 액션과 음악의 합이 맞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클럽 신에서 레이첼을 안는다거나 스토커로부터 구하기 위해 총을 쓸 때 몸을 딱 맞춰야 하는데 포인트를 놓치면 김이 새요. 타이밍 맞추는 데 욕심을 많이 내고 있어요.”

처음 캐스팅 발표 소식을 듣고 ‘이동건이 뮤지컬이라니?‘라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 저었다. 데뷔 20여 년 만에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게 된 이동건. 그는 ‘보디가드’가 뮤지컬 도전에 최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새 도전을 할 때 부담 요소가 크면 거절하게 되는데 ‘보디가드’는 도전하고픈 분야임에도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이 적었어요. 춤과 노래가 없었기 때문이죠. 뮤지컬을 한다면 이만한 작품이 있을까 싶어 욕심을 내게 됐어요. 작품에 있어서 철저히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인 듯해요. 외면받을 수도 있어요. 다시 카메라로 가라고 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1년에 한 작품은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1년에 2~3개 작품씩 3, 4년을 해왔더니 소모되더라고요. 자주 나오니까 저를 보는 시청자도 소모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무대에서 제 모습을 1년, 2년에 한 번이라도 보여준다면 큰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그의 말마따나 ‘보디가드’의 프랭크 파머 역은 춤과 노래를 하지 않는다. 대신 이동건은 카메라 앞이 익숙한 발성과 연기 스타일을 무대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발성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무대는 대사를 뱉는 발성 자체가 달라야 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대사라도 객석에서 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굳어진 제 발성을 고쳐가고 무대에 맞게 개선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다음은 블로킹(동선)이에요. 의도한 움직임과 관객에게 보이는 움직임의 느낌이 차이가 있어서 새로웠어요. 그래서 선배님들의 조언이 고맙더라고요. 저나 레이첼 파머 역의 네 분 말고는 많은 배우가 원캐스트인데 그 분들이 디테일을 짚어주셔서 감동했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프랭크 파머는 젠틀하고 카리스마 있는 경호원이다. 레이첼 파머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차가운 듯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하지만 곧 서로 인간적 매력을 느끼며 가까워진다. 이동건은 강경준과 더블 캐스팅으로 같은 프랭크 파머를 연기하지만 느낌은 다르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경준 씨의 프랭크 파머는 더 따뜻하고 유쾌해요. 두 명이니까 두 캐스트를 다 보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전 같은 말을 해도 경준 씨보단 차갑게 들려요. 웃는 장면에서도 열심히 웃어도 해맑게는 못 웃는 거 같아요.“

사진=CJ ENM

주크박스 뮤지컬인 ‘보디가드’에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들이 김선영, 박기영, 손승연, 해나의 4색 목소리로 재해석된다. 그중 이동건이 요즘 공연 중 가장 아끼는 곡은 ‘One moment in time’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와닿더라고요. 레이첼이 오스카 시상식에 서서 부르는 곡인데 스토커가 나타나고 제가 구하려고 몸을 날리게 돼요. 노래가 시작되면 감정이 굉장히 고조돼요. 레이첼이 노래를 부를 때 전 무대에서 내려와서 총을 들고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그 시야 자체가 너무 진짜 같아서 몰입돼요. 굉장히 프랭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뛰어 들어가는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한데 리허설 때 잘못 들어갔다가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어요.

그래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장면인데 그 긴장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기분 좋은 몰입감을 느껴요. 박자가 쪼개지고 제가 들어갈 때가 되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져요. 라이트가 2박 전에 들어오는데 굉장히 소름 끼쳐요. 그 라이트가 신호가 돼서 집중할 수 있어요.”

사진=CJ ENM

새로운 도전인 만큼 부담감도 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컸던 걱정과 부담은 아내 조윤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스트레스를 어디에 표현하지 않아요. 윤희 씨는 저보다 더 스트레스받을 테니까 말 못 해요. 늘 그런 편이에요. 스트레스의 근원을 해결하는 수밖엔 방법이 없어요. 첫 공연을 문제없이 해결하면 해소되는 문제니까 계속 연습했죠.”

부담과는 별개로 연습실 출퇴근은 이동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선물하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기 전까지 연습실에서 준비하고 쉬고 밥 먹는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수면 시간과 일하는 시간, 일하지 않는 시간이 보장돼요. 드라마가 평생의 업이었던 사람으로선 즐기고 있어요. 육아 시간도 늘어났어요. 지금 아기가 말을 배우고 입이 트이는 기간이라 대화가 좀 돼요. 한 번은 공연이 없는 날에 짐볼장에 갔어요. 아빠랑 둘이 간 애는 없었는데 엄마들 사이에서 놀면서 재밌더라고요.

드라마를 촬영할 땐 아기 얼굴을 며칠에 한 번 보면 다행인 수준이었어요. 워낙 아기는 일찍 자고 일찍 깨지만 제가 더 먼저 깨서 나가니까 엇나가면 못 보고 며칠도 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촬영하는 시간이 많고 저는 규칙적으로 퇴근하니까 좀 달라졌어요. 한 번은 밤에 아기가 자다 깨서 윤희 씨가 가봤더니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고 했다는 거예요. 감동이었고 뿌듯했어요.“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가 무대에 서게 된 시점은 카메라 앞에서 가장 소진됐을 때였다. 올 한 해 동안 KBS 2TV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과 TV조선 '레버리지: 사기조작단‘에 연이어 출연했고 그렇게 3~4년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번아웃됐다.

”20대는 철없었고 30대는 게으르게 보냈어요. 돌아보면 일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이 떨어졌던 때에요. 후회해요. 그걸 일깨워준 건 아이의 탄생이었어요. 배우가 아니고 아빠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각인됐어요. 인기를 얻고 좋은 작품에 멋지게 나오는 거보다 열심히 일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걸 번개를 맞듯이 알게 됐어요. 그걸 맞고 미친 듯이 3년을 뛰어왔어요. 소모되더라고요. 번아웃을 느꼈죠.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무릎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나갈 기운이 없는데 왜 나가야 하지, 싶었는데도 또 이상하게 카메라 앞에 서면 하게 되긴 하더라고요. 그때 뮤지컬을 만났고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제 막 무대 위 첫발을 뗀 이동건의 목표는 두 가지다. 바로 ’보디가드‘ 삼연(현재 재연 중)에 서는 것과 앞으로도 1년에 한 작품씩은 무대 위에서 서는 것. 번아웃을 극복하는 출구가 되어준 뮤지컬 도전이란 첫 발짝이 이동건의 커리어에 어떤 길을 만들어나갈지 기대가 된다.

한편 이동건이 출연하는 ‘보디가드’는 2020년 2월 23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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