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42)이 드디어 곤룡포를 두른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코믹수사활극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총명한 왕 예종과 비상한 재주의 신입 사관 이서가 한양에 나도는 괴소문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조선 최초의 과학수사라는 참신한 설정과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유쾌 발랄한 코믹 시너지를 자랑하는 작품 속 예종으로 변신한 이선균을 19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 '끝까지 간다'...코미디와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이선균의 생에 첫 사극이다. 익숙하지 않은 세트와 의상 그리고 말투까지. 그동안 사극이 두려웠으나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다.

"미니시리즈 16부, 20부조차 정신 없는데 30부, 50부 대장정을 쪽대본 주고 하라면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마흔이 넘어가니까 트렌디 드라마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은 해야 할 텐데…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정말 적절한 시기에 사극이 들어왔어요. 막상 해보니까 불편한 건 처음뿐이더라고요. 의상이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에너지와 말투를 주고받는 게 좀 헷갈렸지만 퓨전 사극이라 많이 오픈된 상태로 했던 것 같아요"

 

 

예리한 추리력의 막무가내 임금 예종. 논어보다 해부학, 궁궐보다 사건 현장이 적성에 맞는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 속 단서를 찾기 위해 밤마다 저잣거리로 잠행을 나가거나 시체 검안까지 직접 하는 등 이전에 본 적 없는 색다름을 선사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였지만 '왜 이 멋진 역할을 나한테 주지?'란 의문이 동반됐다.

"예종은 젊은 배우들도 충분히 탐낼만한 캐릭터예요. 원작 만화에서도 꽃미남으로 나오거든요. 그런 역할을 왜 나이 든 유부남에게 줄까 싶었죠. 그래서 농담처럼 '후회하지 않겠냐'고 묻기도 했어요. 잘 만들어진 기성복처럼 누가 입어도 어울리는 역할이거든요. 그냥 입고 잘 놀기만 하면 되는 캐릭터였죠."

늘 캐릭터보다 상황이 더 부각되는 시나리오를 많이 받아왔다. 이번엔 모든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좇아야 직성이 풀리는 임금이다. 상황을 끌고 가는 역할이나 매력적이고 공격적인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예종이 더욱 탐났다. 

"지금까지는 공격적인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리액션을 하면서 극을 끌고 갔어요. 반면 예종은 공격성이 보이는 캐릭터죠. 캐릭터가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던 셈이죠. 이 다재다능하고 멋진 인물을 표현할 때 멋에만 집중했다면 오히려 과해졌을 거예요. 이서 역의 재홍이와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조금은 부족한 듯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호흡을 주고받는 코미디가 되려면 왕과 신하의 관계가 수평적이어야 살아날 것 같았어요"

 

 

후배 안재홍이 천재적 기억력을 소유했으나 어리바리한 신입 사관 이서 역을 맡으며 그림이 완성됐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손발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다가도 찰떡같이 사건을 파헤쳐 가는 두 남자의 케미가 볼 만하다. 두 배우의 인연은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선균은 주연인 교수, 안재홍은 단역인 학생이었다.

"재홍이는 기분 좋은 배우예요. 같이 연기할 때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맑고 좋아요. 또 귀엽잖아요. 억지로 웃기는 것도 아닌데, 얼굴만 봐도 터지는 게 있어요. 리액션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잘하고요. 지금은 진짜 동네 형동생처럼 지내요. 촬영 끝나고 나서도 영화 보러 같이 다녔어요. 이젠 자주 못 보더라도 카톡 방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연락해요."

극 중간에 등장한 목검 대결 신은 영화에서 가장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 중 하나다. 때릴 때 나는 소리가 하도 리얼한 바람에 당하는 안재홍은 꽤 아팠을 듯 싶었다. 

"재홍씨가 피부가 탄력이 좋아요(웃음). 그 장면에서 NG가 많이 났어요. 웃겨가지고. 시나리오에 있던 장면은 아니고 우리끼리 만든 장면이에요. 둘이 리허설 하면서 여러 애드리브를 주고받듯이 해봤거든요. 재홍이가 목검으로 때리는 장면이 재밌다고, 하자더라고요."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에서 중저음 목소리로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이선균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꾸준히 변신을 거듭했다. 지금 10회차까지 촬영한 '악질경찰'에 대해 "세고 거친 영화"라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을 예고한다. 이렇듯 그간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 왔지만 그의 곁에도 막연한 두려움은 언제나 자리했다. 

"배우에겐 연기하는 게 일이잖아요.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데 계속 선택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연기하는 게 불안 요소인 것 같아요. 보통 40대 가장들처럼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옛날엔 연기가 마냥 좋고 꿈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복합적인 것들이 결부된 제 삶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책임감이 생겨나네요. 역할에 있어서도 30대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안 해본 걸 도전해보고 싶어져요."

2001년 뮤지컬 ‘록키호러쇼’로 데뷔해 '그리스' 등에서 명성을 떨쳤던 그는 뮤지컬을 다시 해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이 날아들자 손사레를 친다.

"뮤지컬은 이제 진짜 못해서 안 하는 거예요(웃음). 뮤지컬로 데뷔했지만, 지금처럼 전문화된 시대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뮤지컬 배우들 보면 너무 잘하더라고요. 이제 감히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 또 이건 취향 문제지만, 옛날에는 제가 대극장 뮤지컬을 안 좋아했어요. 대극장의 화려함이 저랑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하면서 너무 재밌다고 느껴본 적이 없기도 했고, 엄두가 안 나네요. 이젠 정말 머나 먼 다른 분야인 것 같아요."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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