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문체, 드라마틱한 반전, 치밀한 묘사, 여유와 긴장을 오가는 완급 조절로 프랑스 문단에 스릴 넘치는 충격을 던졌던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미셸 뷔시(52)가 올 봄 한국을 찾았다.

네 번째 장편소설 '절대 잊지 마' 출간 기념 아시아 투어의 첫 번째 일정으로 서울에 입성한 그는 "한국 사람들은 에너지가 많아서 인상적이다"며 웃었다. 지난 21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중년 소설가의 눈빛에선 호기심이 빛났다.

 

 

프랑스 해안도시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셸 뷔시는 2006년 첫 추리소설 '코드 뤼팽'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그림자 소녀'가 신드롬을 일으켰고 프랑스 최고의 추리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후 '내 손 놓지 마' '절대 잊지 마'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그림자 소녀'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절대 잊지 마'는 의혹에 휩쓸린 한 남자의 운명을 그려낸 심리 스릴러다. 이야기는 아랍인 출신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삐딱한 시선을 받으며 자란 서른 살 청년 자말이 살인 누명을 쓰면서 시작된다. 반전으로 유명한 그답게 이번 소설에도 독자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 방이 있다.

"반전은 위험한 요소다. 반전이라는 건 독자들을 놀라게 할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결말과, 결말의 반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독자들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도록 노력한다. 읽을 수록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지도록 이야기를 만든다. 미끄럼틀을 올라가듯이 증거들을 하나씩 쌓다가 책이 끝나기 100에서 150페이지 전쯤 모든 걸 터뜨린다. 그 뒤에는 그냥 미끄럼틀에서 내려가는 일만 남기에 계속 읽게 된다."

미셸 뷔시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공간이다. 그는 고향인 노르망디 지역의 풍경을 이야기에 접목해 생생한 현장감을 불어 넣는다.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프루스트, '레 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 등 많은 작가들 역시 노르망디를 사랑했다.

 

 

"낭만주의 작가들은 바다가 주는 느낌과 해안 절벽을 좋아했던 것 같다. 산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관광지로도 각광을 많이 받고 있고, 특히 파리 사람들이 가까워서 많이 온다. 또 노르망디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2차 대전 동안 폭격을 받으면서 완전히 무너졌다가 재건된 곳이다. 역사가 살아 숨 쉰다고 할 수 있다."

뷔시는 2012년 '그림자 소녀'로 돌풍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첫 번째 소설 '코드 뤼팽'도 출간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첫 소설은 서른 살에 썼는데 출판사에서 거절을 많이 당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빅뱅에 관련해 글을 썼는데 그게 지역 출판사에서 출판되면서 성공을 거뒀다. 그 뒤 서른 살에 썼던 소설을 출판사에 다시 보여줬더니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 작품(그림자 소녀)이 문학상을 받았고, 모든 게 시작됐다."

스티븐 킹을 포함해 대부분의 작가들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성공한 작가로서의 담담함이 느껴졌다.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을 때 작가가 되지 못할 거란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는데, 꿈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출판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특히 첫 번째 소설은 기대를 많이 해서 꼭 책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뷔시는 한국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기억에 남는 영화가 뭐냐고 묻자 그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꼽았다.

"미학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웠다. 이야기 구성 자체도 탄탄했고. 보통은 이야기 진행에만 치중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미지에 천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가씨'는 이야기도 좋고 장면 자체도 예술적으로 훌륭했다. 그 두 가지가 아주 잘 결합됐더라. 특히 반전의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장르 소설 작가로서, 대중 작가로서 미셸 뷔시는 문단의 비평가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에 대한 비평가들의 오래된 선입견에 대해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대중문학이라는 게 이야기가 비평가를 통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한국 추리작가들과의 대담이 있었는데 그들도 같은 말을 하더라. 한국에서도 대중문학 작가들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 프랑스 문단에서도 스노비즘 같은 경향이 있다. 영미 문학에서는 대중문학이나, 상상력의 세계에도 많이 주목하고 있다. 나는 일반 독자들도 이런 상상의 세계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강점이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그의 소설은 여러 트릭들이 정교하게 짜여 있어 긴장을 놓칠 수 없게 한다. 한편 동시에 뷔시는 그것이 자신의 약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재밌고, 반전이나 트릭이 있으면 사람들이 이야기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물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 어렵다."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덕에 그의 소설은 현재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시나리오에도 관심이 생겼다는 뷔시는 여전히 쓰고 싶은 이야기, 도전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앞으로 나올 작품에 대해 묻자 뷔시는 "최근에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는 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룰 예정"이라고 힌트를 줬다. 밤의 심장을 긴장으로 조이게 할 그의 다음 황홀한 세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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