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서 출발해 충무로 대세로 자리 잡은 배우 안재홍(31)이 26일 개봉한 '임금님의 사건수첩'(감독 문현성)으로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CSI 맞먹는 15세기 조선판 과학수사에서 사관 이서 역으로 열연한 그는 뼛속까지 러블리한 엘리트함을 뽐냈다. 지난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안재홍을 만났다. 독립영화계를 평정한 이후 첫 상업영화 주연으로 발탁된 그는 아직까지도 연기를 향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코믹 수사 활극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총명한 왕 예종과 비상한 재주의 신입 사관 이서가 한양에 나도는 괴소문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 최초의 과학수사라는 참신한 설정과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유쾌 발랄한 코믹 시너지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많은 망설임 끝에 선택한 영화인만큼 완성본을 잔뜩 긴장한 채 보게 됐다. 상영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시사회 때 일반과 반응이 궁금해서 들어가 봤어요. 관객 연령층이 정말 다양했는데, 어르신분들이 적극적으로 재미를 표하시더라고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작품을 볼 때마다 정말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굉장히 시간을 들여 의미를 만드는 것인 만큼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라 그 무게감이 다르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많이 물어봤고, 궁금해서 그냥 가보고 싶었어요. 잘 간 거였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좀 지나야 객관화된 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임금님의 사건수첩'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넷상에선 살짝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잘생기고 어여쁜 임금과 사관의 BL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가져온 건 조선 최초의 과학수사라는 참신한 설정이었다. 여기에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유쾌 발랄한 코믹 시너지를 더해 스크린에 투사했다.

"원작은 일부러 안 봤어요. 촬영 준비하면서 도움이 될까 여쭤봤더니 감독님이 안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설정만 가져온 거지, 이야기 자체는 완전히 달라요. 영화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했거든요. 인물은… 제가 원작 작가님께 죄송하다고 그랬어요(웃음). 고사 날 뵀을 때 원작이랑 저랑 많이 달라서 죄송하다고 그랬죠. 근데 작가님은 저와 많이 달라서 죄송하다고 그랬죠. 근데 작가님은 저와 선균 형이 캐스팅돼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 이서. 낮에는 사관, 밤에는 비밀 수사까지 24시간 풀가동, 가성비 甲 신입 사관 역할이다. 학식, 가문, 귀여운 외모는 물론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비상한 재주를 겸비했다. 이서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건 되도록 시나리오 속에서 지시된 캐릭터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장원 급제까지 했는데 백정 짓을 시키냐고 투덜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굉장히 총명하고 학식이 남다른 인물이에요. 초반에 굉장히 어리바리하고 허둥대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부분이 바보처럼 보여선 안된다고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환경과 공간에 좀 더 집중하려고 했죠. 아무리 똑똑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군대 훈련소만 가보면 낯설어서 허둥대기 마련이거든요. 실제로 그런 사람을 훈련소에서 봤어요. 어리바리해 보여서 물어보면 법대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아, 물론 비하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어리바리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는 이미 독립 영화 시절부터 안재홍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지난 2016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캐릭터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봉블리'라는 애칭과 함께 시청자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정봉이와 이서, 두 캐릭터를 나란히 놓고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이 영화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최대의 이유였다. 

"많은 분들이 정봉이를 좋아해 주셨지만, 실제의 저는 사실 막 순수하거나 착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이서도 선하고 순수한 모습이 정봉이랑 비슷하잖아요. 좋게 말하면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새롭지 않게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정말 좋았어요. 이서의 성장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서가 우직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보일 때, 캐릭터가 자연스레 좀 더 확장돼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 이선균은 모든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쫓아야 직성이 풀리는 임금 역을, 안재홍은 그의 곁에서 다섯 걸음 이상 떨어져서는 안 되는 임무를 수여받은 어리바리 신입 사관 역을 맡으며 심상치 않은 궁궐 콤비를 결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서와 예종이 극을 이끌기 때문에, 공격과 리액션을 잘 주고받는 것이 연기의 관건이었다.

"저는 리액션이 많은 인물이라 선배님 옆에 딱 붙어 있었죠. 이서는 주로 예종을 바라보고 움직임에 반응하잖아요. 선배님께서 이서의 반응이 더 잘 나오도록 에너지를 많이 주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했죠. 카메라 앞에서 저 혼자 연기할 때에도 선균 선배님은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앞에서 유도해주셨어요. 제가 큰 작품을 하게 되면서 생겨난 부담감도 이해해주셨고, 대화도 정말 많이 해주시고 정말 자상하셨어요"

이선균을 처음 만난 건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였다. 당시 이선균은 주연인 교수, 안재홍은 단역인 학생 역할이었다. 지금은 동네 형 동생처럼 지내지만 처음부터 편한 사이였다고 하면 그건 아니다.

"제 입장에선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인연인데, 막 친했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제가 선배님께 먼저 다가간 편도 아니었고, 제가 학생일 때엔 선배님은 정말 스타고 배우였거든요. 우러러보는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먼저 편하게 생각할 순 없었어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절 귀여워해 주셨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나 봐요. 제가 따로 연락을 먼저 드리지는 못했지만, 영화 '족구왕' 때 먼저 보셨다며 연락 주시고 격려해주셔서 너무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그 문자 메시지를 캡처해서 갖고 있을 정도예요"

 

부산에서 영화를 향한 로망을 키우며 자랐다. 서울에 상경해 영화를 전공하며 사투리 고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부산 출신이지만 유년시절 '부산국제영화제'는 딱 한번 가봤다. 영화과에 재학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무대인사를 해보는 소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동기 중에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빨리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문을 소리 내서 억양 없이 읽었고, 드라마 대사를 자주 따라 하기도 했어요. 어릴 땐 주로 비디오방 단골이었고, 부산 남포동 가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많이 나요. 아무래도 부산 시민이다 보니까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죠. 영화과 학생일 때 생겨난 소원 첫 번째가 부국제에서 무대인사하는 거였어요. 2012년 영화 '1999 면회'로 꿈을 실현하게 됐는데 너무 벅차오르고 떨렸던 기억이 나요. 목까지 빨개져서 숨이 가빠지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따라다닌다.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다른 배우들도 매한가지일 테다. '열아홉 연주'(2013) '검은 돼지'(2015) 등 직접 단편 연출을 하던 시절을 환기시키며 다시 한번 영화를 찍어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연기 말고 다른 걸 하고 싶진 않아요. 지금 당장은 없어요. 단편 영화는 졸업하고서 소규모로 찍었던 거예요. 앞으로 만들 계획이라든지 구상 같은 건 전혀 없고, 일단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밖엔 없는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분들께 다가가고 싶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어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에선 다른 모습, 다른 분위기를 보여드릴 것 같아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예요"

 

 

사진 최교범 (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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