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들의 높은 눈높이를 저격할 또 한 편의 장르영화가 탄생했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감독 정식, 김휘)은 해방 후 서울에서 펼쳐지는 서스펜스 스릴러 극으로 기존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창적 색깔을 과시한다. 새로운 자극을 원하던 시네필들에게 큰 선물이 될 예정이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해방 후 서울, 한 석조저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전말을 쫓아간다. 유일한 증거는 잘려나간 손가락뿐인 의문의 살인사건에 경성 최고의 재력가 남도진(김주혁)과 정체불명의 운전수 최승만(고수)이 얽히며 ‘시체 없는 살인’에 관한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 몰입도 높이는 마술 같은 얼개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커다란 저택 안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형사와 범인으로 보이는 피투성이 남자가 대면하면서 시작된다. 현장에는 시체를 태운 흔적과 잘려나간 손가락, 여섯 발의 총알 자국만 있을 뿐이다. 사건에 대한 정황만 적절히 제시한 영화는 이후 범인으로 지목된 도진의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사(박성웅)와 그의 변호사(문성근) 간 치열한 법적공방과 왜 최승만이 과거를 숨기게 됐는지, 도진과의 악연을 교차하며 서사를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 최승만이 운전수로 일하기 전, 마술사였던 점이 밝혀지며 궁금증은 배가된다. 사건의 정황을 제시하면서도 조금씩 상황을 숨기면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연 그는 진짜 죽은 건지, 혹은 살아있다면 어떤 속임수를 통해 도진을 궁지로 몰아갈지 생각해보게 만들어 몰입을 촉구한다. 그리고 결국 드러나는 반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 다채로운 공간과 동행하는 감정선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모던하고도 화려한 미장센을 이용해 과도한 듯 보이는 감정까지 극에 녹여낸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호텔을 전전하며 마술을 선보이던 ‘낭만 마술사’ 승만의 과거를 보여주는 시퀀스에서는 예스러운 풍경과 선명한 원색이 포근함을 꾸민다. 반면 살인 사건의 주무대가 되는 석조저택은 어두컴컴한 조명은 물론, 공간에 공백을 남겨 서늘한 공기를 주입시킨다.

언뜻 배경들은 연극무대 같은 인상을 건네는데, 도리어 이 인위적 연출이 40년대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한다. 이렇듯 스크린에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리가 깔리면서 배우들의 연기 또한 빛을 발한다. 다른 작품이었으면 분명히 다소 과해 보일 법한 연기가 이어지지만, 이 역시 배경 분위기와 섞여 디테일한 감정선으로 느껴진다. 고수의 눈빛은 처연함으로, 김주혁의 일그러지는 표정은 카리스마로 관객들의 얼굴을 때린다.

 

‣ 박성웅 vs 문성근...명품 법정 공방

영화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연출은 양날의 검과 같다. 자칫 잘못하면 서사 몰입을 해칠 수 있다. 하지만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교차 서사는 스크린 가득 생기를 불어넣는다. 과거 시퀀스에서 승만과 도진의 사연 못지않게, 현재 법정에서 벌어지는 변호사와 검사의 기싸움 역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까닭이다. 이 작품을 ‘법정영화’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처음에는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선 정황을 꾸며낼 수 있다”는 검사 송태석이 악역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변호사 계약이 끝나지 않았다면, 당신이 사람을 죽였어도 무죄다”라고 말하는 변호사 윤영환에게 악역이 넘어가는 장면은 관점에따라 '악'이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깨나 섬찟하다. 명품 배우로 손꼽히는 박성웅과 문성근의 호연으로 완성된 이들의 기싸움은 후반부 반전을 보다 강렬하게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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