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에서 대구로 가 연극배우 인생을 살았다. 꿈을 품고 상경한 후에는 무명 배우에서 단역, 조연을 거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러던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외상전문의 최인혁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어느덧 '믿고 보는 배우'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성민(52)이 이번엔 '부산 아재'로 열연을 펼친다.

3일 베일을 벗는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의 개봉을 앞두고 지난 4월 27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성민을 만났다.

 

부산 기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보안관'은 오지랖 넓은 전직 형사 대호(이성민)가 서울에서 내려온 사업가 종진(조진웅)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수사물이다.

"시사회 때 봤는데 영화가 재밌더라. 코미디를 하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는데 관객들이 많이 웃고, 재밌는 만화책 보듯이 낄낄거리면서 보시더라. 생각보다 만듦새가 좋게 나왔다. 깔끔한 맛이 있다. 담백한 된장을 먹은 것 같은 영화다."

이성민은 난투 그 자체인 맨몸 액션과 코미디를 오가며 폭넓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전직 형사이자 자존심 강한 부산 사나이 역을 소화하기 위해 태닝을 하고 쫄티를 입고 거친 부산 사투리를 구사했다. 특히 나이를 무색게 하는 완벽한 근육질 몸매가 놀라움을 자아낸다. 개인 트레이닝 없이 오로지 혼자서 몸을 만들었기에 놀라움이 배가 된다.

"처음에는 쳐진 살로 운동하는 게 좀 민망했다. 그러다가 점점 쳐진 게 싹 올라가더라. 그때 목표로, 라이벌로 삼은 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그 형님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분한테는 아재라고 안 한다. 섹시하다고도 하고. 우리 딸도 좋아한다. 몸이 좋아지고 나서는 자꾸 벗고 다녀서 집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근육질인 애들이 훌렁훌렁 벗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 근데 부산에서 촬영하면서 다 무너졌다(웃음). 매일 '형님 뭐 먹을까요~' 이러니까."

 

대호는 생업인 고깃집은 뒷전으로 하고 자율방범대 컨테이너를 아지트로 삼아 반백수 넘자들을 거느리며 동네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자칭 보안관' 아저씨다. 그러던 어느 날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한 종진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서 대호는 갈등을 겪는다.

"대호는 수컷으로서 리더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게 그의 약점이다. 남의 일을 해주고 느끼는 쾌감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집에서는 다 싫어하는 아버지상이다. 집안일은 안하고 나가서 남의 일이나 도와주니까(웃음). 그러다가 갑자기 구종진이 나타나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다. 형사로서의 직감도 있었겠지만, 별 볼일 없던 놈이 좋은 차에 비서까지 두고 금의환향한 걸 보고 질투를 느낀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공작인 줄 알았는네 깃털이 더 긴 놈이 나타난 거니까. 여자들이 예쁜 애가 나타났을 때 그 여자의 약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듯이 남자들도 그런 게 있다."

대호는 경찰도 아니면서 친한 동생의 음주 사건을 해결해 주거나, 장사가 잘되도록 발 벗고 나서고, 동네 모든 사람들의 사소한 일까지 전부 꿰고 있을 만큼 오지랖이 넓은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의 이성민은 남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며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나는 그렇게 오지랖이 많지는 않다. 옛날에 젊었을 땐 나 살기 바빴고 이기적이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특히 연극할 때 그게 심했다. 대구에서 혈혈단신 올라와 집도 없었으니까. 누구든 시비를 걸면 '맞짱'을 떠야 했다. 나를 보호하려고 눈에 레이저를 쏘면서 다녔다. 요즘은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듣고 관심도 가지려고 한다. 그때 알던 후배들이 지금 나를 보면 옛날엔 안 그랬다며 뭐라고 한소리 한다."

드라마와 영화, 배역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관객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연기력을 펼쳐왔다. 그러다 지난해 1월 개봉한 '로봇, 소리' 이후로는 주·조연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로봇, 소리'에서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조연으로 나왔고 동시기에 개봉한 또 다른 작품 '검사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아쉬운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로봇, 소리' 이후로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난 재능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그때 내가 다시는 (주연으로) 출연을 안 해야지 했는데 '보안관'을 하게 됐다. 이것까지 안되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촬영하는 기간 동안 치열하게 반성했다. 주인공을 맡고 있는 배우들은 다 이런 생각을 할 거다. 조연 때는 나 개인, 배우 이성민의 연기가 중요했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주연을 하니까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들, 제작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중요해지더라. 지금이 중요한 시긴 것 같다."

그는 지난 4월 26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짧게 얼굴을 비쳤던 이야기와 배정남과의 비화를 덧붙이며 심기 일전의 마음을 드러냈다.

"주변 동료들이 힘이 돼 줬다. '라디오스타'에서 후배들이 하는 거 보고 반성을 많이 했다. 잠을 못 자서 눈이 새빨갛게 충혈이 됐더라. 그때 (배)정남이가 '보안관' 검색어 1등 못 올려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걔가 생각을 하고서 그런 말을 하는 애가 아니다. 천성이 그렇다.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중요하다. 연기 인생에 대해 불안감도 있고 위기의식도 느낀다. '보안관'을 계기로 뭔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