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 40일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이 시작할 때부터 캐릭터들의 갈등은 형성돼 있었으며 사건은 어느 정도 진전돼 있었다. 이병헌은 그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캐릭터의 감정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이병헌은 기승을 보여주기 전에 전결로 2시간을 채워야했다.

“저는 ‘남산의 부장들’이 사건 발생 40일전 이야기가 아닌 17~18년의 이야기를 다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연기한 김규평부터 박통(이성민), 박용각(곽도원), 곽상천(이희준)의 전사가 모두 드러나,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으니까요. 영화는 이미 변할대로 변해버린 캐릭터들의 관계부터 드러납니다. 그 점이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죠.”

“김규평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곽상천과 감정적인 대립을 펼칩니다. 곽상천을 연기한 이희준 배우가 충분히 자료 조사를 해서 캐릭터를 완성시켰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이 두 캐릭터의 감정이 잘 갈린 칼처럼 바짝 날 서있죠. 김규평의 저격 행동도 미스터리로 남습니다. 그가 진짜 욕심 때문에 일을 벌였는지, 아니면 욱하는 성질 때문에 그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 남게 된 미스터리는 영화에서도 남아있어야 하죠.”

이병헌은 영화에서 항상 진지하고 무언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김규평을 표현했다. 김규평이란 캐릭터가 곽상천을 만나면 상황이 달라졌다. 김규평이 유일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상대, 그가 바로 곽상천이었다. 그만큼 이병헌과 곽상천을 연기한 이희준과의 대립 형성이 중요했다. 이 두 사람의 멱살 잡는 장면은 두 캐릭터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제대로 보여줬다.

“곽상천과 멱살 잡는 장면이 진지함 가득한 이 영화에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김규평과 곽상천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제가 자료 조사한 결과 실존인물이 다혈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우민호 감독도 이를 알고 시나리오에 집어넣었죠.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규평은 항상 차분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인데 곽상천 앞에서는 심적인 갈등을 크게 겪습니다. 곽상천이 있기 때문에 김규평도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희준 배우와의 멱살 신은 따로 호흡이 필요없었어요. 합이 있는 액션이라면 약속한대로 싸우면 되는데 이건 그냥 멱살 잡는 거였죠.(웃음)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이 신은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막싸움이니 미리 준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신에서 이희준 배우가 던지는 대사들은 모두 시나리오에 적혀있던 거였어요. ‘남산의 부장들’엔 애드리브가 거의 없습니다. 모두 감정이 더 해서도, 덜 해서도 안된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죠.”

경자년 시작부터 복을 한 바구니 받은 이병헌. 그는 그 어느때보다 ‘지금’을 조심해 했다. 30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언제나 연기, 작품 고민 속에 빠져있는 이병헌은 ‘백두산’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또 다른 작품에서도 연기로서 관객들에게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려고 한다.

“작품을 찍다보면 어느 순간 객관성을 잃어버린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시는 분들은 다를 수 있죠. 배우보다 관객분들이 객관적입니다. 어떨 때는 캐릭터 흉내만 내다가 끝낸 작품들도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대할지, 그게 배우들의 딜레마, 발버둥치기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점이 제일 힘드네요.”

“그렇게 작품 하나를 끝내놓으면 저의 다음 작품은 뭐가 될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캐릭터가 내게 올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등 무수한 고민에 빠지게 돼죠. 촬영 중에는 제가 맡은 캐릭터를 잘 해내고 있는지 고민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배우 생황을 지금까지 해낸 것 같습니다.”

사진=BH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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