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을 읽는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내몰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그 시대’ 불온서적 중에는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 유명 사상가들의 저서도 포함돼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등장 이전에 문학은 사상 검열의 제1선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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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치적인 잣대는 영화가 대중화되며 시선을 옮겨갔다. 예술이되 산업이기도 한 영화 매체의 특성상 사회적 파급력이 컸고, 영화적 메시지만으로 감독을 비롯해 출연하는 배우 그리고 제작사까지 정치 성향을 분리됐다. 물론 이런 시선은 영화를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대중들이 아닌 ‘윗분들’에 의한 분류였다.

공교롭게도 ‘기생충’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제작‧배급‧연출‧출연한 작품이다. 지난 2017년 국정원개혁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이명박 정부 ‘좌파 연예인 대응TF’가 관리 대상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 보고서에 기재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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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했던 경찰과 공무원의 비리가 그려진 ‘살인의 추억’, 위기대응에 미숙한 정부와 반미 정서가 담긴 ‘괴물’이 이유로 꼽혔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이야 어찌됐든 ‘불편한 목소리’가 섞여있다면 반(反)정부 인사로 분류됐다.

송강호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실체가 밝혀졌을 때 연예인 중 가장 큰 피해자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의 주연을 맡은 뒤 정권의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경 CJ 부회장은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CJ 고위인사 전화를 걸어 “VIP 뜻이니 이미경 부회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한 녹음파일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었다. 당시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기생충’은 영화를 정치로 재단하는 일부에게 여러모로 불편한 영화다. 한국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블랙코미디로 채색한 작품이기 때문. 그저 영화가 오락이기만을 바라는 국가관이라면 ‘기생충’은 애초에 탄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로 ‘포스트 봉준호’, ‘포스트 기생충’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물질적 지원만큼이나 우선시돼야 하는 건 창작의 자율성 보장이다. 영화적 메시지가 정말 ‘불온’한 것이라면 대중이 먼저 외면한다. 영화는 선전물도 아니고, 이에 휘말릴만큼 관객이 미개하지도 않다.

상업영화는 자본의 힘없이는 시나리오에서 영상화 과정으로 넘어갈 수 없다. 결국 영화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고, 명망있는 감독이 되기까지 제작 과정에 많은 목소리와 개입이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영화를 하나의 창작물로 인정하는 인식이 갖춰진다면 우리 사회는 제2의 봉준호가 아닌 그 이상의 성취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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