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홀로 편의점을 찾아가 한구석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신다. 술은 마시고 싶은데 술집 가는게 부담스럽고, 술 먹자고 친구 불러내는 것도 귀찮아서다. 

늦저녁에 갈 때도 있고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에 갈 때도 있다. 친구들은 "세상 무서운줄 모른다"고 혀를 차지만 직접 시도해보면 꽤나 흥미로운 일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짙은밤, 고요한 편의점에선 여러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1 힐끔힐끔 '힐끔이들'

그냥 순간적으로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지만 편의점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사람들. 가장 일반적이다. 그냥 시야에 있길래 힐끔 쳐다 본다. 혼자 앉아 있길래 힐끔 쳐다 본다.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길래 힐끔 쳐다 본다. 정말 흥미 없이 슬쩍 보고, 슬쩍 나가는 사람들이 97% 정도 차지한다.

 

#2 잔인한 미성년

우리 동네 GS25 건물 윗층에는 독서실이 있다. 밤중에 공부를 마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편의점을 찾은 '교복'들은 혼자 술을 마시는 나를 보며 수근댄다. 물론 나 안들리라고 수근거렸겠지만 사실 다 들렸다는게 함정. "왜 여기서 청승이야" "술집 갈 돈이 없나보지" "X나 없어 보인다" "관종(관심종자)" 등등... 새파랗게 어린 '놈'들이 나를 씹어댄 게 분했지만, 생각해 보니 전부 맞는 말뿐인 거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결코 무서워서는 아니다).

 

#3 취객 등판

굳이 번화가에 위치한 편의점이 아니어도 취객은 언제나 존재한다. 날 발견하고 말을 건 취객은 20대부터 중년 남성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알코올 덕에 자신감이 솟아난 그들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와선 작업을 건다.

생전 처음 보는 내게 용돈을 주겠다는 아저씨도 있었고, 어떤 여자는 "왜 자기 남자친구를 쳐다보느냐"며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물론 지금 언급한 건 극단의 경우일 뿐, 대부분 그냥 말만 한두마디 건네다 반응이 없으면 중얼대며 나가는 게 태반이다.

 

#4 심심한 알바생

편의점 알바생도 손님이 없으면 내게 말을 건다. 한창 대화를 하다가 자기 돈으로 바나나랑 우유같은 걸 사주기도 한다. 그 알바생과 대화한 다음부턴 그 편의점에 가질 않는다. 혼자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5 편의점 혼술족

편의점에서 청승 부리는 혼술족이 나뿐만은 아니다. 4번에서 언급한 알바생이 말하길 나처럼 혼자 와서 술 마시는 사람이 더러 있단다. 나도 한번 마주쳐 봤다.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중년 남성분이 멀찌감찌 떨어진 자리에 앉아 소주를 한병 까고 새우깡을 안주 삼아 드시고 계셨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새우깡을 와그작대던 그분이 눈물을 훔치는 걸 목격하니 '오지라퍼' 기질이 발동돼 결국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신경에 이상이 생겨 입원한 중년 여성과 서른 다섯이 넘도록 취직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 얘기를 듣고난 후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의 슬픔을 전해듣는 것 역시 정말 버거운 일이구나.

 

#6 편의점 공부족

야밤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면서까지 단어 암기를 하는 학생을 볼 땐 신선한 충격이다. 학구열에 놀라는 건 아니다. 설렁설렁 대학을 다니며, 뭐 하나 열심히 하지 않던 나도 고등학생 때는 저랬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7 쓰레기를 거부하는 자

어떤 손님들은 도시락이나 김밥을 허겁지겁 먹고 재빨리 자리를 뜬다. 외로움이 많은 나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나보다 먼저 나가는 그들에게 섭섭함을 느끼곤 한다(나도 이런 내가 웃기다).

한번은 그런 손님 중 한 여성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가 말하길 "집에 쓰레기 생기는게 싫어서 여기서 음식을 해치우고 가는 거"란다. 속으로 무릎을 탁 친 나는 그날 이후 배가 고프면 밖에서 허기를 달랜 뒤 귀가한다. 종량제 봉투도 비싼 나란 서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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