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보컬’ 손승연(27)이 ‘뮤지컬 디바’로 거듭났다. 23일 막을 내리는 대형 뮤지컬 ‘보디가드’(지난해 11월 28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여주인공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아 가창뿐만 아니라 무르 익은 연기력으로 뮤지컬 팬들을 사로잡았다. 막공을 앞두고 손승연을 만났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층고 높은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불세출의 디바인 고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동명 영화(그의 히트곡들을 토대로 만든 주크박스 필름이다)를 무대화한 ‘보디가드’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최고의 팝스타 레이첼 마룬 이야기다. 의문의 스토커로부터 날아든 협박편지에 두려워하던 그는 결국 전직 대통령 경호원 프랭크에게 개인 경호를 받게 되고,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의 상황에서 프랭크의 육탄저지로 목숨을 부지하면서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공연인 올해 무대에서 손승연은 베테랑 뮤지컬배우 김선영, 팔색조 디바 박기영, 가수 출신 배우 해나와 함께 레이첼로 분했다. 네 디바 가운데 막내다. 상대역 프랭크 파머는 배우 이동건·강경준이 맡았다. 손승연은 출연진 가운데 유일하게 2016년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했다.

“연기도 뮤지컬도 처음이었던 초연 때는 신경 쓸 게 너무 많았어요. 연기도 해야 하고 노래에 힘도 줘야 하고 동선 체크부터 상대 배우와 호흡 등 정신이 없었죠. 이번에는 어느 정도 알고 하게 되니 역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5살 때부터 들었던 나의 뮤즈 휘트니 휴스턴 롤로 3개월을 산다는 게 너무 행복할 거 같아서 선택했는데 만족스러워요.”

초연 당시 소속사 대표를 설득한 끝에 출연할 수 있었다. 가수 활동에 집중해야 했던 시기라 난색을 드러낸 소속사 대표에게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내 인생의 큰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기에 무조건 해야 한다” “배우는 게 많을 거라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떼(?)를 썼다. 후회는 1도 없을 선택이었음을 재연하면서 더 크게 느꼈다.

“주옥과 같은 팝 넘버를 한국어로 번안해서 불러야 해서 어색했어요. ‘이 노래는 이렇게 부르면 안되는데’란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죠. 그런데 노래 한곡 한곡이 드라마와 이어지기 때문에 ‘이 노래는 이렇게 불렀어야 했구나’를 점차 깨닫게 됐어요. 고음과 풍성한 울림 등 가창력을 뽐내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음을 많이 깨닫고 공부하게 된 기회였죠.”

아이러니하게 일반 무대에서보다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더 편했다. 전자의 경우 고작 3~4분 안에 표현해야 하므로 노래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를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뮤지컬은 3시간 정도를 스토리 전개와 함께 노래하다 보니 좀 더 집중하고 표현하기 쉬웠다.

“이런 부분이 제게는 조금 더 수월하게 다가온 듯해요. 무엇보다 휘트니를 더욱 좋아하게 됐어요. 정말 대단한 보컬리스트예요. 초연 당시 영화 ‘보디가드’를 10번 넘게 봤는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연기도 너무 잘해서 레이첼을 착붙으로 소화해내더라고요. 한편으론 제가 꿈꾸는 라이프이기도 해요. 레이첼과 같은 디바처럼 되기 위해 미국 팝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라 간접경험 느낌이 들기도 하죠.”

레이첼은 무대에선 섹시하고 차가울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지만 여린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그만큼 다양한 면을 빚어내야 한다. 원래 쾌활하고 털털한 데다 일할 때는 원칙을 고수하는 완벽주의자 손승연표 레이첼은 예민하고 강인함에 있어서 타 배우들을 압도한다. 특히 무대 위 파워풀한 모습은 압권이다. 지인들이 “연기가 아니라 그냥 너 아니니?”라고 말할 정도다.

14세에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접하고 가수의 꿈을 품었다. 이후 비욘세를 비롯해 힙합, R&B에 심취했으나 결국은 듣기 편하고 따뜻한 감성이 빛나는 90년대 음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어머니가 손승연을 임신했을 당시 휘트니와 머라이어 캐리,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볼튼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 음악학원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닐 때 어느 학원 원장님이 ‘휘트니가 좋니 머라이어 캐리가 좋니’란 질문을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휘트니라고 대답했어요. 범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다른 가수들이 아무리 모창해도 따라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음색이 매력이죠. 머리이어처럼 엄청난 고음을 구사하지 않아도 목소리 자체가 사람들을 울리는 힘이 있어요.”

서울공연예고, 호원대 실용음악과에 이어 미국 버클리음대(휴학)에서 수학했다. 2011년 ‘탑밴드’, 2012년 ‘보이스 오브 코리아’ 우승을 거머쥐며 가요계에 본격 데뷔했다. 이후 수식어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닉네임이 ‘괴물 보컬’이다.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드는 고음 덕분이다.

고음역대 구사를 잘하는 여타의 디바들이 가성이나 반가성으로 처리하거나 진성으로 소화하더라도 긴 호흡으로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반면 손승연은 단전에서부터 끌어낸 진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공할 파워로 고음처리를 해 프로 가수들마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어느 순간부터 발라드, R&B뿐만 아니라 댄스, 록 등으로 장르를 확장하고 진한 감정까지 장착해 리스너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고음은 하나의 무기이자 장기겠죠. 그렇게 쓰였으면 좋겠고요. 휘트니도 다양한 장르를 구사했듯이 제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거든요. 과거엔 휘트니와 똑같이 노래하고 싶어 했는데 언젠가부터 나만의 색깔을 만들자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고음보컬, 파워보컬이 가수 손승연의 초반기에 대한 좋은 평가였다면 앞으로의 숙제는 손승연만의 뚜렷한 색깔을 만드는 거라 여겨요.”

어렵사리 뮤지컬에 발을 내디딘 만큼 앞으로 콘서트형 뮤지컬이나 팝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다. ‘드림걸즈’ ‘위키드’는 위시리스트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보디가드’가 끝나면 곧장 앨범 작업에 돌입한다. 아직까지 정규음반을 낸 적이 없어서 올가을 신보를 위해 벌써부터 공을 들이는 중이다.

“처음으로 자작곡을 수록할 예정이예요. 좋은 작곡가에게 받기도 할 거고요. 색채감을 입히는 데 방점을 찍고 있어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음악을 통해 나만의 색깔을 확실히 입히려고요. 드라마틱한 대곡 발라드가 주로 들어왔는데 그 틀에 갇히지 않아야겠죠. 레트로 감성을 지니면서 요즘 감성을 살릴 수 있는 노래들을 구상 중이에요. 손승연 스타일 펑키 넘버도 그 중 하나가 될 거고요.”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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