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선은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했다. 한때는 부천SK에 지명됐을 정도로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꿈을 접게 된 건 고질병 허리디스크 때문이었다. 수술을 하면 1년을 쉬어야 했고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를 받으면 2년을 쉬어야 했다. 결국 대학교에 다니던 도중 축구를 그만뒀다. 뭘 해야 할까 방황하던 청년은 우연히 맥주 광고의 모델이 됐다. 그렇게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그는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조한선은 남들보다 수월하게 데뷔한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 모델을 시작할 때만 해도도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집안도 가난했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판정을 받았고 어머니 혼자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축구 선수에서 모델, 모델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그가 꿈을 이루는 과정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런 그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마차타고 고래고래'에 출연했다.

 

 

"어릴 때 내 꿈은 프로팀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다음엔 신인상이나 남우주연상을 받는 게 목표이기도 했고, 한결같이 오래 가는 배우가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지나면서 내 위치도 돌아보고 하면서 꿈이 바뀌었다. 지금 꿈은 500만 배우가 되는 거다. 1000만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리 연기하고 캐릭터 분석해도 관객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500만 명의 배우가 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주지 않을까?"

지난 18일 개봉한 '마차타고 고래고래'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멤버였던 네 친구가 어른이 돼 '1번 국도'라는 밴드를 재결성한 후, 어린 시절 꿈꿨던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는 신나는 청춘 버스킹을 그린 영화다. 국내 최초로 뮤지컬과 영화 동시 제작에 나서 화제가 된 작품으로, 뮤지컬 '고래고래'의 공연에 이어 뒤늦게 영화 버전이 정식 개봉하게 됐다. 영화에서 조한선은 밴드 1번국도의 드럼 연주자 호빈을 맡았다. 호빈은 스타를 꿈꾸는 10년 차 무명 배우다.

"호빈과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호빈은 10년 차 무명배우고, 나는 데뷔한 지 14년 됐지만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 이름과 얼굴은 알려졌지만 뭐하냐, 왜 안 나오냐, 그런 얘기를 듣는다. 또 내 안에 호빈 같은 밝은 면도 있다. 예전엔 어둡고 남성미 강한 역할만 했었는데 이번에 밝음을 끄집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에는 연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나를 그냥 방목했다. 풀어 놓고 놀고 싶은 대로 놀라고 하셨다."

 

 

배우 조한선 하면 아직도 2004년 영화 '늑대의 유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3년 전 영화가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에 대해서 그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표현했다. '마차타고 고래고래'가 그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미지수다. 무엇보다 '마차타고 고래고래'는 우리나라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은 장르다.

"아시겠지만 우리 영화는 햄버거처럼 대작들 틈에 꼈다. '죽음의 달'에 개봉한 거다. 우리 같은 음악 영화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목포에서부터 가평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환데, 마지막 촬영 때는 좀 울컥했다. 그런 감정은 나도 영화를 하면서 처음 느꼈다. '이게 우리가 하는 마지막 연주다'라고 얘기를 하고 촬영을 딱 들어갔는데 우리 모두 정말 온 힘을 거기다 다 쏟아부었다. 목포에서부터 가평까지의 여정이 쌓이면서 감정이 벅차올랐다."

한편 이번 영화에서 조한선은 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밝은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망가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놓은 듯 보이기도 했다. 꽃미남, 조각 미남 등의 수식어가 붙는 배우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터였다.

 

 

"예전엔 그런 연기를 하는 게 두려웠다. 평생 남을 장면이니까. 예전에 '함정'을 찍을 때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찍고 나니까 '내가 왜 이런 걸 걱정해야 하나' 싶더라. 배우에게는 망가지는 것도 해야 하는 연기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가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재미까지 줄 수 있다면 그게 낫지 않겠나. 그 전에 주로 했던 역할들이 주로 어두운 역이라 어설프게 망가지면 오히려 티가 안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어 쟤 저런 면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했다."

'마차타고 고래고래'는 안재석 감독에게는 입봉작이기도 하고, 김재범과 김신의, 한지상에게는 영화 데뷔작이다. 조한선은 이 영화가 꼭 잘 돼야 하는 이유로 그들을 꼽았다.

"감독님이 늦게 입봉을 하신 편이다. 감독님 동기들이 카메라 촬영부터 시작해서 조명, 편집 등 다 도와주러 총출동하셨더라. 자기 동기가 입봉한다고.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을 못 하고 2년 동안이나 품 안에 두고 계시면서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또, 신의형, 재범이, 지상이 이 세 배우에게는 이 영화가 첫 주연 영화다. 그들에게는 이 영화가 앞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성장의 발판이 됐으면 한다."

이번 작품은 조한선에게는 '늑대의 유혹' 이후 13년 만의 청춘 영화다. 그에게 청춘의 의미를 묻자 '희로애락'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청춘에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청춘을 지금에서야 느낀다. 언젠가부터 꿈이 소박해지더라. 원래 내 꿈이 배낭 메고 국토 횡단을 하는 거였다. 그 전에는 생각만 했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왜 생각만 하고 있었나 싶더라. 그냥 실천에 옮기면 될 텐데 싶더라. 중간에 역경이 있는 것도 다 추억이라는 걸 깨달았다."

청춘 버스킹 영화를 찍어서일까, 그는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지한 태도가 엿보였다.

"1등에 오르면 그걸 지켜야 하고, 또 1등이 되지 못하면 1등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난 그냥 꾸준히 2, 3등만 하고 싶다. 역경과 고난을 겪은 1등보다 역경과 고난을 겪은 2, 3등이 되고 싶다. 1등은 자리를 지켜야 하고 누가 올라오나 감시해야 하지만 2, 3등은 누군가를 끌어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를 위로 올려줄 수도 있다. 나는 그게 더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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