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방한인데 아직도 적응 단계예요.”

 

 

멀리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을 찾은 방 타마라를 22일 오후 숙소인 인사동 호텔 인근 카페에서 마주했다. 74세의 고령임에도 연두색 옷차림처럼 활기가 넘쳐흘렀다. 모든 것을 상실한 고려인들을 가무로 위로했던 방 타마라 그리고 고 이함덕의 드라마틱한 삶과 예술적 성취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감독 김소영ㆍ5월25일 개봉)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방 타마라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다.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다. 교육자였던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렸을 때부터 고려인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살았다. 15살 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밭일을 했다는 그는 드넓은 평원에서 노래하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밭에서 일하고 가축 돌보면서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소를 몰고 지나가면 어르신들이 다 알아봤어요. 노래를 잘 부르고, 워낙 목소리가 커서요. 15세에 음악공부를 하러 알마티(카자흐스탄 남동부 주도)의 이모 집으로 나 홀로 떠났어요. 콘서바토리(음악학교)에 입학해선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엔 미싱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죠.”

 

 

그러던 중 오케스트라 소속 성악가 오디션에 합격해 단원들과 함께 모스크바 등지로 공연을 가곤 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여성 목소리 중 가장 낮은 음역대인 콘트랄토다. 하지만 3옥타브까지 올라가 알토부터 소프라노까지 두루 소화했다. 다양한 곡 소화력은 이때부터 방 타마라의 전매특허가 됐다.

중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업하지 못한 채 돈을 벌기 위해 극단에 입단, 사할린에서 4개월 공연을 한 뒤 알마티 소재 고려극단(1932년 창단 이후 200편이 넘는 연극·음악을 공연해온 고려인의 대표 문화공간)에 캐스팅 됐다.

“한국어도 몰랐고 고려극장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왜 나를 뽑았는지 의아해서 대표님께 물어봤더니 ‘문화를 이어가는 중요한 책임이 있다’란 말을 해주셨어요. 더 많이 고민하게 됐죠. 입단한 이후에는 창단멤버인 인민배우 이함덕 선생께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 등을 너무 잘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나중엔 읽을 수는 있게 됐죠.”

이후 고려극장의 순회극단인 아리랑 가무단을 대표하는 디바가 돼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십 년간 노래로 위로했다. 이국적인 외모와 깊은 음색을 가진 그는 풍부한 성량과 표현력을 바탕으로 재즈, 민요, 소비에트 유행가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쿠바 민중을 위로했던 유명한 디바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그는 중앙아시아의 디바였다.

 

 

“우리 극단에선 한국노래만 했던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많이 불렀어요.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민족·문화적 색채가 짙은 노래들을 다 소화했죠. 단원들부터 공연 내용에 이르기까지 프로페셔널한 극단이었죠. 난 주로 드라마틱하고 단조의 차분한 곡들을 불렀어요. 요즘 한국 가요 무대를 보면 벗고 나오거나, 뛰어다니거나, 욕설 있는 가사를 구사하는 등 문화가 없는 듯한 무대가 많은데 우리 시대에는 엄격하면서도 정통적인 것을 추구했죠.”

34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방 타마라는 알마티에서 두 딸 그리고 2명의 손주와 함께 살고 있다. 극단을 나오고 나선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에서 교회 전도사로 일하며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교회에서 봉사활동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합창단에선 ‘못 부르면 죽여버린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가르치고 있어요.(웃음) 틈틈이 무대에 올라 노래도 하고요. 음악 없이 어떻게 사나 싶죠.”

국내에도 음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노년의 디바에게 그들을 향한 조언을 구했다.

 

 

“매일같이 연습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음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해요. 많이 읽고, 다른 분야도 잘 알아야 그들과 대화를 이어가게 되죠. 그래야 프로페셔널한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잘 이해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야만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게 되죠. 무대 위에서 하는 행동과 옷만으로도 그 나라의 문화를 대변해요.”

소수민족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오고 고유의 문화를 일궈온 방 타마라는 마지막으로 역대 어떤 청춘세대보다 고달픈 아버지의 나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려움이 있다는 건 배우는 게 많다는 거라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만약에 어려움이 없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어요. 그게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죠.”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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