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펴서 읽어내리면 산책로를 거니는 듯한 기분을 주는 책이 있다. 싱글 여성의 감성 노트 '어쩌다 혼자'는 싱글들을 뒤따르는 화려하고 또 불편한 단어들까지 따스하게 감싸 안은 독백으로 독자들에게 위안을 건넨다. 지난 25일 '어쩌다 혼자'의 저자인 레인보우 작가와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 음악, 그림을 좋아한다는 싱글 여성의 무지갯빛 이야기들이 책과 닮은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실려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호모 스크립투스, 싱글녀.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는 레인보우라는 필명으로 독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작가를 만나기 전엔 필명만 본 채 LGBT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단순한 발상 이상의 의미가 담긴 필명이었다.

"보통 레인보우, 무지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희망이나 꿈들을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비가 올 때 언제 무지개가 뜰지 모르는 그 설렘과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땐 많이 봤지만 이젠 잘 찾아볼 수 없는 무지개요. 언제 뜰지 예측할 수 없다는 기대감과 종잡을 수 없는 막연함의 공존이 우리 미래 모습하고 닮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종잡을 수 없이 외로웠다가 즐거웠다가 여유도 생기다가 또 고독해지고, 그런 왔다 갔다 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더 흥미로운 싱글들의 모습하고 일치하지 않을까요."

 

 

혼자 사는 여성이 '어쩌다 혼자'가 된 이야기를 담은 책은 더 이상 결혼이 필수가 아닌 사회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싱글라이프의 면면을 밝힌다. 1인 가구 500만 시대인 만큼 그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면 어떨까 싶어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기도 했다.

"사실 혼자 살지는 않고 엄마랑 같이 살아요.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떨까 많이 생각을 해봤죠. 혼자가 되면 뭐든 나홀로 해결해야 하는 삶을 사는 거잖아요. 혼자서 아등바등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나만 혼자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커피  한잔을 하면 힐링이 되는 일상도 있죠. 여러 가지 자신만의 모습을 보다 가꿔나갈 수 있는 게 바로 '혼자'가 아닐까 싶어요. 그 '혼자'라는 테마를 여덟 개의 챕터 안에 스며들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릴 적부터 항상 무언갈 끄적거렸다는 작가의 습관이 고스란히 담긴 책은 싱글 여성끼리의 공감성 있는 글은 물론 수채화빛 그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주는 듯하다. 풍부한 예술적 감성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책에는 글, 그림, 음악 및 영화와 관련된 폭넓은 취향이 집약돼 있다. 상상력을 결부한 조각글 등 소설을 읽는 재미까지 심어놓은 게 흥미롭다.

"지금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림 없는 동화책이 많았어요. 동화책 속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림을 많이 그렸고, 인상 깊은 건 뭐든지 메모를 하곤 했었죠. 그 노트는 오롯이 저 혼자만의 공간이었어요. 습관의 힘이란 게, 지금도 볼펜이나 휴대폰으로 계속 적고 쓰고 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쓸 때도 있어요. 그런 게 자리 잡히다 보니 취미 이상의 계기가 되더라구요. 누군가 무언가를 묵묵히 해오면 특별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돌아오는 것 같아요."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낌없이 채워 넣은 알록달록한 수채화 그림 역시 괄목할만하다. 화려함, 따스함, 여유로움, 공허함, 외로움 등 무수한 감정들을 습관껏 연필로 그려낸 그림들은 저마다 특유의 포근한 감성을 지니고 있어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뿐만 아니라 챕터가 끝나는 지점엔 그림 그리기 코너를 삽입해 독자들과 취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혼영'이나 '혼놀'과 같은 신조어가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트렌드의 관건인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시간을 외로움이나 고독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가꿀 수 있는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차분히 앉아서 나 자신을 다스리고 싶을 때 그림을 그리는데, 독자들을 위해 일부러 쉬운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코너를 만들었어요. 마카 같은 간단한 도구로도 수채화처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공유하고 싶었죠. 전공자는 아니지만요. 혼자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반영되는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적어내린 '내 맘대로 소설' 또한 네 편 정도 챕터의 끝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쇼팽의 초상'이나 조 다상의 노래 '쁘띠 뺑 오 쇼콜라(Le petit pain au chocolat')' 등, 평소 좋아하던 것들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취향껏 적어내린 소설들엔 경험과 상상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설렘과 감성이 혼재한다.

"수필로 남기기에는 아쉬워 소설로 써봤어요. 지난해에도 교토 여행을 하다가 굉장히 친절한 안내를 받은 기억이 있어요. 교토역은 너무 커서 길을 잃기가 쉽거든요. 역무원 몇 분이 지나가길래 길 안내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숙소까지 데려다주시더라구요. 교토에선 정말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해서 되게 좋게 남았어요. 이걸 두 남녀가 만나는 스토리로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책엔 넣지 않았네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샹송을 소설로 발전시키고, 편지처럼 상상을 곁들여서 글을 써보는 등 내 마음대로 풀어본 글들이에요."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로맨스 영화 '유콜잇러브'나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괴테의 시, 카포티 소설의 한 구절 등, 중간중간 페이지에 집어넣은 영화 대사나 소설 구절 역시 평소 끄적이던 노트가 출처다. 

"평소에 좋은 대사나 구절을 보면 기록해놔요.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쓸 때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번 책에선 인용문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저 챕터에 맞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넣었죠. '유콜 잇 러브' 명대사도 사랑이 주제인 챕터에 넣었고, 셰익스피어 '헨리 4세'의 구절 역시 미래와 관련된 챕터에 넣었죠. '헨리 4세'의 구절은 특히 '아무리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있다 하더라도 살아볼만하지 않냐'는 말이 하고 싶어 넣었어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현재에 충실해 살아가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었죠."

 

 

'낭만의 조각들' 챕터 마지막쯤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시를 추천했다. 16세기 프랑스 서정 시인 롱사르의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를 자처한 여성들을 향한 레인보우 작가의 진심 어린 조언을 대변하는 문장들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지금은 꽃처럼 아름다울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덧없이 지고 마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충분할까요? 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월이라는 길을 가는 거잖아요. 언젠가 사랑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조금이라도 이를 때 사랑을 누려보는 건 어떻겠냐는 시예요. 100퍼센트 공감하는 말은 아니지만, 싱글들에겐 가닿을 수 있는 시일 것 같아서 추천해 봤어요." 

 

 

사진 이진환(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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